**1장. 운룡산에 드리운 천하의 그림자**
운룡산(雲龍山), 그 이름처럼 구름을 뚫고 솟아난 산봉우리가 천공에 닿을 듯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다. 산자락을 휘감은 짙은 안개는 마치 거대한 용이 잠든 듯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냈고, 그 위로 아득히 올려다보이는 정상에는 기어이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거대한 건축물, 천하비무대(天下比武臺)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방에서 몰려든 강호인들의 발걸음이 산길을 메웠고, 그들의 흥분 어린 숨소리가 이른 아침의 정적을 깨뜨렸다.
오늘, 이곳에서 천하제일 무도회가 열린다.
단순한 무도회가 아니었다. 수백 년 전, 강호를 피로 물들였던 천마(天魔)의 잔영이 다시금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는 불길한 예언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십 년. 정파와 사파를 막론하고 각 문파의 최고수들이 모여 지혜를 모았으나, 그 누구도 명확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전대미문의 결정이 내려졌다. 천하제일 무도회를 열어, 그 승자에게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권능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비무대는 용의 비늘처럼 겹겹이 쌓인 관중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인파는 저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문파의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무당, 소림, 아미, 개방 등 정파 명문들의 푸른, 붉은, 녹색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였고, 그 옆으로는 혈교, 마교, 녹림의 흑색, 자색 깃발들도 당당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화를 가장한 공존이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경계심이 역력했다.
관중석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마련된 귀빈석에는 각 문파의 장문인들과 고문들이 자리했다. 백발이 성성한 소림의 방장, 깊은 눈빛의 무당파 도인, 비단옷을 휘감은 혈교의 교주,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듯 홀로 고고히 앉아 있는 은둔 고수들까지. 그들 모두의 얼굴에는 숙연함과 동시에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
류설(柳雪)은 그 거대한 인파 속,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허름한 푸른 도포를 걸친 그의 모습은 수많은 강호인들 사이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흑요석처럼 깊고 차가운 눈동자는 비무대를 뚫어지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무림에 그 어떤 명성도 없는, 이름 없는 평범한 검.
“결국, 올 것이 왔군.”
류설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가슴속에는 이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이 비무 자체가, 그가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증명해 줄지도 몰랐다.
정오를 알리는 징이 천지를 뒤흔들 듯 울려 퍼졌다. 웅성거리던 관중들은 순간 침묵했고, 모든 시선이 비무대 중앙으로 향했다.
백발의 노인이 느린 걸음으로 비무대 정중앙에 섰다. 그는 오대 명문 중 하나인 무당파의 전대 장문인이자, 강호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는 태허진인(太虛眞人)이었다. 그의 등장에 정파의 좌석에서는 일제히 경의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태허진인은 조용히 손을 들어 박수를 멈추게 했다. 그의 깊고도 울림 있는 목소리가 기의 진동을 타고 비무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모두 들으시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협은 문파의 경계를 넘어선, 천하 모든 생명의 존망이 걸린 문제입니다. 천마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지고 있으며, 강호는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의 말에 관중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태허진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에 우리는 지고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늘부터 보름간 진행될 천하제일 무도회에서, 최종 승리하는 자에게 ‘천하인(天下印)’을 수여할 것입니다. ‘천하인’은 천하의 모든 문파와 세력을 규합하여,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능을 상징합니다.”
그의 손이 허공으로 치솟자, 비무대 중앙 바닥에서 굉음과 함께 봉인된 석판이 솟아올랐다. 석판이 완전히 드러나자, 그 위에는 고색창연한 옥새 하나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천하인’이었다. 수천 년 강호의 역사를 함께 해 온, 전설 속의 보물.
“이 천하인은 정파나 사파, 그 어느 한쪽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천하를 구원할 지혜와 무력을 겸비한 자만이 이를 차지할 자격이 있습니다. 모든 참가자는 비무의 규칙을 따르고, 승패에 승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강호의 공적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태허진인의 목소리가 엄숙하게 이어졌다. 류설은 천하인을 응시했다. 저 옥새가 가진 힘이 과연 천하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그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 회의감 속에서도, 류설의 심장 깊은 곳에서는 잊고 있던 불꽃이 조용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묵직한 기운이 비무대를 휘감았다. 귀빈석에서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일어섰다. 혈교의 교주, 만마혈군(萬魔血君)이었다. 온몸을 뒤덮은 붉은 비단옷과 섬뜩한 피 냄새, 그리고 섬광처럼 번득이는 눈빛은 주위의 모든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태허진인, 노파심에 한마디 묻겠소이다. 과연 이 천하인이 오직 힘으로만 결정될 것이라 믿으시오? 만에 하나, 우리가 아닌 ‘다른 자들’이 이 자리에 끼어든다면 어찌할 셈이오?”
만마혈군의 말에 장내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의 시선은 태허진인을 지나, 비무대 주변의 특정 방향을 훑었다. 모두가 알았다. 그 ‘다른 자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천마의 잔당, 혹은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악한 무리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태허진인의 얼굴에 순간 복잡한 기색이 스쳤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천하제일 무도회는 그 어떤 사악한 세력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천하의 모든 강호인들이 단결하여 그들을 격퇴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약속이자 각오입니다.”
그의 단호한 선언에 정파의 좌석에서는 다시금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만마혈군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을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회자가 비무의 규칙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며, 어떤 문파도 특혜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비무의 대진표가 발표되었다.
“첫 번째 대결! 무당파의 신진 고수, 운검(雲劍) 백무진(白武眞) 대! 혈교의 흑혈마도(黑血魔刀), 천악(千惡)!”
이름이 호명되자, 비무대는 다시금 격렬한 환호와 야유로 뒤덮였다. 백무진은 푸른 도포를 휘날리며 당당히 비무대에 올랐고, 천악은 검은 그림자처럼 섬뜩한 기운을 풍기며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히는 순간, 팽팽한 살기가 비무대를 가득 채웠다.
류설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막 시작된 서막이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 거대한 소용돌이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손에 쥐어진 낡은 검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