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화: 심연의 눈동자
성단 ‘카시오페이아’의 마지막 빛마저 점멸하는 아득한 심우주. 대한연방 우주탐사선 미리내 호는 30년 항해의 고독을 짊어진 채, 망각의 심연을 가르고 있었다. 함교의 대형 투명창 너머로 펼쳐진 우주는 묵언의 경고처럼 검푸른 침묵만을 토해냈다. 별은커녕 희미한 성운조차 보이지 않는 절대적 어둠. 이곳은 인류의 지도가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함장 이지아는 푹신한 조종석에 등을 기댄 채, 창밖의 풍경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의 반짝임을 등지고 지구를 떠난 지 벌써 10년째. 그녀의 나이 서른아홉에 시작된 이 임무는, 반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녀와 승무원들의 삶을 우주에 가두어두었다. 망막에 우주선 내부 조명이 반사되어 희미한 빛의 궤적을 그렸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그녀는 수도 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고, 매 순간 인류의 최전선에서 고독과 싸워왔다.
“함장님, 이상 감지입니다.”
정적을 깬 건 과학 장교 박서준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이지아는 미동도 없이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긴 침묵 끝에 찾아온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스물다섯, 앳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의 눈빛만은 이미 수십 년 우주 경험을 가진 노련한 과학자의 그것이었다.
“어떤 이상이지, 박 장교?”
이지아의 목소리는 파도 없는 바다처럼 잔잔했다. 하지만 그 잔잔함 속에는 언제든 폭풍으로 변할 수 있는 날카로운 촉이 숨어 있었다.
박서준은 입술을 깨물며 홀로그램 패널을 조작했다. 그의 손놀림이 빨라지며 함교 중앙에 거대한 3D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공간 왜곡 센서가 잡아낸 작은 점 하나. 그 점은 미리내 호의 경로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마치 검은 구멍처럼 주변 시공간을 미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정밀 스캔 결과, 일반적인 천체가 아닙니다. 구성 물질은… 분석 불능. 중력장도 일정하지 않고, 에너지 방출 패턴은 저희가 아는 어떤 물리법칙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박서준의 목소리에 흥분과 경외심이 교차했다. “이건… 누군가 만든 겁니다.”
이지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누군가? 생명체 반응은?”
“전무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시공간 왜곡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문명이라면… 최소한 우리보다 수천 년은 앞서있을 겁니다.”
부함장 김현우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미리내 호의 전술 및 통신 담당이었다. 강인한 체격에 빈틈없는 눈빛, 항상 칼날처럼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설마… 접촉입니까? 인류 최초의 외계 문명 접촉?”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아직 단정하긴 이릅니다, 부함장.” 이지아가 김현우를 진정시켰다. “단순한 우주 쓰레기일 수도 있어. 조작된 기만 작전일 수도 있고.”
“우주 쓰레기가 저런 에너지 패턴을 보여준다고요? 함장님, 이건 분명…”
“조용히 해, 김현우.” 이지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녀는 다시 투명창 너머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숨 쉬고 있었다. 인류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존재가.
“기관장님, 엔진 출력 30% 증가. 대상 좌표로 이동합니다.”
함장 이지아의 명령에 뒤편 조종석에 앉아있던 기관장 최민수가 투박한 손으로 패널을 조작했다. 50대 초반의 최민수는 미리내 호의 모든 기계 장치를 제 몸처럼 다루는 베테랑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항해의 피로가 역력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발견에 대한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최적 경로 계산 중… 엔진 출력 올립니다. 미세 진동 있을 겁니다.”
거대한 미리내 호의 선체가 나직한 굉음을 내며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엔진 출력 증가와 함께 수만 톤의 강철 덩어리가 미지의 존재를 향해 서서히 속도를 더했다. 함교의 조명은 푸른색 비상등으로 바뀌었고, 모든 승무원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초 단위가 영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박서준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대상 접근 완료. 함장님, 전방 10킬로미터. 육안 확인 가능합니다.”
이지아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투명창 가장 가까이 다가가 우주의 심연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의 눈은 인류의 지식과 상식을 부수는 존재와 마주쳤다.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거대한 구조물.
그것은 육면체도, 구형도 아니었다. 어떤 기하학적인 형태로도 정의할 수 없는 불규칙한 형상이었다. 표면은 흡사 거울처럼 우주의 어둠을 완벽하게 반사하고 있었으나, 동시에 주변의 빛을 흡수하는 듯한 기묘한 검은 빛을 내뿜었다. 크기는 미리내 호의 두 배가 넘을 정도로 거대했고, 표면에는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늬들이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치 뼈와 혈관이 뒤얽힌 유기체 같기도 했고, 정교한 기계 부품이 연결된 것 같기도 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거대한 구조물의 중심에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검고 매끄러운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구멍은 어떤 조명도 없이, 마치 스스로 빛을 흡수하는 존재인 양 주변을 왜곡하며 침묵하고 있었다. 마치 심연이 응축되어 생긴 눈동자 같았다.
“이게… 대체… 뭐야…” 김현우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경이로움이 뒤섞여 있었다.
박서준은 홀로그램 패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숨을 헐떡였다. “분석… 불능입니다. 모든 센서가 오류를 일으킵니다. 중력, 전자기장, 에너지… 모든 수치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정체불명의 구조물 중심에 뚫려있던 검은 구멍, 심연의 눈동자가 마치 생명체처럼 느리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미리내 호의 함교 전체를 관통하는 섬뜩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경고! 주 에너지 코어 불안정! 중력 안정장치 오류 발생!”*
최민수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함장님! 보조 동력 코어 전압이… 수직 하강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무언가에 끌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미리내 호의 선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함교의 모든 패널이 붉은색 비상등을 뿌리며 깜빡였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검은 구조물은 마치 블랙홀처럼 미리내 호를 집어삼키려는 듯 거대한 흡인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지아는 급히 조종석으로 달려갔다. “기관장님! 비상 엔진 가동! 최대 출력으로 벗어납니다!”
“함장님! 이미 늦었습니다! 메인 엔진도… 제어를 잃고 있습니다!” 최민수의 목소리는 절망적이었다.
미리내 호는 거대한 외계 유물의 중력에 포박된 채,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저항했다. 하지만 유물의 흡인력은 너무나 강력했다. 선체 내부에서 끔찍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일부 패널에서는 스파크가 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지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은 침착했지만, 심연의 공포가 그 안에서 꿈틀거렸다.
그때, 박서준이 홀로그램 패널에서 손을 떼고 이지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함장님! 방금… 방금 감지했습니다! 이 유물… 유물이… **숨 쉬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리내 호는 거대한 외계 유물의 심연의 눈동자를 향해 통제 불능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미리내 호의 선체가 유물의 검은 구멍에 닿는 순간, 거대한 빛이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마치 우주 전체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듯한 찰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시 암흑으로 가라앉았다.
미리내 호는 사라졌다. 인류의 지도에 없던 미지의 유물과 함께, 그 거대한 심연 속으로… 영원히.
아니, 영원히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침묵한 암흑 속에서, 이지아는 마지막 순간 유물의 검은 구멍 너머로 아주 희미하게 번쩍이는 빛을 보았다.
그것은 별빛도, 성운의 빛도 아니었다.
마치… 다른 세상의 태양 같은 빛이었다.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혹은… 역사의 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