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네온사인 불빛이 추적추적 비 내리는 도시의 회색 빌딩 숲을 끈적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지상에서 수백 미터 위, 낡은 에어 덕트가 거미줄처럼 얽힌 고립된 아지트의 짙은 어둠 속. 차가운 금속성 냄새와 오존 향이 희미하게 감돌았다. 그 중앙에 서 있는 남자의 실루엣은 도시의 어둠보다 더 깊었다.

진혁이었다. 아니, 이제는 아무도 그를 진혁이라 부르지 않았다. 세상은 그를 망자의 목록에 올렸고, 그가 믿었던 친구는 그의 죽음을 디딤돌 삼아 성공의 정점으로 치솟았다.

그의 시선이 허공에 띄워진 홀로그램 인터페이스에 고정되었다. ‘아크론 테크놀로지’의 로고가 찬란하게 빛나는 최신 빌딩의 내부 구조도가 정밀하게 펼쳐져 있었다. 최상층, 펜트하우스 오피스. 그곳이 바로 그의 옛 친구, 태준이 황제로 군림하는 심장부였다.

투박한 작업복 아래로 그의 팔뚝이 드러났다. 검게 빛나는 인공 근육과 신경 다발이 꿈틀거리는 기계 팔. 3년 전, 태준이 설계한 폭발로 한 줌 재가 될 뻔했던 진혁의 몸을 재구성한 흔적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심해처럼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3년… 긴 시간이었지, 태준.”

진혁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금속성 울림이 섞인 음성은 더 이상 과거의 부드러웠던 진혁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쓸어내렸다. 모든 보안 시스템, 경비 인력 배치, 심지어 태준의 개인 일정까지, 그가 알아낼 수 있는 모든 정보가 그의 망막에 주입되었다.

*찰칵.*

그가 손목 안쪽에 숨겨진 작은 스위치를 눌렀다. 어둠 속에 잠겨있던 그의 갑옷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합금 소재의 플레이트들이 그의 몸에 착 달라붙었다. 신경 인터페이스가 활성화되자, 전신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스쳤다. 모든 감각이 선명해지고, 반응 속도가 한계를 넘어섰다.

*콰앙!*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아지트의 한쪽 벽이 터져 나갔다. 빗물이 섞인 거센 바람과 함께 아크론 테크놀로지의 경비 드론 여러 대가 들이닥쳤다. 붉은 감시등이 진혁의 존재를 향해 번개처럼 번뜩였다.

“도망칠 생각은 없었는데, 나를 이리 찾아올 줄이야. 성격이 급해졌군, 태준.”

진혁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는 일말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총구에서 불을 뿜는 드론들의 맹공에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는 드론의 궤적을 눈으로 정확히 쫓으며, 허리춤에서 섬광처럼 은빛 칼날을 뽑아 들었다. 고밀도 에테르 에너지로 증강된 검이었다.

*쉬이이잉—!*

첫 번째 드론이 칼날에 스치자, 순식간에 두 동강 나며 폭발했다. 연쇄적인 폭발 속에서 진혁의 몸은 유령처럼 움직였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드론들의 공격을 회피하고, 정확한 급소를 찔러 무력화시켰다.

그의 눈앞에 태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3년 전, 그날의 잔상이었다.

***

*“진혁아, 우리 에테르 코어 기술이 완성되면 세상이 뒤바뀔 거야! 상상해봐, 무한한 에너지, 깨끗한 환경… 우리는 인류의 영웅이 되는 거야!”*

*웃으며 어깨를 다독이던 태준의 얼굴에는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혁은 그런 태준을 보며 함께 미소 지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믿었던 친구이자,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럼 태준, 오늘 밤 최종 시뮬레이션만 성공하면 돼.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그러나 그 밤, 빛을 본 것은 태준 혼자였다. 진혁이 최종 시뮬레이션을 위해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태준은 이미 모든 데이터를 빼돌리고 그를 향해 차가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미안하다, 진혁아. 네가 너무 순수해서 몰랐어. 이 기술은… 오직 나만을 위한 거야. 세상은 영웅이 둘일 필요가 없어. 그리고… 너는 완벽한 희생양이 될 거야.”*

*태준의 비릿한 미소와 함께, 연구실 전체를 뒤흔드는 폭발이 일어났다. 진혁의 몸은 불길에 휩싸였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닿았던 감각은 지옥 같은 고통과, 멀리서 울려 퍼지던 태준의 비웃음이었다.*

***

“희생양이라….”

진혁의 입술에서 차가운 비소가 흘러나왔다. 마지막 드론이 그의 칼날에 꿰뚫려 잔해로 변했다. 천장에서는 여전히 빗물이 새어 들어와 바닥에 고여 붉은 경고등을 반사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그의 왼손목에 달린 통신기가 켜지자, 홀로그램 지도가 다시 나타났다. 아크론 테크놀로지의 최상층 펜트하우스 오피스. 이제는 경비가 그를 인지했으리라. 모든 보안 시스템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혁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몸은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고, 그의 정신은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향해 불타고 있었다. 태준, 그를 향한 처절한 복수.

그는 부서진 벽 너머, 비 내리는 도시의 밤하늘로 몸을 던졌다. 강력한 중력 반발 추진기가 그의 발에서 뿜어져 나오며, 그를 거대한 빌딩 숲 위로 솟구치게 했다. 수백 미터 아래로 도시의 불빛들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진혁의 실루엣은 마치 거대한 새처럼 보였다. 목표는 단 하나. 아크론 타워. 이 모든 부조리의 정점에 서 있는 자의 심장부.

타워의 외벽을 따라 초고속으로 상승하는 진혁의 망막에 경고 메시지가 번개처럼 번뜩였다.

**[경고: 무단 침입. 접근 금지 구역입니다.]**
**[경고: 살상용 무장 드론 출격. 즉시 후퇴하세요.]**

“후퇴? 이제 막 시작인데.”

진혁은 입꼬리를 올렸다. 경고 메시지가 사라지자, 그의 눈앞에는 이미 타워 외벽에서 솟아오르는 수십 대의 무장 드론과 중무장한 경비병들이 에테르 방어막을 전개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상층 펜트하우스. 통유리 너머, 태준은 여유롭게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성공의 오만함과 평온함이 가득했다. 그의 손에 들린 와인잔에는 진혁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담겨 있는 듯했다.

“친구여. 이제 그 잔에 네 피를 채워줄 시간이다.”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드론들의 포화를 뚫고, 에테르 방어막을 향해 돌진했다. 복수의 서막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