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8화: 심연에서 들려오는 이름

숨 막히는 정적이었다. 바깥세상은 한밤중에도 좀비들의 으르렁거림과 간헐적인 비명,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으로 생지옥의 연주를 멈추지 않았지만, 내 아파트 안은 늘 그 소름 끼치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마치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옥과 무균실이 나뉜 것처럼.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내 존재마저 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찬물로 대충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보았다. 초췌한 낯빛, 깊어진 눈가의 그림자.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잠들기만 하면 꿈속에서 좀비들이 내 목을 물어뜯고, 깨어나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에 경기를 일으켰다. 이젠 아파트가 나를 가두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을 막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내 안의 무언가가 갉아먹히는 기분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텅 비어가는 선반 위에 남은 건 생수 몇 병과 썩어가기 직전의 사과 한 개뿐이었다. 식량을 아끼고 아꼈지만, 이제 한계가 보였다.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젠장….”

나는 한숨을 쉬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때였다.

딸그락!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부엌 식탁 위였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플라스틱 물컵이 쓰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똑바로 서 있었던 컵이었다. 바람? 아니,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진? 흔들림은 전혀 없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컵에 가까이 다가갔다. 바닥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식탁 위에서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컵 주변으로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방금 손으로 만져서 미끄러뜨린 것처럼.

“누구… 없어?”

내 목소리는 떨렸다. 심장이 발광하듯 뛰어댔다. 설마. 누가 침입한 건가? 아파트 문은 삼중으로 잠겨 있었다. 창문은 나무판자로 완벽하게 막아놓았다. 외부인의 침입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식탁 위를 꼼꼼히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그저 컵 하나가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려 애쓰며 컵을 다시 세워놓았다. 피로 때문에 헛것을 본 거라고,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아파트의 정적은 더욱 깊어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식탁 위 컵의 잔상이, 그리고 알 수 없는 물방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갑자기, 거실에서 ‘삐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룻바닥 밟는 소리였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귀를 쫑긋 세웠다. 다시 ‘삐걱’. 확실했다. 누군가 거실을 걷고 있었다.

“누구야…!”

나는 소리쳤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정적만이 나를 덮쳐왔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망치를 든 채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거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손전등을 켰다. 빛이 닿는 곳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소파, 테이블, 텔레비전. 모두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내가… 미쳐가는 건가?”

중얼거렸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나를 환각의 늪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거실 중앙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서 섬뜩한 광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내가 어제 밤 읽다가 덮어놓은 책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찢어진 페이지의 한 단락이 강조된 채로. 페이지의 가장자리는 마치 손톱으로 긁은 듯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나는 책으로 다가갔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의 기이한 행동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문단이 마치 붉은 펜으로 밑줄이 그어진 듯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때로는 감염된 이들이 생전의 기억이나 습관에 따라 기이한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들의 존재는 주변 환경에 미묘한 영향을 미치며, 무생물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등의 ‘활동’을 보이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이를 흔히 ‘잔류 현상’이라 부른다…』

내 손전등 빛이 떨렸다. 잔류 현상? 폴터가이스트? 설마.

“이건… 아니야.”

나는 책을 거칠게 덮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건 환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내 책을 건드린 것이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리고 왜 하필 이 페이지를?

그 순간, 부엌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였다.

나는 망치를 든 손에 힘을 주며 부엌으로 향했다. 손전등 빛이 부엌 바닥을 비추자, 산산조각 난 유리컵 조각들이 보였다. 내가 아까 세워놓았던 바로 그 컵이었다.

“누구냐고! 당장 나와!”

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아파트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내 눈앞의 광경은 분명 누군가의 소행이었다.

그때, 내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싹한 한기였다. 동시에 공기 중에 희미한 속삭임이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다. 내 이름이었다.

“민… 준….”

나지막하고 떨리는 목소리. 마치 오래된 녹음기를 재생한 것처럼 삐걱거리고 일그러진 소리였다. 아이의 목소리 같기도, 늙은 여인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소름이 돋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나는 온몸이 굳은 채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만이 나를 조롱하는 듯 검게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실의 닫힌 창문, 그 두꺼운 나무판자 위로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붉고 축축한… 피 묻은 손바닥 자국이었다. 그것도 안쪽에서. 마치 누군가 내 아파트 안에 갇혀 있다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 발버둥 친 것처럼.

나는 망치를 떨어뜨렸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고요한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안 돼… 이건…!”

내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밖에는 좀비들이 우글거렸고, 안에는… 안에는 대체 무엇이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그때, 침실에서부터 ‘삑- 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무선전화기였다. 전원은 꺼놓은 지 오래였고, 배터리도 다 방전되어 버린 지 수개월이 지난 전화기였다.

나는 홀린 듯 침실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액정을 보고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발신자 표시: 『알 수 없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건, 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웃음소리였다.

마치 어린아이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내 숨통을 조여오는 가장 섬뜩한 저주와도 같았다.

삑- 삑- 삑-

전화기 액정이 깜빡이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공포에 질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 아파트에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나를 알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불렀고… 이제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마치 내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명확하게 들려왔다.

“너… 외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