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낡은 환기 통로의 철제 격자 틈새로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이안은 웅크린 자세 그대로 벽에 기대어 흐트러진 숨을 골랐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녹슨 철 냄새가 뒤섞인 이곳은 그녀가 카이를 만나는 유일한 안전지대, 동시에 가장 위험한 밀회 장소였다.

“늦었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얇게 떨렸다. 불안감 때문인지, 아니면 겨우내 얼어붙은 듯한 차가운 공기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파동이 일었다. 카이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였다. 베르제 종족 특유의 생체 에너지 발산은 어둠 속에서도 그를 숨기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의 몸에서 끊임없이 방출되는 미세한 광채는 마치 희미한 성운 같았고, 그 광채가 그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 이안은 잘 알고 있었다.

철컥.

무거운 강철 문이 조용히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카이가 들어섰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이안을 덮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말없이 이안에게 다가왔다. 인간의 눈으로는 구별하기 힘든 아주 미세한 진동이 그의 주변을 감쌌다. 베르제족은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며, 모든 위험에 대비한다.

“미안해. 감시가 더 삼엄해졌어.”

카이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심해의 조류처럼 잔잔했지만, 그 속에는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인간의 성대 구조와는 전혀 다른 발성 기관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처음에는 이질적이라 여겨졌던 그의 언어는 이제 사랑의 속삭임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또? 무슨 일인데?”

이안은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카이의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잡아낼 수 있었다. 그의 피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듯한 미세한 빛, 그리고 그 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그의 깊은 눈동자. 베르제족은 피부색과 눈동자색이 주변의 에너지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고 했다. 지금 그의 눈은 마치 먼 은하수를 담고 있는 듯 빛났다.

“국경선 너머에서 소란이 있었어. 몇몇 인간 정찰대가 우리 구역을 침범했다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안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인간과 베르제족은 ‘평화 협정’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수십 년째 얼어붙은 전쟁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작은 마찰도 거대한 불길을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상황. 그리고 그 불길은 언제나 이안과 카이 같은 금지된 관계를 제일 먼저 태워버렸다.

“그래서… 감시가 심해졌다는 말은… 우리도 위험하다는 뜻이야?”

카이는 대답 대신 이안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따뜻한 에너지가 스며 나오는 듯했다. 인간의 피부와는 전혀 다른 질감. 매끄럽고 단단했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회로가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이안의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위로하듯, 혹은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우리의 만남은 더 어려워질 거야. 아마… 한동안은 더.”

이안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왔던 이별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숨 막히는 침묵이 공간을 잠식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카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담담했다. 베르제족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 담담함 속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불안과 슬픔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럼… 끝인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갈라졌다. 금지된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이 질문을 던져야 할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이안은 견딜 수가 없었다.

카이는 천천히 이안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의 푸른 빛을 띠는 머리카락이 이안의 뺨을 스쳤다.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감촉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어떤 따뜻함보다 강렬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이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전기 자극이 느껴지는 듯했다.

“끝이 아니야, 이안.”

그의 목소리가 이안의 귓가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숨결은 인간과 달랐다. 차갑고 건조했지만, 그 속에서 묘한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단지… 잠시 쉼표를 찍는 것뿐.”

쉼표. 그 단어는 이안의 심장을 찢는 칼날 같았다. 쉼표가 마침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종족 간의 접촉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특히 베르제족은 종족 보존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은 그들에게 있어 미지의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였다.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존재 자체가 두 종족 간의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였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땅이 흔들리고, 낡은 환기 통로의 철제 격자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안의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

“무슨… 무슨 소리야?”

카이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짙은 검푸른색으로 변했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 베르제족의 눈은 늘 그렇게 변했다. 그의 피부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도 더욱 강렬해졌다.

“이쪽이야. 순찰대.”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폭발음은 그들이 숨어있는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순찰대의 공격이었을까, 아니면 이종족 간의 우발적인 충돌이었을까? 이안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들키는 거야…?”

이안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이곳에서 발각된다면, 그들에게 내려질 형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카이는 재빨리 이안의 몸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단단한 팔이 이안의 허리를 감쌌다. 그녀의 얼굴이 그의 차가운 갑옷 같은 가슴에 닿았다. 인간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미세한 전류가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내가 막을게.”

카이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결의는 거대했다. 그는 이안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의 등 뒤로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일렁이는 듯했다.

“카이… 안 돼…!”

이안은 그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그는 이미 강철 문을 향해 몸을 돌린 상태였다.

“이안, 들어. 내가 시간을 벌게. 넌 이 통로를 통해 반대편 출구로 가. 그리고 절대 돌아보지 마.”

“싫어! 너 혼자 가면…!”

“약속해, 이안.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우리 다시 만나야 하잖아.”

그의 목소리는 명령이었지만, 그 안에 절절한 애원이 담겨 있었다. 다시 만나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이안의 심장을 후벼 팠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강철 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군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안은 카이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짙은 검푸른색이었지만, 그 속에서 오직 이안만이 읽어낼 수 있는 어떤 애틋함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안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간의 입술 구조와는 달라 제대로 된 미소는 아니었지만, 이안은 그것이 그가 보낼 수 있는 가장 진실된 작별 인사임을 알았다.

그리고 카이는 몸을 돌려 강철 문을 향해 달려갔다. 마치 폭풍 속으로 뛰어드는 한 줄기 빛처럼.

“카이…!”

이안의 절규가 텅 빈 통로에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은 너무나 단단하고, 동시에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그녀는 그의 말을 따르기 위해 몸을 돌렸다. 녹슨 철제 통로의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계속해서 뒤편의 강철 문에 닿아 있었다.

카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짧고 날카로운, 그러나 곧바로 다른 소리에 파묻혀버린 비명. 이안은 온몸의 신경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쾅! 콰과광!

강철 문 너머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안은 그 소리를 뒤로하고 달렸다.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폐부를 찢는 듯했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카이가 그녀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이안은 그가 희생한 이 시간을 헛되이 할 수 없었다.

어둠 속을 달리는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카이. 제발.

살아남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