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사방은 습기 머금은 어둠과, 흙먼지 섞인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강지현은 거친 숨을 내쉬며 거대한 돌문 앞에 섰다.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으로 문틈을 더듬자, 천 년 넘게 봉인된 듯한 차가운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젠장, 이건 뭐… 용접이라도 해놨나?”

그는 온몸의 체중을 실어 돌문을 밀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등진 채, 영원히 침묵하겠노라고 선언하는 듯했다.

“강지현 씨, 무작정 힘으로만 밀어봐야 소용없어요. 여기 보세요.”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한연우가 작은 휴대용 조명에 의지해 낡고 금이 간 석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이 그녀의 탐구적인 눈빛과, 땀으로 살짝 젖은 앞머리를 비췄다. 그녀의 목소리는 항상 그랬듯 차분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미지의 것에 대한 흥분감이 깃들어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 지혜의 눈이 길을 밝히리라.’ 이런 문구가 적혀있네요. 이 구절이 분명 이 문을 여는 열쇠일 거예요.”

지현은 이마를 짚었다. “지혜의 눈? 지금 우리가 필요한 건 크레인이나 다이너마이트 같은데요, 한 박사님.”

“‘박사님’이라뇨. 아직 수료도 못 했어요.” 연우는 툴툴거리면서도 시선을 석판에서 떼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은유적인 표현이겠죠. 강지현 씨의 그 단순무식한 접근법으로는 이 속삭이는 미궁의 비밀을 영원히 풀 수 없을 거예요.”

“아, 예. 저는 이 미궁을 무려 다섯 번째 탐사만에 찾아낸 사람인데요?” 지현은 빈정거렸다. “누구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대 문헌만 뒤적일 때, 저는 발로 뛰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단순무식’이라뇨. 이래 봬도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해요.”

마지막 말을 할 때는 묘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게 어쩐지 연우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강지현 씨의 그 ‘몸으로 하는 것’이 지금 이 돌문 앞에서 아무런 성과도 못 내고 있다는 게 문제죠.” 연우는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녀는 다시 석판에 코를 박았다. “아, 여기 뭔가 더 있어요. 이 문양… ‘세 개의 별이 일직선을 이루는 밤, 그림자가 지는 곳에 진실이 잠들리라.’ 별? 그림자?”

지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이요? 지하에 별이라니, 뭔가 이상한데… 아니면 천장이라도 올려다보라는 건가?”

그는 습관처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돔 형태의 천장은 어디에도 별이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의 시야에 뭔가 스쳐 지나갔다. 돌로 된 천장 한가운데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홈이 파여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끼워 넣도록 만들어진 듯했다.

“연우 씨, 여기 좀 봐봐요!”

지현의 외침에 연우는 석판을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눈이 홈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빛을 발했다.

“이건… ‘별의 눈물’을 위한 자리인가 봐요!”

“별의 눈물?” 지현이 되물었다.

“네, 고대 문헌에만 등장하는 희귀한 광물인데, 밤하늘의 별빛을 응축시켜 만들었다고 전해져요. 특정 조건에서 빛을 반사해서 길을 밝힌다고… 물론 전설 속 이야기지만요.”

“전설이든 뭐든, 중요한 건 지금 우리한테 그게 없다는 거 아닌가요?” 지현은 한숨을 쉬었다.

연우는 그러나 무언가 생각난 듯 급하게 자신의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온갖 잡동사니들이 튀어나왔다. 낡은 나침반, 작고 뭉툭한 조각칼, 먼지 묻은 노트, 그리고… 짙은 푸른색을 띠는 작은 유리구슬 하나.

“이거… 혹시?” 지현은 그녀의 손에 들린 구슬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어릴 때 할머니가 주신 건데, 꽤 오래된 거라셨어요. 하늘의 조각을 담았다고…” 연우는 조심스럽게 구슬을 꺼내 천장의 홈에 가져다 댔다. 구슬은 마치 원래 제자리였던 것처럼 홈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찰칵!

구슬이 홈에 박히는 순간, 미궁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구슬에서 뿜어져 나온 희미한 푸른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천장에 그려진 문양을 비추기 시작했다. 문양은 세 개의 별이 일직선으로 이어진 형태였다.

“세 개의 별… 그림자…” 연우는 중얼거렸다. “강지현 씨, 혹시 주위에 그림자를 드리울 만한 조형물이 있나요?”

지현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내 그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거대한 돌문 바로 옆, 벽면에 새겨진 부조. 거인의 형상을 한 석상이었다.

“저거, 석상이요!”

그는 망설임 없이 석상 앞으로 달려갔다. 푸른빛이 석상을 비추자, 석상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닿는 곳에, 희미하게 빛나는 발판이 드러났다.

“밟아봐요!” 연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지현은 망설이지 않고 발판을 밟았다. 그의 무게가 실리자, 발판이 미세하게 아래로 꺼졌다.

웅우웅… 콰아앙!

귀청을 찢을 듯한 마찰음과 함께, 거대한 돌문이 천천히 옆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돌가루가 뿌옇게 날리는 가운데, 문 너머의 공간이 서서히 드러났다. 어둡고 좁았던 통로와는 전혀 다른, 거대한 돔형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숨을 멎게 할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벽면에는 금빛과 푸른빛이 어우러진 정교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고, 바닥에는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영롱한 광물들이 박혀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로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진 낡은 비석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세상에…” 연우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이런 곳이 아직 남아 있었다니… 이건 교과서에 새로 쓰일 역사가 될 거예요!”

지현 역시 넋을 잃고 눈앞의 광경을 응시했다. 그는 감탄사를 내뱉는 것도 잊은 채,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연우는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강지현 씨, 우리… 우리가 드디어 해냈어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 순간, 지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무심코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그의 품에 살짝 부딪쳤다.

“어… 어어?”

연우는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움찔했다. 그녀의 뺨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은은한 향기와, 당황한 표정에 지현 또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 그, 그게… 너무 놀라서… 미안해요!” 그는 급히 손을 떼며 어색하게 뒷걸음질 쳤다.

연우는 어색하게 앞머리를 매만지며 시선을 피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미지의 유적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갑자기 다른 종류의 혼란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때, 정적을 깨고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주 먼 곳에서 바람이 속삭이는 듯한, 혹은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낮은 울림이었다.

웅웅…

제단 위의 비석에 새겨진 상형문자들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강해지더니, 비석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빛이 가장 강렬해진 순간, 비석의 문양이 일렁이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저건…!” 연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시선은 비석에서 떼지 못했지만, 지현은 이미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연우 씨, 일단 뒤로 물러나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석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거대한 기둥을 이루며 천장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돔형 공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벽면의 벽화들이 갈라지며 바닥에 박혔던 영롱한 광물들이 섬뜩한 불빛을 뿜어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지현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방금 막 잊혀진 문명의 가장 깊은 비밀 중 하나를 발견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 비밀은 단순히 역사의 조각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무언가였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막 깨어난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