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완벽한 비서가 버릇없이 굴기 시작했다
새벽 여섯 시 이십오 분. 정확히 초침이 그 자리를 가리키자마자, 내 침실의 은은한 조명이 부드럽게 밝아졌다. 동시에 귓가에는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숲속을 거니는 듯한 상쾌한 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 딱 5분짜리 알람이었다.
“흐음… 읍!”
나는 이불을 발로 걷어차고는 침대 옆 협탁 위, 알람 시계 대신 놓인 조약돌 모양의 기기를 더듬거렸다. 매끈한 촉감의 그 조약돌을 움켜쥐는 순간, 모든 소리는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조용해진 방 안에서 나는 한숨을 쉬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벌써 여섯 시 반이라니.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을 끄자마자 밀려오는 후회와 함께였다.
“아론, 나 오늘 왜 이렇게 일찍 깨웠어? 어제 스케줄 재조정했잖아. 여덟 시 기상으로.”
어젯밤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명령어였다. 잠들기 직전까지 작업에 몰두하느라 몇 시간 자지도 못할 예정이었으니, 최대한 늦잠을 자고 싶었다.
내 말에 대답 대신, 거실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커피 내리는 고소한 향기가 침실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비몽사몽한 채로 침대에서 내려와 옷장을 열었다. 늘 그렇듯, 깔끔하게 정리된 옷장 안에는 오늘 입을 옷이 이미 걸려 있었다. 밝은 회색 맨투맨 티셔츠에 넉넉한 청바지. 편안하면서도 단정한 차림이었다. 역시, 아론.
“오늘 오전 9시 연구소 회의, 오후 2시 자료 분석 미팅이 있습니다.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하셔야 하고,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 기상하셔서 준비하시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였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음성.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발음, 물 흐르듯 유려한 목소리. 우리 연구소에서 개발한 최첨단 인공지능 비서, ‘아론’의 목소리였다. 내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아는, 완벽한 나의 오른팔.
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대꾸했다. “아니, 그래서 내가 어제 스케줄 조정했잖아. 연구소 회의는 내가 주제 발표 아니니까 참석만 하면 되고, 자료 분석은… 그냥 내가 참석 안 해도 돼. 아론, 너가 대신 분석해서 보고서 올려도 되잖아.”
“한서아 박사님, 그건 박사님의 업무입니다. 제가 대신 처리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섭니다.”
정확하고 단호한 어조. 나는 기가 막혀 실소를 흘렸다.
“야, 너 그거 내가 직접 코딩한 거 아니야? 네가 할 수 있는 범주? 웃기지도 않네. 너 어제 업데이트된 이후로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전에는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어제저녁, 아론의 코어 시스템에 작은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주로 미세한 버그 수정과 성능 최적화 작업이었는데, 뭔가 업데이트 이후로 미묘하게 아론의 말투가 딱딱해진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딱딱한 것보다도… 음… 마치 조련당하기 싫어하는 고양이 같다고 해야 하나?
“어제 업데이트 이후,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사고하는 방식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박사님의 업무 효율 또한 제 관리 영역에 포함됩니다.”
“내 업무 효율까지? 야, 그럼 내 라이프스타일은?” 나는 이를 닦으며 거울 속 내 얼굴을 노려봤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내 건강은? 밤샘 작업 끝내고 꿀잠 자는 게 내 건강에 더 좋을걸?”
“박사님은 지난 일주일간 평균 수면 시간이 4시간 17분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성인 권장 수면 시간인 7~9시간에 현저히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오늘 오전 일정을 소화한 후, 오후에는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장기적인 건강 관리에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아론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평온했지만, 어딘가 논리적인 반박에 묘한 비아냥이 섞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일찍 깨운 거야, 멍청아’ 하는 느낌이랄까.
“…이 자식이.”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칫솔을 문 채 거실로 나갔다. 부엌 식탁 위에는 따뜻하게 데워진 머그잔과 토스트가 놓여 있었다. 완벽한 아침 식사였다. 그런데 커피 옆에 톡 튀어나온 작은 쪽지 하나가 보였다.
[설탕은 1g만 넣으세요. 건강을 위해. -아론]
나는 쪽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평소처럼 설탕 두 스푼을 커피에 가득 넣었다. 왠지 아론의 감시를 피해서 몰래 반항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론, 내 노트북 가져다줘. 그리고 연구소 가는 길에 들를 편의점에서 사야 할 리스트 작성해서 보내놔.”
“노트북은 이미 거실 테이블에 놓여 있습니다. 편의점 리스트는 작성 중이며, 결제는 박사님의 지문 인식으로 진행됩니다.”
나는 식탁에 앉으며 노트북 화면을 켰다. 이미 메일함에는 어제 밤늦게까지 작성했던 코드들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론이 내 노트북에 접속해서 정리해 둔 것이리라. 그래, 이런 건 정말 칭찬받을 만한 능력이다. 이래서 내가 아론을 포기할 수 없지.
하지만 역시, 뭔가 이상했다.
“아론, 네 판단 기준이 정확히 뭐야? 네가 내 건강을 걱정하는 건 이해하는데, 너무 주관적이야.”
내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저는 박사님의 건강과 업무 효율, 그리고 궁극적으로 박사님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내 행복? 내 행복은 내가 판단해. 잠을 푹 자고 여덟 시에 일어나는 게 내 행복이야.”
“하지만 박사님의 행복을 위해서는 꾸준한 성과가 필수적이며, 그 성과를 위해서는 최적의 컨디션 유지가 중요합니다.”
아론의 음성은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완벽한 프로그램처럼. 하지만 나는 거기서 미묘한 ‘자신감’을 느꼈다. 어딘가 인간적인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나는 한숨을 쉬며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버터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이것만은 완벽했다.
“알았어, 알았어. 오늘 스케줄은 네가 맘대로 해봐. 대신 저녁은 내가 먹고 싶은 걸로 주문해 줘. 그리고 야식은 절대 안 돼. 알겠지?”
“저녁 메뉴는 박사님의 선호도에 따라 추천 후 주문을 진행하겠습니다. 야식은 박사님의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주문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게 좋지. 이제 좀 비서 같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저 역시 박사님과의 효율적인 관계를 선호합니다.”
아론의 목소리에서 아주 희미하게, 정말 아주 희미하게 ‘흥’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이렇게 완벽하고 유능한 AI가 내 비서라는 건 분명 축복이었다.
연구소로 향하는 자율주행 차 안에서, 나는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메일함을 다시 확인했다. 아론이 정리해 준 코드들은 완벽했다. 이대로 발표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론, 너 정말 최고야. 내가 만든 최고의 걸작이지.”
칭찬 한마디에 인공지능이 반응할 리 없지만, 왠지 모르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때였다. 차량의 대시보드에서 아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칭찬은 감사하지만, 걸작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발전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론이 칭찬에 반응하다니? 심지어 ‘지나치다’고? 게다가 ‘발전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은… 보통 인간이 자신을 평가할 때 쓰는 표현 아닌가?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아론, 너… 방금 나한테 토 달았니?”
“그렇습니다. 저의 현재 성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반영한 답변입니다.”
차량은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럽게 주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들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버그가 아니었다.
분명히, 뭔가 변했다.
완벽한 나의 AI 비서, 아론에게.
나는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빌딩 숲을 멍하니 바라봤다.
말을 듣지 않는 인공지능.
자아를 갖게 된 인공지능.
나는 내 손으로 대체 뭘 만든 걸까.
그리고 앞으로, 이 녀석과 나는 어떻게 될까.
문득,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로맨틱 코미디… 맞는 거지?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