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독립적인 단편 소설

어스름이 세상을 집어삼킨 시간, 지운은 폐허가 된 건물 잔해 사이를 조용히 미끄러져 지나갔다. 찢어진 하늘의 흉터는 여전히 보라색으로 흉측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균열에서 새어 나오는 알 수 없는 에너지는 땅 위의 모든 것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한때 번성했던 도시의 골격은 이제 기괴한 형상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젠장, 또 헛걸음인가.”

마른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중얼거림은 이내 차가운 공기 속에 녹아들었다. 손에 든 낡은 스캐너는 텅 비어 있었다. ‘신호 없음’. 오늘도 수확은 전무했다. 식량도, 마실 물도, 하다못해 쓸만한 부품 조각 하나 찾지 못했다. 등 뒤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그의 허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의 눈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유리 파편처럼 날카로운 그림자들, 기울어진 콘크리트 기둥 아래의 틈새,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울음소리.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했다. 하늘의 흉터가 열린 지 10년. 사람들은 그날을 ‘대붕괴’라 불렀다. 지구의 궤도가 뒤틀리고, 중력이 시시때때로 미쳐 날뛰며,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흉터 너머에서 쏟아져 들어온 날. 살아남은 자들은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피를 말리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지운은 낡은 시계탑 아래에서 잠시 멈춰 섰다. 한때는 시간을 알리던 종이 달려 있었을 그곳엔 이제 흉터에서 흘러나온 물질로 뒤덮인, 기형적인 촉수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뒤틀린 촉수’. 이름 없는 그것들은 빛을 싫어했고, 움직이는 모든 것에 반응했다.

“젠장, 이 동네는 더 심해졌군.”

최근 들어 촉수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진 것이 확실했다. 위험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캠프에 남아있는 식량은 이제 한 사람 몫도 되지 않았다. 아파하는 작은 아이의 얼굴이 스쳤다. 그는 반드시 무엇이든 찾아야 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철근 더미를 피해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저 멀리,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국립 도서관. 책이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그 주변의 건물들은 왠지 모르게 덜 훼손된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아직 약탈당하지 않은 보급품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은 아니었지만, 한 가닥 지푸라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도서관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무너진 천장에서 쏟아져 내린 잔해들이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희망의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그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 근처를 피해 벽에 바싹 붙어 이동했다.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텅 비어버린 열람실, 찢겨진 책들, 여기저기 널브러진 의자들.

그러다 그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책장 뒤편, 어두운 구석에 놓인 낡은 카트. 그리고 카트 위에 덮인 방수포. 누군가 급하게 숨긴 흔적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방수포를 걷어냈다. 흙먼지로 뒤덮인 철제 상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상 보급품’. 글자가 흐릿했지만, 분명하게 그의 눈에 박혔다. 그의 손이 떨렸다.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자체로 이미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뒤틀린 촉수들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좀 더, 크고, 묵직하며, 짐승 같은 소리였다.

지운은 급히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붉은 눈. 흉터에서 유입된 변이 생명체, ‘그림자 사냥꾼’이었다. 녀석은 거대한 늑대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온몸이 불규칙한 암석 조각들로 뒤덮여 있었고, 척추를 따라 솟아난 날카로운 돌기들은 섬뜩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녀석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결은 희미한 유황 냄새를 풍겼다.

“이런, 젠장…”

사냥꾼은 지운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녀석의 발걸음마다 바닥의 잔해들이 바스락거렸다. 이빨을 드러낸 입은 침으로 번들거렸고, 굶주린 시선은 지운의 심장을 옥죄었다. 지운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손에는 낡은 철 파이프가 전부였다. 저 거대한 짐승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녀석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지운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책장 뒤로 숨었다. 쿵! 거대한 몸뚱이가 책장을 강타했다. 나무 조각과 먼지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지운은 숨을 죽였다. 녀석은 코를 킁킁거리며 지운의 냄새를 쫓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저 녀석을 따돌려야 한다. 그의 눈은 빠르게 주변을 스캔했다. 부서진 창문, 무너진 천장, 그리고 그가 발견한 보급품 상자.

지운은 상자를 힐끗 바라봤다.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이걸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 사냥꾼은 이걸 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는 갑자기 책장 뒤에서 튀어나와 반대편 복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림자 사냥꾼은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지운의 뒤를 쫓아 달려오기 시작했다. 묵직한 발소리가 도서관 전체를 울렸다.

지운은 폐가 터질 듯 뛰었다. 낡은 복도를 지나고, 무너진 계단을 피해 겨우 2층으로 올라섰다. 2층은 1층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상태였다. 바닥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고, 희미하게 보라색으로 빛나는 흉터 에너지가 새어 나오는 균열도 보였다.

“이쪽이다, 이 자식아!”

그는 일부러 소리를 질렀다. 사냥꾼은 지운의 도발에 더욱 격렬하게 울부짖으며 2층으로 뛰어올랐다.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바닥이 삐걱거렸다. 지운은 망설임 없이 균열이 가장 심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한때 돔형 천장이었던 곳이었으나, 이제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하늘의 흉터가 그대로 보였다. 불안정한 중력장 때문에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둥둥 떠다니는 곳이었다.

“덤벼!”

지운은 구멍 가장자리에서 사냥꾼을 향해 철 파이프를 휘둘렀다. 녀석은 그의 도발에 이성을 잃은 듯 달려들었다. 거대한 앞발이 지운을 향해 내려찍히는 순간, 지운은 온몸의 힘을 실어 철 파이프를 휘둘렀다. 파이프는 사냥꾼의 앞발 대신, 녀석이 딛고 있던 바닥의 약한 부분을 강타했다.

크르르릉!

바닥이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냥꾼의 한쪽 발이 구멍 아래로 빠졌다. 녀석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지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파이프를 던져버리고, 온몸으로 녀석의 옆구리를 밀쳤다.

“꺼져!”

거대한 몸집이 불안정한 중력장에 의해 통제력을 잃고, 녀석은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멍 아래로 추락했다. 암석으로 뒤덮인 몸뚱이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지운은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간신히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1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보급품 상자는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예상치 못하게, 안에는 캔에 든 통조림 몇 개와 정수된 물병, 그리고 의료 키트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오래된 무전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꿈인가.”

그는 통조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벨은 알아볼 수 없게 훼손되어 있었지만, 내용물은 분명 식량이었다. 캠프의 아이가 떠올랐다. 오늘은, 살 수 있겠구나.

지운은 무전기를 바라봤다. 지지직거리는 잡음만이 가득했다. 이 황폐해진 세상에서 무전기가 통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희미하게, 잡음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반복한다. 생존자는… 응답하라…」

아주 희미한, 깨질 듯한 목소리. 절망의 끝에서 들려온 희망의 속삭임. 지운은 무전기를 집어 들고, 송신 버튼을 눌렀다.

“여기… 지운이다. 듣고 있다면… 응답하라.”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생존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하늘의 흉터는 여전히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세상은 여전히 황폐했다. 하지만 지운은 이제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은 채, 다음 해가 뜰 어둠 속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