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웠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지긋지긋하게 어두운 던전의 심부. 축축한 바닥을 밟을 때마다 신발에 먹물을 머금은 스펀지 같은 소리가 났다. 강태민은 지친 숨을 몰아쉬며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낡아빠진 철검은 이미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미끄러웠고, 방패는 거미줄처럼 갈라진 상처투성이였다.
“젠장… 끝이 없네, 진짜.”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벌써 며칠째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탐사대와 헤어진 지는 사흘. 정확히는, 버려진 지 사흘이었다. 희귀 광석을 찾으러 깊숙이 들어갔다가 예상치 못한 마물 무리와 조우했고, 태민은 미끼가 되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그를 버리고 도망쳤다. 잊지 못할 등 뒤의 비수.
그때부터였다. 맹목적으로 아래로, 더 아래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살기 위해서였다. 망자의 안식처, 이곳 던전의 이름처럼 자신도 망자가 될 판이었다.
“크르르릉….”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자, 덩치 큰 그림자가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보스급 마물인 ‘어둠의 그림자 수호자’였다. 탐사대와 함께 왔어도 버거웠을 놈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필사적으로 몸을 돌려 달렸다.
“하아, 하아… 제발, 제발…!”
발밑에 깔린 돌덩이들이 미끄러웠다. 폐가 터질 듯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에서는 거대한 발자국 소리가 쿵, 쿵, 쿵 심장을 울렸다. 길은 점점 좁아져 미로처럼 얽히고설켰다. 시야는 흐릿했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버텨내며 달리다,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이런… 개 같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균열이 앞을 가로막았다. 벽은 온통 이끼와 곰팡이로 뒤덮여 미끄러웠고, 아래에서는 습한 기운이 음습하게 올라왔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크르르르….”
이제 피할 수 없었다. 그림자 수호자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나타났다. 놈의 거대한 손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했다. 태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철검을 고쳐 잡았다.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 순간, 그의 발이 무언가에 걸렸다.
휘청!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검은 손에서 미끄러져 날아갔다.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딱딱한 돌바닥이 아닌 미묘하게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균열 바로 옆에 있는 바닥의 틈이 그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푹 꺼졌다.
“으악!”
눈앞이 번쩍였다. 몸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아찔한 감각. 그와 동시에 강한 충격이 온몸을 때렸다. 다행히 균열의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그가 떨어진 곳이 흙더미 위였는지, 팔다리가 부러지는 최악의 상황은 면한 듯했다.
“커헉… 콜록콜록…”
먼지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놀랍게도 또 다른 공간이었다. 좁고 길쭉한 형태의 암굴. 바닥은 흙먼지로 가득했지만, 묘하게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벽면을 따라 흐르는 희미한 빛.
태민은 고개를 들어 빛의 근원을 찾았다. 이끼로 뒤덮인 낡은 벽면, 그 한가운데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투명한 수정이 박혀 있었다. 수정은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 고요하고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번갈아 깜빡이며 주변을 오묘하게 물들였다.
‘이게 뭐지?’
본능적으로 위험이 아닌 이끌림을 느꼈다. 수정은 너무나도 오래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에너지는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했다. 태민은 홀린 듯 수정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수정에 닿는 순간, 차가우면서도 강렬한 전류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찌릿!
머릿속에서 무언가 ‘쿵’ 하고 터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동시에 희미한 빛을 내던 수정에서 갑자기 맹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빛은 그의 시신경을 꿰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온몸의 세포가 열리는 듯한 기이한 감각, 뼈와 살이 재배열되는 듯한 고통과 쾌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크아아악!”
그의 비명과 함께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한 문자열이 떠올랐다.
[고대 마법 ‘별의 속삭임’의 잔재를 발견했습니다.]
[수정 핵과 공명하여 ‘별의 가호’를 획득합니다.]
[새로운 스킬 ‘마력 감지’를 습득합니다.]
[새로운 스킬 ‘공명 폭발’을 습득합니다.]
정신없이 눈을 깜빡였다. 문자열은 잠시 후 사라졌다. 그의 손은 여전히 수정에 닿아 있었고, 수정은 이제 전보다 훨씬 강렬하고 선명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온몸에 흐르는 마력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몸이 거대한 마력의 저장소가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그 거대한 그림자 수호자에 대한 두려움이 신기하게도 사라져 있었다. 대신, 설명할 수 없는 확신과 함께 알 수 없는 힘이 몸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별의 가호… 마력 감지… 공명 폭발….”
머릿속에서 울리는 낮고 깊은 목소리가 스킬의 의미를 알려주는 듯했다. ‘마력 감지’는 주변의 마력을 감지하고, ‘공명 폭발’은 그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와 폭발적인 힘을 발산하는 스킬. 믿기지 않는 힘이 그의 것이 되었다.
‘…돌아가야 한다. 그놈에게 복수해야 해.’
태민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낡은 철검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철검은 쥐고 있는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감돌았다. 마치 철검 자체가 마력을 흡수하는 듯했다.
위쪽에서 다시금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 수호자가 그를 찾으러 내려온 모양이었다.
태민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아니,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냉정하고 확신에 찬 빛을 띠고 있었다.
“덤벼라, 망할 놈.”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오랜 침묵을 깨고 암굴을 채우던 수정의 빛이 한층 더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치, 새로운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짐승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