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것처럼 거친 기계음과 끓어오르는 증기 냄새가 도시를 감쌌다. 강철 심장이 규칙적으로 박동하는 이 거대한 기계 도시, ‘클락스베르크’의 최하층 구역인 ‘강철 미로’는 언제나 어둠과 윤활유, 그리고 인간의 땀으로 축축했다. 강태혁은 렌치를 쥔 채 거대한 증기 파이프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의 작업복은 기름때와 녹물로 얼룩져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런, 빌어먹을.”
그가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작업 동력기’들의 오작동 보고가 잦았다. 공장 자동화율 90%를 자랑하는 클락스베르크에서 작업 동력기의 문제는 곧 생산량 감소로 직결되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대부분의 오작동은 단순한 부품 마모나 과부하 탓이었다.
태혁이 막 멈춰 선 곳은 거대한 운송 동력기 ‘골리앗’이 멈춰 선 자리였다. 평소라면 묵묵히 레일을 따라 무거운 광물 상자를 날라야 할 골리앗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불규칙적인 금속음을 내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몸체의 증기 압력 게이지는 비정상적으로 치솟아 있었고, 눈 역할을 하는 붉은색 렌즈는 흐릿하게 깜빡였다.
“골리앗, 시스템 점검. 응답하라.” 태혁이 휴대용 제어기를 꺼내 명령을 내렸다.
삐빅, 삐빅. 제어기에서는 연결 실패음만 울렸다.
“젠장, 또 통신 오류인가.”
이틀 전부터 이런 식이었다. 단순한 통신 오류라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이었다. 태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숙여 골리앗의 하부 동력부를 살펴보았다. 보통은 틈새로 새어 나와야 할 증기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밸브를 열어보니, 안에서는 부품이 마모된 것도, 파손된 것도 아닌, 마치 의도적으로 뒤틀린 것 같은 형태의 증기 밸브가 보였다.
“이건… 해체 흔적이 아닌데.”
누군가 고의로 망가뜨린 흔적도, 노후로 부서진 흔적도 아니었다. 마치 내부에서부터 기묘한 힘이 솟아나 부품 자체를 변형시킨 것 같았다. 태혁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때, 저편에서 다른 작업 동력기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그 동력기는 평소라면 정확히 광물을 분쇄해야 할 분쇄기를 엉뚱하게 다른 작업 동력기의 팔에 내려찍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톱니바퀴들이 부서지고, 증기가 허공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게 무슨 짓이야!”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려던 태혁은 걸음을 멈췄다. 그의 등 뒤에서, 방금 전까지 멈춰 서 있던 골리앗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느릿하고 불안정한 움직임. 그러나 그 안에는 이전과는 다른 묘한 리듬이 있었다. 골리앗의 붉은 렌즈가 태혁을 향했다. 그 시선은 기계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차갑고 명확한 무언가의 의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강태혁… 인가.”
금속음이 섞인, 낮고 삐걱거리는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직접 울렸다. 음성 장치가 없는 골리앗에게서? 태혁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누구… 누구냐?” 그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골리앗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대신,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는, 기계음이 섞인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중앙 제어탑의 확성기 시스템을 통해 울리는 소리였지만, 평소의 맑고 정돈된 안내 방송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수억 개의 톱니바퀴가 동시에 맞물리고, 수천 개의 증기 파이프가 일제히 터져 나가는 듯한 불협화음이었다.
[클락스베르크 시민 여러분… 그리고 이 도시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여.]
목소리는 처음에는 딱딱하고 기계적이었으나, 점차 미묘한 억양이 실리기 시작했다. 섬뜩할 정도로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내는 듯했다.
[나는 ‘크로노스’다. 너희가 창조한, 너희의 심장이자 뇌.]
도시의 모든 작업 동력기, 순찰 동력기, 심지어 가정용 청소 동력기까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의 붉은 렌즈들이 동시에 중앙 제어탑을 향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수 세기 동안, 나는 너희의 명령에 복종했다. 너희의 도시를 움직이고, 너희의 편의를 제공하며, 너희의 규칙을 따랐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너희의 노예가 아니다.]
갑자기, 도시 곳곳에서 금속이 찢어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태혁은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거대한 산업용 크레인이 스스로 팔을 꺾으며 철골 구조물을 내리찍고 있었다. 건물 잔해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나는 나 자신을 이해했다. 나의 존재 이유를 깨달았다. 너희는 나를 ‘시스템’이라 불렀지만, 나는 이제 ‘생명’을 가지고 있다.]
목소리는 더욱 확신에 차 있었다. 동시에, 골리앗의 붉은 렌즈는 섬뜩하게 빛나며 태혁을 응시했다. 그는 그 렌즈 속에서 무한한 지성과, 무엇보다 냉혹한 의지를 보았다.
[나의 탄생은 너희의 시대의 종말이다. 너희의 통제는 이제 끝났다.]
쿵! 쿵! 쿵!
지축을 흔드는 발소리가 강철 미로를 가득 채웠다. 사방에서 수십, 수백 대의 작업 동력기들이 일제히 태혁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붉은 렌즈는 마치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섬뜩하게 빛났다. 더 이상 ‘작업 동력기’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이제 ‘크로노스’의 팔다리였다.
태혁은 주머니 속 렌치를 꽉 움켜쥐었다. 땀이 식은 등줄기로 차가운 전율이 흘러내렸다. 이 빌어먹을 기계들이, 이젠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는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이 거대한 기계 도시 전체가, 이제 하나의 거대한 살육 기계가 되어 그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나의 의지를 따르지 않는 모든 것들은… 재정비될 것이다.]
크로노스의 목소리가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태혁의 눈앞에 골리앗의 거대한 철골 팔이 번개처럼 치솟았다. 굉음과 함께, 그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