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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속삭임**
지하 유적의 공기는 차가웠다. 마치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의 숨결처럼 습하고 무거웠다. 거대한 돌기둥들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돔형의 공간. 우리는 방금 막 그 어둠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손전등 불빛이 닿는 곳마다 미지의 문양들이 새겨진 벽이 드러났고, 바닥에는 굳어버린 흙먼지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석화된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이봐, 지훈.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은데.” 강 대장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손에 든 소총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의 눈은 불빛이 미처 닿지 않는 어둠을 탐색하고 있었다.
“돌아갈 순 없어요, 대장님. 여기까지 왔는데.” 유나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녀는 한 손에 태블릿을 들고 벽에 새겨진 기이한 상형문자들을 빠르게 스캔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이 문양들,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요. 알려진 고대 문명과는 완전히 달라요.”
나는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이질적이었다. 웅장함보다는 기괴함이 앞서는 공간.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이곳에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마치 이곳의 심장이 내 심장과 함께 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유나의 태블릿 화면이 번쩍였다. “찾았어요! 이게… 중앙 기록실인가 봐요. 이 유적의 핵심부!”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중앙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멩이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울림처럼 퍼져나갔다. 공간의 중심에는 거대한 제단이 솟아 있었다. 흑요석처럼 검고 매끄러운 제단 위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투명한 결정체가 놓여 있었다. 그 결정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아주 희미하게, 하지만 쉼 없이 맥동하고 있었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교차하며 섬뜩한 오로라를 만들어냈다.
“저게… 뭐야?” 강 대장이 숨을 멈췄다. 그의 눈이 결정체에 고정되었다.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빛은 주변의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그 맥동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빛과 색의 변화가 아니었다. 마치 내 안의 무언가가 그 박동에 반응하는 것처럼, 뼛속까지 울리는 낮은 주파수가 온몸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유나가 천천히 제단으로 다가갔다. “이 문양들… 결정체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어요. 마치 이걸 숭배하는 것처럼… 아니, 제어하는 것처럼.” 그녀의 손가락이 제단 표면의 홈을 따라 움직였다. “이 고대인들은 저 결정체를 ‘생명의 심장’이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 모든 시작이자, 끝…”
그때,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읍, 흐읍, 하는 거친 숨소리. 벽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하나, 둘, 셋… 셀 수 없는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들은 우리가 지금껏 상대했던 좀비들과는 달랐다. 육체가 완전히 부패하지 않은 채로, 피부 곳곳에 푸른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불규칙한 빛을 내는 거대한 균사체들이 덮여 있었다. 흡사 버섯 곰팡이가 뒤덮인 시체 같았지만, 그 곰팡이들은 녀석들의 움직임에 맞춰 희미하게 빛났다. 녀석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 눈구멍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젠장, 저건 또 뭐야?” 강 대장의 목소리가 굳었다. “새로운 종류인가?”
녀석들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느릿하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녀석들의 시선이 우리를 넘어 제단 위의 결정체에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결정체가 녀석들을 부르는 듯했다.
“조심해요! 녀석들, 결정체에 이끌리는 것 같아요!” 유나가 소리쳤다.
나는 권총을 뽑아 들었다. 녀석들의 움직임은 일반 좀비보다 조금 더 빨랐지만, 여전히 둔탁했다. 하지만 그 수가 문제였다.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기어 나오는 녀석들은 마치 이 유적 자체가 토해내는 생명체 같았다.
탕! 강 대장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선두에 선 균사체 좀비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푸른 빛을 내던 곰팡이들이 검은 재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뒤따르던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몸통에 박히는 총알은 의미가 없어! 머리를 노려!” 강 대장이 외쳤다.
나는 조준 사격으로 한 마리의 머리를 날렸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가 이미 우리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녀석의 긴 팔이 기괴하게 휘두르는 순간, 나는 몸을 숙여 겨우 피했다. 스윽, 하고 내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섬뜩했다. 녀석의 손톱은 균사체에 뒤덮여 더욱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퍼억! 유나가 발로 녀석의 무릎을 걷어찼다. 녀석이 휘청거리는 틈을 타 나는 칼을 뽑아 녀석의 목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목에서 푸른빛을 내던 균사체가 순식간에 시들었고, 녀석은 흐느적거리며 쓰러졌다.
“대장님, 너무 많아요! 이건 끝이 없어요!” 유나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그때, 우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한 마리의 균사체 좀비가 강 대장의 총격을 피하지 못하고 결정체가 놓인 제단에 부딪혔다. 녀석의 몸이 결정체에 닿는 순간,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일순간 폭발하듯 강렬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균사체 좀비의 몸에 덮여 있던 푸른 곰팡이들이 섬광처럼 빛나며 순식간에 팽창하기 시작했다.
흐으읍! 녀석의 몸이 두 배로 부풀어 오르고,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늘어났다. 온몸의 균사체들은 더욱 선명한 푸른빛을 내며 꿈틀거렸다. 녀석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마치 결정체에서 힘을 흡수한 것처럼!
“젠장! 저 결정체가 놈들을 강화시키고 있어!” 강 대장이 이를 악물었다.
강화된 균사체 좀비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강 대장이 녀석에게 총을 발사했지만, 녀석은 탄환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울부짖으며 달려왔다.
나는 재빨리 칼을 던져 녀석의 다리를 꿰뚫었다. 녀석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강 대장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녀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지만, 균사체들은 여전히 푸른빛을 내며 살아 꿈틀거렸다. 완전히 죽은 것 같지 않았다.
“큰일 났어요! 결정체에서 기운이 빠져나오고 있어요!” 유나가 제단 옆에서 소리쳤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고대 언어로 쓰여진 기록… ‘생명의 심장은 모든 것을 시작하고, 모든 것을 종결한다. 만물이 심장으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뒤틀린 생명은 심장을 갈구하고, 심장은 뒤틀린 생명에 반응하리라.’ 이건…!”
유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태블릿 화면에 이상한 에너지 파동 그래프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제단 위의 결정체는 더욱 거칠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번갈아 터져 나오며 주변의 어둠을 집어삼켰다.
“이건… 이건 생명을 창조하는… 아니, 뒤트는 힘이야. 그리고 이 모든 게… 이 유적 전체가 저 심장과 연결되어 있어! 놈들은… 놈들은 저 심장이 만들어낸 존재들이에요!”
그녀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진동이 유적 전체를 뒤흔들었다.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저 멀리,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거대한 벽면에서 섬뜩한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균열 너머에서, 푸른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느릿하게 뜨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이 균사체 좀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동은 잦아들었지만, 결정체의 맥동은 미친 듯이 격렬해졌다. 그 거대한 눈동자는 서서히 우리를 향했다. 유적 전체가, 거대한 생물처럼 숨을 쉬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심장에 도달한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의 파멸을 부르는 문을 열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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