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월문의 본산은 깊은 산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개 자욱한 봉우리 아래, 고색창연한 기와지붕들이 고요히 엎드려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마치 세상의 모든 소란으로부터 격리된 듯한 작은 누각, ‘고월당(古月堂)’이 있었다. 이곳은 청월문의 문주 다음가는 권위를 지닌, 경전과 무공 비급을 관장하는 목노인(木老人)의 서재였다.
그날 아침, 고월당은 비극의 현장이 되었다.
문파의 젊은 제자가 아침 문안을 위해 고월당을 찾았을 때, 그는 문이 안에서 굳게 잠겨 있음을 알아챘다. 몇 번의 부름에도 응답이 없자,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제자들은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책상에 기댄 채 싸늘하게 식어버린 목노인의 시신이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단 한 번의 예리한 일격으로 생긴 상흔이 선명했다. 살해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방 안에는 목노인을 해한 무기는 물론, 범인의 흔적조차 없었다.
“말도 안 돼… 문은 안에서 굳게 걸려 있었고, 창문은 쇠창살과 함께 안에서 빗장이 채워져 있었소. 어떤 무림 고수라 한들, 이런 밀실에 침입하여 사람을 죽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단 말이오?”
청월문의 호법 장로, 강맹한 무인인 백호(白虎) 장로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며 분노했다. 그의 옆에 선 문주(門主)는 창백한 얼굴로 고월당을 둘러보고 있었다.
“범인은 대체 어떻게 들어왔다가, 어떻게 나갔단 말인가? 목노인의 시신에서 독이나 다른 이물질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으니, 분명 무언가로 찔러 죽였을 터. 하지만 그 무기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문주의 목소리에는 깊은 좌절이 배어 있었다.
답이 없는 밀실 살인 사건은 문파 전체를 혼란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때, 누군가 제안했다.
“문주님, 이런 괴이한 사건은… 보통의 지혜로는 풀 수 없습니다. 세간에 ‘와룡재사(臥龍才士)’라 불리는 사영(謝影) 님께 도움을 청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비록 무공은 그리 뛰어나지 않으나,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통찰력으로 천하의 난제를 풀어왔다고 합니다.”
문주는 잠시 망설였다. 사영은 무림인이 아니었다. 그를 부른다는 것은 청월문의 무능함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었다.
며칠 뒤, 청월문 어귀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낡았지만 깨끗한 비단 도포를 입고, 한 손에는 낡은 부채를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리지 않은 듯 창백했고, 여윈 몸은 뼈대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깊은 호수처럼 고요하면서도, 그 안에 무한한 지혜를 품고 있는 듯했다. 그가 바로 사영이었다.
사영은 고월당으로 안내되었다.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그는 부채를 접어 옆구리에 끼우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방 안을 훑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먼지 한 톨, 벽의 미세한 균열, 천장의 그림자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청월문주와 장로들은 그를 주시했다. 과연 이 나약해 보이는 서생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영은 먼저 시신이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는 책상 위를 유심히 살폈다. 다 식어버린 차 한 잔, 가지런히 놓인 붓과 먹, 그리고 펼쳐진 백지 한 장. 백지 위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방 한켠에 놓인 향로에서는 거의 다 타들어 간 향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목노인께서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운 뒤, 글을 쓰거나 무공 비급을 정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호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분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분이셨지.”
“그런데 백지라… 평소 같았으면 분명 무엇이든 적혀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사영의 시선이 백지에 머물렀다. “차는 이미 식어 있었고, 향은 거의 다 타들어 갔습니다. 이는 목노인께서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신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변을 당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려던 찰나, 혹은 글을 쓰기 직전에 살해당하셨을 겁니다.”
사영은 천천히 방문으로 향했다. 그는 굳게 닫혔던 문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 문의 빗장은 매우 단단한 쇠로 되어 있고, 안에서만 걸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한, 창문의 쇠창살과 걸쇠 역시 안에서만 조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요.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소, 와룡재사. 그래서 모두가 이것을 밀실 살인이라 부르는 것이오.” 문주가 답했다.
사영은 문고리와 빗장을 한참 동안 만져보았다. 그의 손길은 마치 맹인이 사물을 더듬어 알아내려는 듯 조심스러웠다.
“이 빗장에는… 아주 미세한 홈이 있군요.”
그의 손끝이 빗장의 손잡이 부분, 안쪽으로 동그랗게 파인 곳을 스쳤다. 그곳에는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마치 바늘로 긁은 듯한 흔적이 있었다.
“이것은… 분명 빗장을 잠그는 데 사용된 흔적입니다. 하지만 빗장은 안에서 걸려 있었고, 범인은 나갔으니…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장로들이 수군거렸다. 어떤 장로는 사영이 쓸데없는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영은 고월당의 구조를 잠시 머릿속으로 그려보더니,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범인은 목노인께서 문을 잠그시기 전부터 이미 이 방 안에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노인께서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고, 백지 앞에 앉아 글을 쓰려는 순간, 기습적으로 그분을 살해했습니다. 목노인께서는 미처 반항할 틈도 없었을 테고요. 그래서 방 안이 이토록 정돈되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지 않소! 범인이 어떻게 이 밀실을 빠져나가고, 다시 안에서 잠글 수 있단 말인가?” 백호 장로가 다그치듯 물었다.
사영은 빙긋이 웃었다. “범인은 빗장을 다시 잠그기 위해 이 방을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간 뒤에도 빗장을 잠글 수 있었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청월문의 고월당 빗장은 세월의 흔적이 깊습니다. 그리고 이 빗장의 손잡이 부분에는 작은 홈이 파여 있지요. 범인은 아주 가는, 하지만 견고한 실이나 쇠줄을 이용했을 겁니다. 예를 들면, 거미줄처럼 가늘고 강인한 ‘천잠사(天蠶絲)’ 같은 것이겠죠. 그 끝에는 갈고리처럼 생긴 미늘이 달려 있었을 겁니다.”
사영은 문틈을 가리켰다. “범인은 목노인을 살해한 후, 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문을 거의 닫은 상태에서, 자신의 손에 든 천잠사에 달린 미늘을 이 문틈이나 열쇠구멍을 통해 방 안으로 집어넣었을 겁니다.”
그의 손짓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 미늘을 빗장의 손잡이 홈에 정확히 걸어, 밖에서 잡아당긴 것이죠. 살수(殺手)가 지닌 심후한 내공(內功)으로 천잠사를 끌어당겼으니, 빗장은 굳게 잠겼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천잠사의 미늘은 특수한 장치로 되어 있어, 빗장이 잠긴 후에는 다시 오므려져 천잠사와 함께 깨끗하게 회수되었을 테고요. 그리하여 방 안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고, 빗장은 안에서 걸려 있는 완벽한 밀실 살인이 완성된 것입니다.”
모두가 경악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기묘묘한 수법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그런 기이한 무공과 지혜를 지녔다는 말이오?” 문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영은 잠시 침묵하더니, 시선을 책상 위의 백지로 돌렸다. “목노인께서 죽기 직전, 무엇을 쓰려 하셨을까요? 그리고 누가 그 글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했을까요?”
그는 다시 문주와 장로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멈추었다.
그는 목노인의 수제자이자 청월문의 차기 무공 비급 관리자를 맡을 것으로 유력했던 강운(姜雲)이었다. 강운은 언제부턴가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고, 사영의 시선이 닿자마자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목노인께서는 최근, 청월문의 전대 문주가 남긴 무공 비급 중, 한 장의 숨겨진 비급을 발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비급에는 과거 청월문의 문파를 뒤흔들었던 한 장로의 추악한 비밀과, 그가 저질렀던 죄상이 담겨 있었죠. 강운 사제, 그 비급의 내용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사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으나, 그 안에는 서늘한 칼날이 숨어 있었다.
강운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은 피가 모두 빠져나간 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목노인께서는 그 비급을 정리하시던 중, 저의 아버지께서 저지른 과오를 발견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강운의 자백은 흐느낌에 섞여 간신히 이어졌다. 그는 목노인이 글을 쓰려는 순간, 그 비급의 내용이 세상에 공개될 것을 막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가 평소 수련하던 미세한 기력을 이용한 물체 조작술을 응용하여 밀실 트릭을 완성했던 것이다. 그가 목노인에게서 빼앗은 무기는 산속 깊이 던져버렸다고 했다.
사건은 해결되었다. 밀실의 비밀은 풀렸고, 범인은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사영은 청월문을 떠나기 전, 문주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인간의 마음만큼 예측 불가능하고, 인간의 욕망만큼 깊이를 알 수 없는 밀실은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빗장보다, 사람의 마음에 숨겨진 빗장을 푸는 것이 더욱 어려운 법이죠.”
그는 다시 부채를 펼치고, 고월당을, 그리고 청월문을 뒤로한 채 유유히 산길을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고, 청월문에는 깊은 침묵과 함께, 인간의 어두운 욕망이 남긴 그림자만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