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그림자가 낡은 계단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 에테르 학원 지하 3층.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고위 마법사들의 은밀한 연구실과 금서들이 잠들어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죽음의 침묵만이 흐르는 미지의 나락이었다. 철제 난간은 녹슬어 있었고, 벽에는 축축한 곰팡이가 검은 얼룩을 만들었다. 유진이 손끝에서 피어낸 희미한 루멘이 길을 밝혔다.
“강민, 더 이상은…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아.” 유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책으로만 보던 고대 봉인 마법의 흔적들이 삐걱거리는 문틈이나 갈라진 벽에 불길한 문양으로 남아 있었다.
강민은 대답 없이 묵직한 마법검 ‘천둥발톱’의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그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학원의 생존자들이 모두 피난하거나 좀비로 변했을 때, 그는 결코 지하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원 깊숙한 곳에서 새어 나오던 기이한 진동과 소음이 그를 이끌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좀비의 포효와는 다른,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불규칙한 박동이었다.
“이게 학원의 종말을 가져온 원천일지도 몰라.” 강민의 낮은 목소리가 텅 빈 복도에 울렸다. “알아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도망칠 수 없을 테니까.”
유진은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불안감은 타당했다. 이 지하 구역은 단순히 버려진 공간이 아니었다. 공기 자체가 무겁고 끈적했으며, 썩은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성의 비릿한 향이 섞여 있었다. 어쩌면 피와 철, 그리고 실패한 마법의 잔해에서 나는 냄새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통과한 복도 끝, 거대한 이중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에는 에테르 학원의 상징인 별자리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지만, 그 위로는 붉고 검은 물감으로 덧칠된 듯한 기괴한 형상들이 덧씌워져 있었다. 유진이 손을 들어 문양에 가까이 대자, 그녀의 손바닥 아래에서 고대의 룬 문자들이 섬광처럼 빛났다.
“봉인… 아주 강력한 봉인 마법이야. 단순한 잠금장치가 아니었어. 뭔가 엄청난 걸 가두기 위한… 격리용 봉인.” 유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봉인은 외부의 힘으로 해제된 흔적이 없어. 내부에서… 파괴되었거나, 혹은 스스로 열린 것 같아.”
강민은 검집에서 천둥발톱을 뽑아 들었다. 푸른빛이 도는 칼날에 희미한 전류가 스쳤다.
“뭐가 됐든,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
철문은 이미 굳게 닫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틈새로 음습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들은 문을 억지로 열어젖힐 필요도 없었다. 문 양쪽에 새겨진 봉인 룬들이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검은 액체가 끈적하게 스며 나오고 있었다. 액체는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쥐죽은 듯 스며들어 사라졌다.
“이건… ‘생명 정수 변환 마법’의 부산물 같아.” 유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서고에서 몰래 보았던 금지된 서적의 내용을 떠올렸다. 마나를 이용해 생명력을 조작하고, 심지어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려던 사악한 실험들. “학원 설립 초기부터 금지된… 저주받은 마법이었는데…”
바로 그때, 문 너머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단순한 좀비의 신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수십 개의 목구멍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듯한, 고통과 절규가 뒤섞인 소리였다. 이어서 쿵, 쿵 하는 무거운 발소리가 문 안쪽에서 울렸다. 평범한 좀비의 움직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박력.
강민은 유진을 등 뒤로 밀치며 천둥발톱을 앞으로 겨눴다. “뒤로 물러서, 유진. 이건 우리가 상대해 온 것들과는 달라.”
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강민! 봉인이… 봉인이 풀리고 있어!”
그녀의 말과 동시에, 문에 새겨진 붉고 검은 기괴한 형상들이 더욱 선명해지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문 자체가 살아있는 괴물의 피부인 것처럼. 그리고 이윽고, 거대한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문을 구겨버리는 것처럼.
쾅!
철문은 산산조각 나며 안쪽으로 뜯겨 나갔다. 맹렬한 흙먼지와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은, 기대했던 좀비 무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형상이었다.
다섯 개의 팔을 가진 인간형 괴물. 몸은 검붉은 끈적한 액체로 뒤덮여 있었고, 그 사이로 뒤틀린 근육과 뼈대가 비쳐 보였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턱이 으스러진 채 입을 벌린 해골이 박혀 있었고, 눈구멍에서는 희미한 붉은 빛이 일렁였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 괴물의 몸통 곳곳에 마치 뿌리처럼 박혀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모두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유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입을 벌린 채, 두 눈 가득 공포를 담고 괴물을 응시할 뿐이었다. 강민조차도 잠시 숨을 멈췄다. 이런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좀비 아포칼립스 속에서 그는 수많은 변이체를 마주했지만, 이토록 순수한 절망과 역겨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저게… 저게 마나의 왜곡으로 만들어진 존재야?” 유진이 속삭였다. 그녀의 손에서 루멘의 빛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생명 정수를 강제로 흡수하고, 변형시켜 만들어낸… 실패한 마법병기…”
괴물은 다섯 개의 팔을 동시에 움직여 강민과 유진을 향해 돌진했다. 그 움직임은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고, 거대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은 주변의 모든 공기를 진동시켰다.
“피해!” 강민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괴물의 팔 하나가 마치 채찍처럼 뻗어 나와 강민의 검을 강타했다. 쨍그랑! 천둥발톱이 손에서 미끄러져 날아갔다. 강민의 몸이 충격에 의해 뒤로 튕겨 나갔다.
“강민!” 유진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곧장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괴물의 두 번째 팔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은 액체가 스며 나오는 끔찍한 팔이 유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들렸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몸에 닿은 괴물의 피부가 차가운 독처럼 그녀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밀려왔다.
“크… 흐윽… 놔… 놔줘…!” 유진이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괴물의 얼굴에서 붉은 눈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강민은 바닥에 쓰러진 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절망했다. 천둥발톱은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온몸이 심하게 울렸다.
괴물은 유진을 들어 올린 채, 거대한 입을 벌렸다. 턱이 부서진 해골 입 안에서 수많은 뒤틀린 영혼들의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안쪽 깊은 곳에서, 시커먼 구체가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모든 생명력을 집어삼킬 듯한 블랙홀처럼.
유진의 몸에서 빛이 희미해져 갔다. 그녀의 얼굴은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안 돼… 안 돼!” 강민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몸 안에서 잠자고 있던 원초적인 마력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피가 끓고,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그는 천둥발톱이 떨어진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의 눈에, 유진의 몸이 괴물에게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유진!” 강민의 외침은 절규가 되었다.
그의 손이 천둥발톱의 손잡이에 닿는 순간, 검은 칼날이 강렬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단순한 전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폭풍을 응축해 놓은 듯한, 순수한 파괴의 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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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