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입맞춤
찬 공기가 폐부를 찢을 듯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나는 손전등 불빛 아래 드러난 바위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매끄럽게 마모된 돌에는 세월의 흔적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지도에도, 그 어떤 민간 설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오직 한 줌의 조악한 고문서에만 그 존재가 암시되었을 뿐.
“이게 진짜… 말이 되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도윤 씨?”
등 뒤에서 윤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작은 드론을 조종하며 동굴 입구를 스캔 중이었다. 파란색 스크린 빛이 그녀의 안경 너머로 번뜩였다. 윤슬은 항상 냉철한 시각을 유지하는 팀의 브레인이었다. 이런 종류의 ‘이상한’ 일에 가장 먼저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었다.
“말이 안 되는 게 말이 되는 거지.” 내가 짧게 대꾸했다. “그게 우리가 여기 온 이유 아니겠어?”
현우는 이미 밧줄을 매고 있었다. 굵은 근육이 새카만 작업복 아래서 꿈틀거렸다. 그는 우리가 발을 들이는 모든 미지의 공간에서 언제나 선두에 섰다. 무뚝뚝하지만 누구보다 믿음직한 사내였다.
“입구가 꽤 깊습니다. 자연 동굴 같지 않아요. 정교하게 다듬어진 흔적이 여기저기 보여요.” 현우가 굵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의 손전등 불빛이 아래쪽 어둠 속으로 먹혀 들어갔다.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아요.”
나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거대한 자연의 틈새인 줄 알았던 곳은, 자세히 보니 인공적인 손길이 닿아 있었다. 거친 바위 사이사이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석재들이 마치 거인의 입처럼 벌어져 있었다. 그 안에서는 습하고 퀴퀴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쇠붙이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드론부터 먼저 보낼게요.” 윤슬이 말했다. “내부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작은 드론이 굉음을 내며 어둠 속으로 날아들었다. 윤슬의 태블릿 화면에는 뿌옇고 거친 영상이 나타났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통로, 천장에서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그리고…
“잠시만요.” 윤슬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섞였다. “이게 뭐죠? 벽에… 문양 같은데요?”
나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드론의 불빛이 닿은 곳에는 어둠을 뚫고 기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과 동물의 형상, 그리고 그 둘이 뒤섞인 듯한 괴이한 형상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어떤 것은 비명을 지르는 듯했고, 어떤 것은 경고하는 듯했다. 마치 영원한 고통에 갇힌 영혼들의 그림자가 벽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고대 문명의 흔적일 수도 있겠네요.” 내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문양들은 내가 아는 어떤 문명과도 닮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미지의 영역에서 온 것 같은 이질감이 강했다.
드론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화면 속 통로는 생각보다 넓었고, 예상보다 깊었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통로의 끝에서 드론은 멈춰 섰다. 그리고 화면에 잡힌 것은…
“젠장.” 현우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드론의 렌즈가 포착한 것은 거대한 석실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했고, 벽면은 온통 기이한 문양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중앙에는 기단처럼 솟아오른 제단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무엇인가가 놓여 있었다. 드론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의 형체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닌, 거대한 짐승의 뼈였다. 검고 매끄러운 뼈는 마치 오랫동안 기름을 먹인 듯 윤기가 흘렀고, 그 형상은 늑대와 닮았지만 늑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괴한 형태였다. 머리뼈는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척추는 뒤틀려 있었으며, 갈비뼈 사이사이에는 짐승의 것이라기엔 너무나도 섬세하고 날카로운 칼날 같은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뼈의 주위에는 검붉은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피… 인가요?” 윤슬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드론이 보내는 영상을 계속 응시했다. 화면 너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그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잊힌 신들이 깃들어 있을 법한 숭고한 섬뜩함,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미지의 존재가 서려 있는 듯한 불경한 기운이었다.
“윤슬, 드론 복귀시켜.” 내가 나직이 말했다.
“네?”
“지금 당장.”
내 목소리에는 그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윤슬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드론을 조종해 되돌려 보냈다. 드론이 다시 동굴 입구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침묵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만을 들었다.
마침내 드론이 우리 앞에 착지하자, 나는 가방에서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현우는 이미 내려갈 준비를 마친 채 밧줄을 잡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굳어 있었지만, 두 눈에는 탐험가의 빛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준비됐어?” 내가 물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슬은 아직도 태블릿을 든 채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도윤 씨, 저건… 우리가 아는 생명체가 아니에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언가 불길해요.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잊었나? 나는… 내 동생이 남긴 마지막 기록을 확인해야 해. 그가 이 미지의 어둠 속에서 무엇을 찾고, 무엇을 마주했는지.”
그 말에 윤슬은 더 이상 반론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고, 나도 밧줄을 잡았다.
“내가 먼저 내려갈게. 그 다음 윤슬, 마지막 현우.”
현우는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파고들었고, 발밑의 돌멩이들이 불안하게 굴렀다. 손전등 불빛이 벽을 스치자, 드론 영상으로 보았던 그 기이한 문양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 문양들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묘한 형상들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점점 더 복잡하고 불쾌하게 변해갔다. 마치 어둠 속의 존재들이 우리의 접근을 경고하는 듯, 혹은 비웃는 듯한 모습이었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마침내 내 발이 단단한 석실 바닥에 닿았다. 윤슬과 현우도 차례로 내려왔다. 우리는 손전등을 사방으로 비추었다. 드론 영상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훨씬 더 압도적인 공간이었다.
석실 중앙의 제단 위에는 거대한 짐승의 뼈가 여전히 그로테스크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뼈는 더욱 검고 섬뜩했다. 칼날 같은 조각들이 뼈에 박혀 있는 게 아니라, *뼈 그 자체가* 칼날처럼 자라난 것 같았다. 그 주변에 말라붙은 핏자국은 더욱 선명했고,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방금 흘린 피처럼 생생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생물이죠?” 윤슬이 경악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제단으로 다가갔다. 뼈에서는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마치 잠자는 거인이 내쉬는 숨결처럼, 주변 공간을 미세하게 떨게 만드는 듯했다.
그때, 현우가 제단 뒤편의 벽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이봐요, 이쪽도 뭔가 있습니다!”
우리가 돌아보자, 현우의 불빛이 닿은 곳에는 거대한 벽화가 드러났다. 높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벽화는 이곳의 모든 문양을 집약한 듯 기괴하고 복잡한 형상으로 가득했다. 그 중앙에는 거대한 짐승의 그림자가 그려져 있었다. 방금 우리가 본 제단 위의 뼈와 너무나도 흡사한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 짐승의 그림자 앞에는 무릎을 꿇은 인간 형상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그들은 손을 들어 짐승을 숭배하는 듯했고, 일부는 자신의 몸을 찢어 바치는 듯한 섬뜩한 모습이었다. 벽화의 색감은 검붉은 톤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핏빛으로 그려진 듯한 알 수 없는 상징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 위, 가장 높은 곳에는 하나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었다. 세 개의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듯한 형상.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섬뜩한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그 상징을 응시하는 순간, 등골을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동시에 어딘가에서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수천 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해지는, 잊힌 신의 속삭임.
*’왔느냐… 어리석은 필멸자여.’*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천장은 까마득한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마치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오한이 느껴졌다.
그때, 윤슬이 비명을 질렀다.
“도윤 씨! 저것 좀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벽화의 가장자리였다. 벽화의 붉은 물감 사이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듯한 검붉은 액체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벽화에 그려진 비명 지르는 인간들의 입술에서, 짐승의 눈동자에서, 그리고 세 개의 눈동자 상징에서…
마치 방금 그려진 그림처럼, 벽화가 다시 숨 쉬기 시작한 것처럼.
나는 굳어진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컬트 호러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듯한, 살아있는 그림이 우리를 덮쳐오고 있었다. 이 잊힌 유적의 심연은 단순히 고대의 비밀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살아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새로운 희생자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의 눈동자가 번뜩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심연이 우리에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