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녹슨 용의 심장**
**챕터 1: 하늘을 가리는 탑, 땅을 긁는 비**
네온사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녹슨 고가도로 아래, 한 뼘 남짓한 그림자를 밟으며 걷던 사내, 강유진은 낡은 후드티를 더 깊이 눌러썼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자기부상 자동차들의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강유진의 눈동자 안에서 희미하게 푸른 잔상이 일렁였다. 눈동자 깊숙이 박힌 싸구려 사이버네틱 임플란트가 미세하게 윙윙거렸다.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천룡(天龍) 기업’의 로고가 모든 대형 스크린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빌어먹을.”
유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손목에 달린 낡은 데이터패드가 지지직거렸다. 오늘 밤도 일거리는 없었다. 뒷골목의 소소한 잡일조차 이제는 AI 로봇에게 빼앗기는 시대였다. 유진 같은 ‘구식’ 육체 노동자는 점점 설 곳을 잃어갔다.
그때였다. 도시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모든 스크린의 영상이 일제히 전환되었다. 천룡 기업의 총수, 강철을 녹여 만든 듯한 얼굴의 사내가 홀로그램으로 우뚝 섰다. 그의 뒤편으로는 거대한 무한정원(無限庭園)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천룡 기업의 심장부였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사내의 목소리가 도시의 모든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인공지능이 조작한 음성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압도적인 위압감은 여전했다.
“알다시피, 이 도시는 오랜 평화를 누려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강함에서 오는 법. 그리하여 천룡은 새로운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무한정원 대무도회(無限庭園 大武道會)’를 개최할 것입니다!”
술렁임이 시작되었다. 뒷골목의 싸구려 술집에서, 옥상의 무허가 도박장에서, 심지어 노숙자들이 웅크린 다리 밑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홀로그램으로 향했다. 무도회? 구식 무술 따위가 통하는 시대는 진작에 끝난 줄 알았건만.
“이 대회는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천하의 운명을 가를, 역사에 기록될 유일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우승자에게는 천룡의 ‘심장’, 즉 도시를 움직이는 모든 권한과 함께 무한한 부와 명예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강철 같은 사내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이 도시의 모든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제어권’이 주어질 것입니다.”
유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완전한 제어권’. 그것은 단순한 부와 명예 이상의 의미였다. 천룡 기업이 만들어낸, 모든 시민의 삶을 지배하는 네트워크, ‘패러다임’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 한때, 그 시스템을 해킹하려다 실패한 전설적인 해커가 있었지. 그리고 그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유진은 낡은 벽에 기대어 섰다. 낡은 패드에서 무도회 참가 신청 공고가 빛났다. 조건은 간단했다. ‘무술’을 익힌 자라면 누구나. 단, 참가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이익은 본인 책임.
“이 미친 짓거리에 누가 목숨을 걸겠어.”
유진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어느새 공고문의 작은 글씨에 박혀 있었다. ‘최종 우승자는… 망실된 고대 무술, ‘비천각(飛天脚)’의 전수자가 된다.’
비천각. 아득한 옛날, 그림자 속에 숨어 무림을 지배했다는 전설의 무술. 유진의 뇌리 속에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낡은 도복을 입은 노인의 잔상, 매서운 발차기 소리, 그리고 차갑게 식어가는 스승의 눈동자…
밤의 거리를 뚫고 유진의 귓가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유진아, 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야 한다.”
유진은 주머니에서 낡은 홀로그램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앳된 자신과, 온화하게 웃고 있는 노인이 함께 서 있었다. 그의 스승, 폐허가 된 도장에서 유진에게 무술을 가르쳐주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스승은 비천각의 마지막 전수자였다. 적어도 유진이 알기론 그랬다.
“망할 영감… 이걸 노리고 있었나?”
유진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스승은 생전에 언제나 비천각의 재림을 꿈꿨다. 하지만 이딴 사이버펑크 도시에서? 천룡 기업의 미친 계획 속에서?
주먹을 꽉 쥐자 낡은 기계 팔의 이음새가 삐걱거렸다. 긁힌 자국과 녹슨 부분이 선명한 팔이었다. 몇 년 전, 스승을 지키려다 잃어버린 자신의 팔을 대신해 박아 넣은 싸구려 의수였다.
‘스승님… 제가 이걸 해야 할까요?’
대답 없는 질문이 허공에 흩어졌다. 하지만 유진의 발걸음은 이미 향하고 있었다.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천룡 기업 지부의 빛나는 로고를 향해. 그의 눈동자에, 푸른빛 사이버 임플란트가 격렬하게 타올랐다. 녹슨 용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