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밤의 바닥 구역은 언제나 축축하고 숨 막혔다. 아르콘 폴리스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 채,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마천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 태양은 이곳까지 그 빛을 제대로 비추지 못했다. 오직 낡고 부서진 네온사인만이 어둠을 찢고 번져나와, 재활용 불가능한 폐기물 더미와 오염된 공기 속에서 간신히 숨 쉬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릴 뿐이었다.

아린은 익숙하게 지상 12미터 높이에 설치된 좁은 철제 통로를 따라 걸었다. 녹슨 난간을 짚을 때마다 손바닥에 끈적한 이물질이 묻어났다. 그녀의 눈은 익숙한 밤의 시야 필터가 적용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선명하게 포착하는 개조된 안구는 바닥 구역의 치안 유지에 필수적인 도구였다. 오늘 밤도 저 멀리서 집행관들의 순찰 드론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은 언제나 제시간에 나타나, 법과 질서라는 명목 아래 가장 취약한 자들을 짓밟았다.

그녀의 목적지는 낡은 철제 컨테이너들이 빼곡히 쌓여 만들어진 미로 같은 주거 단지 가장 안쪽, 쥐새끼들조차 외면할 것 같은 비좁은 공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그녀가 어제저녁에 남겨둔 싸구려 합성 식품의 잔향이 코를 찔렀다. 아린은 익숙하게 한쪽 벽에 걸린 낡은 스위치를 올렸다. 천장의 튜브 라이트가 깜빡이며 희미한 불빛을 토해냈다.

좁은 공간의 절반은 그녀의 침대가, 나머지 절반은 작업장이었다. 조악하게 연결된 모니터들이 빛을 뿜어내고, 각종 부품과 공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아린은 작업대 앞에 앉아, 한 손에는 납땜 인두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섬세하게 회로 기판을 조작했다. 그녀의 개조된 안구는 미세한 패턴과 연결 부위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오늘 그녀가 다루는 것은 불법 개조된 통신 모듈이었다. 대제국 아르콘이 엄격하게 통제하는 통신망을 우회하기 위한 장치. 이걸 팔아넘겨야 오늘 저녁 한 끼를 더 때울 수 있을 터였다.

밖에서는 끊임없이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건설 로봇들이 새로운 마천루를 올리는 소리였다. 바닥 구역 바로 위, 중층 구역에 부유한 자들을 위한 새로운 거주지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그 소리는 마치 바닥 구역 사람들의 심장을 짓밟는 망치 소리처럼 들렸다.

“젠장, 또 시작이네.”

아린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옆구리에 찬 낡은 홀스터 속에서 권총 손잡이가 만져졌다. 언제나 준비된 상태로 있어야 했다. 이곳에서는 제국의 집행관들뿐만 아니라 같은 구역의 불량배들까지도 조심해야 했다.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모니터 하나가 깜빡이더니 암호화된 메시지를 띄웠다.

`새벽 2시, 3구역 정션. 새로운 물건. 급함.`

보낸 이는 ‘고릴라’. 바닥 구역에서 가장 큰 정보상 중 한 명이었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다급하게 연락하지 않는데. 아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급하다는 건 보통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하지만 돈이 될 거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녀는 방금 완성한 통신 모듈을 테스트하며 고릴라에게 답장을 보냈다.

`알았다. 준비해 놔.`

***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린은 낡은 방한 재킷을 걸치고 작업실을 나섰다. 밖은 여전히 어둡고 스산했다. 가끔씩 불법 노점상들이 피워놓은 작은 불꽃이 연기를 내뿜으며 거친 바람에 흔들렸다.

그녀가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앞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자동소총의 연발 사격음과 비명. 아린은 반사적으로 몸을 벽 뒤에 숨겼다. 무슨 일인가. 곧이어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마! 아르콘 제국의 법을 위반했다!”

집행관들이었다. 세 명의 강화복을 입은 집행관들이 한 노인을 에워싸고 있었다. 노인의 손에는 낡은 배급 통신기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제국의 공식 통신망을 우회하여 외부와 연락하려 했던 모양이었다. 불법 통신은 중범죄로 분류되었다.

“살려주시오! 내 아들이 위독하오! 의사를 불러야만…”

노인이 애원했지만, 집행관들은 냉정했다. 그들의 강화 헬멧 너머로 감정이 읽히지 않는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불법 통신 시도. 제국 보안 프로토콜 47-B 위반. 체포한다.”

한 집행관이 노인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 노인이 저항하자, 다른 집행관이 그의 옆구리를 전기로 충격했다. 노인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순간, 그의 낡은 배급 통신기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화면 속에는 어린아이의 희미한 영상이 깨진 채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울렸다. 저 노인. 분명 몇 번인가 그녀의 작업실 근처에서 마주쳤던 얼굴이었다. 손녀딸을 위해 언제나 더 좋은 배급품을 찾던 착한 노인이었다. 대제국 아르콘은 아픈 자식의 생사를 알기 위한 아버지의 간절함마저도 죄로 다스렸다. 저들에게는 오직 제국의 명령만이 있을 뿐이었다.

“젠장…”

아린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지금 나서봤자 죽거나 잡혀갈 뿐이었다. 저들은 수적으로 우세했고, 장비도 월등했다. 아린은 눈을 감았다. 노인이 끌려가는 소리와, 그 주위에 모여들었다가 이내 무표정하게 흩어지는 바닥 구역 사람들의 무기력한 움직임.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심장을 짓눌렀다.

이것이 바닥 구역의 현실이었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모든 것이 억압받는 삶.

***

아린은 노인이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몸을 숨긴 채 3구역 정션으로 향했다. 고릴라가 부른 그곳은 바닥 구역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거대한 배수로와 연결된 버려진 물류 창고였다. 그곳은 제국의 눈길이 미치기 어려운 은밀한 거래와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습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몇몇 그림자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창고 가장 안쪽, 희미한 비상등이 켜진 곳에 고릴라가 서 있었다. 그는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사내였다.

“늦었군, 아린.”

고릴라는 그녀를 보자마자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길이 좀 막혔어. 집행관들이 사고를 치고 있더라고.”

아린은 노인을 떠올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고릴라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늘 있는 일이지. 어쨌든, 네가 급하게 필요할 만한 물건을 가져왔다.”

고릴라는 탁자 위로 작은 금속 상자를 내려놓았다. 아린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복잡한 회로와 미세한 배선으로 이루어진 장치가 들어 있었다. 언뜻 봐도 일반적인 통신 모듈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게 뭔데?”

“대제국 아르콘의 중앙 통제망을 한 방에 뚫을 수 있는 장치다. ‘그림자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한 열쇠라고 보면 돼.”

고릴라의 말에 아린의 눈이 커졌다. 그림자 네트워크. 그것은 바닥 구역의 전설과도 같은 것이었다. 제국의 모든 감시와 통제를 피해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존재조차 불분명했던 비밀 통신망. 설마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단 말인가?

“제정신이야? 이게 진짜라면, 제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

“물론이지. 그래서 급한 거야.”

고릴라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는 더 이상 제국의 개처럼 살 수 없어.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죽어나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에 지쳤다고.”

그의 눈빛에서 강렬한 불꽃이 타올랐다.

“제국은 썩어빠졌어.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이제 이 썩어빠진 제국을 끌어내릴 때가 왔어.”

“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야?”

아린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섞였다. 제국에 대한 분노는 그녀의 심장에도 있었지만, 그 거대한 힘에 맞선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다. 수십 년간 수없이 많은 반란이 시도되었지만, 모두 제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정보력 앞에 덧없이 스러져갔다.

“혼자라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이 장치는 다른 구역의 동지들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이제 때가 됐어. 대제국 아르콘의 심장에 칼을 꽂을 때가.”

고릴라는 아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네 기술을 믿는다, 아린. 이 장치를 활성화하고, 다른 그림자들과 연결해라. 제국의 감시망을 뚫고, 정보를 모아.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진실과 연대다.”

아린은 손에 든 장치를 내려다봤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물건이 아니었다.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바닥 구역 사람들의 절규와 희망이 담긴 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다시 한 번 거세게 요동쳤다. 노인의 비명소리, 끌려가던 그의 뒷모습, 그리고 제국의 무자비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아린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그녀의 심장 깊은 곳에서 꺼지지 않던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고릴라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먼저, 제국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