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을 닫혀 있었을 통로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눅진한 습기가 코끝을 스쳤다. 유진은 손전등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빛줄기가 닿는 곳마다 검은 이끼가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런 곳에 통로가 있을 줄이야….” 강민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침착했지만, 미묘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등 뒤로 낡은 배낭의 무게가 축 늘어졌다. 우리는 며칠째 이 지하 미로를 헤매는 중이었다. 고대 기록에서 희미하게 언급된 ‘별의 심장’을 찾아서. 이 미지의 에너지가 과거의 어느 문명을 지탱했고, 동시에 멸망시켰다는 기이한 전설을 쫓아서.
“이상해, 강민 씨. 이 벽의 재질….” 유진의 손이 차가운 벽을 더듬었다. 일반적인 암반이 아니었다. 매끄럽고, 검은색을 띠었지만 돌이라기엔 너무나 균일했다. 마치 거대한 거울을 갈아놓은 듯한 느낌. 손전등 빛을 비추자 섬뜩하게 빛을 흡수하는 것 같았다. “흡수율이 비정상적이에요. 빛을 반사하는 게 아니라… 삼키는 것 같아요.”
“고고학자가 아니고 재료공학자 같군.” 강민이 피식 웃었지만, 그의 눈은 유진의 손이 닿은 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직업은 과거의 전장 전문 탐색가였다. 위험한 지역에서 유물을 찾아내는 일이 주 업무였지만, 이런 미지의 공간은 그에게도 이질적이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뚫을 건가? 아무리 봐도 그냥 벽인데.”
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뚫는다는 개념이 아닐 거예요. 이건… 문이에요. 분명히.” 그녀는 가방에서 스캐너를 꺼내 벽에 밀착시켰다. 삐비빅, 하는 기계음과 함께 벽의 내부 구조가 액정 화면에 나타났다. “제 말이 맞죠? 보세요. 이 부분. 미세한 틈새가 있어요. 하지만 육안으로는 절대 알아볼 수 없게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죠.”
화면에는 검은 벽 안에 복잡하게 얽힌 회로망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현대 기술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정교함이었다.
“이런 기술이… 대체 어느 시대의 것이란 말인가.” 강민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놀랍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분명 흥미를 느낀 것이었다. “그럼 이걸 열 방법은?”
“음… 단순한 물리적 힘으로는 불가능해요. 분명 어떤 ‘열쇠’가 있을 거예요. 아니면… 어떤 에너지 파동이라던가.” 유진은 생각에 잠겨 손전등을 든 손으로 턱을 괴었다. 눈은 스캐너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문득 한 지점에서 멈췄다. 벽 중앙에서 미약하게 깜빡이는 붉은 점.
“강민 씨, 여기 보세요. 이 부분. 아주 미약한, 하지만 일정한 파동이 감지돼요. 마치… 심장 박동 같아요.”
강민이 다가와 화면을 들여다봤다. “흐음… 이건 내 장비로도 감지 못했던 건데.” 그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조각을 꺼냈다. 모양은 단순한 삼각형이었지만, 표면에는 섬세한 고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별의 심장’에 도달하기 위한 열쇠라고 했지?”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금속 조각은 그들이 수없이 많은 위험을 뚫고 이 유적 깊은 곳까지 올 수 있었던 유일한 단서였다. 고대 문서에서 ‘별의 심장으로 가는 길을 여는 자’라고 묘사된 유물이었다.
“일단 저 파동이 나는 곳에 이 조각을 대봐야 할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유진이 말했다.
강민은 조심스럽게 금속 조각을 붉은 점이 깜빡이는 벽 중앙에 가져다 댔다. 조각이 벽에 닿는 순간, 유진의 스캐너에서 삐익- 하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동시에 금속 조각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벽에 흡수되는 듯이 달라붙었다.
‘쉬이이이잉….’
정전기가 이는 듯한 낮은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검은 벽 전체에 희미한 푸른빛의 선들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선들은 처음에는 불규칙하게 얽히는가 싶더니, 이내 어떤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리며 벽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 문양들이 벽 중앙, 금속 조각이 박힌 곳을 향해 수렴했다.
“움직인다…!” 유진이 숨을 삼켰다.
벽 중앙의 푸른 문양들이 하나의 거대한 원을 이루더니, 그 원 안에서 금속 조각이 다시 밝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더 강렬해져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었다.
“유진 씨, 뒤로 물러서!” 강민이 팔로 유진을 감싸 안고 뒤로 끌어당겼다.
콰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검은 벽 중앙이 안쪽으로 거대하게 함몰되었다. 빛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흩어지고, 거대한 문이 천천히, 하지만 거대한 힘을 동반하며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공간 사이로, 까마득한 어둠이 그들을 집어삼킬 듯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마치 심장이 뛰는 듯한 규칙적인 붉은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이 비추는 곳에는, 거대한 공간 속에 떠 있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드러났다.
마치 하나의 도시 전체가 뒤집혀 땅속에 박힌 듯한 거대한 구조물. 정체 모를 금속 재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탑들이 역방향으로 솟아 있었고, 그 사이를 알 수 없는 에너지 회로들이 붉은빛을 띠며 연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간의 중앙에는, 거대한 푸른빛의 구체가 떠 있었다. 그 구체는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듯한 압도적인 중력을 내뿜으며,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별의 심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무언가였다.
유진은 말을 잊은 채 입을 벌렸다. 강민 역시 굳어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푸른 구체에서 거대한 섬광이 번쩍이더니,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거대 도시의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붉은빛들이 동시에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들 사이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이이잉- 쿵! 콰아앙!
금속이 갈리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거대한 구조물 중 하나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지가 수천 년 만에 흩날리며, 잊혀진 고대 도시의 심장이 다시 박동하기 시작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 너머에서, 무언가 긁히는 듯한,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긁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떨어진 어둠 속에서, 붉은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유진은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눈이었다.
그들은… 깨어났다.
수천 년의 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