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어둠에 잠긴 기계음 가득한 작업실, 강이한은 렌치와 전력 증폭기를 들고 낡은 홀로그램 프로젝터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손은 유려하고도 정확하게 움직였다. 닳고 닳은 가죽 장갑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의 표정은 고요한 집중으로 가득했다. 벽에 걸린 낡은 지도들은 빛바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이름 모를 고대 유물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이한의 유일한 파트너인 작은 자율 로봇 ‘칩’이 그의 어깨에 앉아 미세한 렌즈를 깜빡이며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보라고. 아무리 옛날 물건이라도 심장이 멈추면 소용없잖아.”
이한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프로젝터 내부의 회로를 점검하던 그의 눈이 문득 한 지점을 가늘게 떴다. 전류 흐름이 불안정했다. 그는 이마를 찌푸리며 작은 납땜 인두를 들었다. 지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불꽃이 튀었고, 이한의 얼굴이 잠시 섬광에 물들었다.
“이런 젠장. 역시 쉬운 건 없어.”
그가 작게 욕설을 뱉었지만,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칩이 삐빅거리는 경고음을 내며 그의 시야에 미세한 진동 분석 그래프를 띄웠다.
“알아, 칩. 좀만 더.”
몇 분간의 씨름 끝에, 이한은 마침내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프로젝터에 전원을 연결하자,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작업실 한가운데에 투명하고 푸른빛을 띠는 고대의 문자가 공중에 떠올랐다. 흐릿했지만, 그 특유의 형태는 명확했다.
“성공이군. 이제 이거 팔아서 한동안은 숨 쉴 수 있겠어.”
이한은 손목에 찬 단말기를 들어올렸다. 그의 개인 채널이 켜지자, 익숙한 암호화된 메시지 목록이 스크롤되었다. 대부분은 한물간 유물을 사들이려는 장물아치들의 시시한 제안들이었다. 그는 몇 개를 대충 훑어보다가, 맨 위에 고정된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 하나에 시선을 멈췄다. 송신 시각은 불과 30분 전이었다.
[발신: [알 수 없음]]
[제목: 미확인 심층 탐사 의뢰]
[내용: 대상 유적: 미등록. 예상 심도: 5km 이하. 보수: 협의 후 결정. 선금: 500,000 크레딧. 관심 있다면, 좌표 [27.3N 128.5E]에서 48시간 내에 회신 바람.]
이한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미등록 유적, 예상 심도 5km 이하. 그리고 선금 50만 크레딧? 일반적인 의뢰가 아니었다. 50만 크레딧이면, 이 프로젝터를 열 개는 팔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그것도 선금으로.
“칩, 이거 봐라. 드디어 제정신이 아닌 놈이 나한테 찾아왔군.”
칩이 다시 삐빅거리며 메시지를 분석했다. 잠시 후, 칩의 렌즈가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경고: 메시지 발신지 추적 불가. 암호화 수준 최상. 위험도 매우 높음.”
“위험도는 항상 높았어, 꼬맹아. 중요한 건 보수지.”
이한은 피식 웃었다. 그가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이유도 바로 그 ‘위험하지만 거대한 보수’ 때문이었다. 그의 등 뒤로 낡은 벽걸이 스크린에 희미하게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짙은 눈매, 늘 조금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표정. 세상의 모든 피로를 짊어진 듯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 탐험가의 불꽃이 숨어 있었다.
이한은 좌표를 확인했다. 지도상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해양 심층부였다. 그것도 인류가 마지막으로 발자취를 남긴 지 수백 년이 지난 극오지. 미등록, 심층, 그리고 이런 장소. 이건 단순한 유적 발굴이 아니었다. 어쩌면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그곳’일지도 모른다.
그의 손가락이 잠시 망설이는 듯 단말기 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이내 결심한 듯 확고하게 ‘수락’ 버튼을 눌렀다. 50만 크레딧은 지금 그에게 절실했다. 낡은 장비들을 업그레이드하고, 빚을 갚고, 잠시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한은 곧장 채비를 시작했다. 고대 유적 탐사에 최적화된 슈트, 에너지 빔 커터, 다목적 스캐너, 그리고 비상용 산소 탱크. 그 모든 장비들이 그의 손길에 따라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칩은 그의 옆에서 조용히 장비 목록을 점검하며 누락된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이한, 네가 이걸 수락할 줄 알았어.”
다음 날 아침, 이한이 약속된 좌표에 도착하자, 그를 맞이한 것은 회색빛 금속으로 만들어진 매끄러운 수송선이었다. 주변은 온통 망망대해였고, 수송선은 마치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그림자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인공적인 불빛 아래 날카로운 인상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의 차가운 눈빛은 이한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신이 의뢰인이 보낸 사람인가.”
이한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불필요한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저는 코드네임 ‘그림자’라고 불러주십시오.”
여인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옷차림은 군복에 가까웠고, 허리에는 정체불명의 첨단 무기가 걸려 있었다.
“정보는요? 보통 이런 의뢰는 아무리 비밀이라도 최소한의 브리핑은 해주는 게 관례인데.”
이한이 비꼬듯이 말했다. 그림자는 그의 말에 흔들림 없이 답했다.
“정보는 현장에서 제공될 겁니다. 당신이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 질문은 최소화하십시오. 보수는 확실히 보장합니다.”
그림자의 말투는 단호했다. 이한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차가운 강철 같은 눈동자.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바닥에서 너무 많은 것을 묻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었다.
수송선은 조용히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는 해수의 압력에 의해 일그러진 푸른빛만이 가득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몇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심해에 다다랐을 때, 수송선은 마침내 거대한 해저 평원에 착륙했다.
이한은 슈트를 완벽하게 착용하고 수송선 내부의 에어록 앞에 섰다. 칩은 그의 어깨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림자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것이 의뢰인이 확보한 데이터입니다.”
그림자가 이한의 단말기에 데이터를 전송했다. 홀로그램으로 펼쳐진 것은 해저 지형도와 함께 붉은 점으로 표시된 하나의 지점이었다. 그 점은 단순한 지점이 아니었다. 거대한 균열, 아니, 하나의 인공적인 구조물처럼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의 일부였다.
“이게… 유적의 입구?”
이한의 목소리에 미약한 놀라움이 스쳤다. 그는 수십 년간 잊혀진 문명들의 흔적을 찾아 헤매었지만, 이런 규모의 것은 전설로나 듣던 이야기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의 아래. 정확히는 약 3.2킬로미터 아래. 강한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의뢰인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림자의 설명에 이한은 홀로그램을 확대했다. 붉은 점 아래로, 거대한 지하 구조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직사각형의 형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강렬한 에너지 파동이 명멸하고 있었다.
“미쳤군.”
이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수심 5km 아래에, 그 아래로 또 3km를 파고 들어간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라니.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송선은 여기서 대기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72시간. 그 안에 목표물을 확보하고 귀환하십시오.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겁니다.”
그림자의 말은 경고이자 동시에 냉정한 통보였다. 이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는 늘 혼자였다.
에어록이 열리자, 차갑고 묵직한 심해의 압력이 훅 끼쳐왔다. 슈트의 외부 조명이 어둠을 갈랐다. 해저 평원 위로 펼쳐진 것은 거대한 협곡이었다. 그것은 자연적인 균열이라기보다는, 마치 거대한 칼날로 베어낸 듯한 완벽한 직선의 형태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한, 센서 이상 감지. 이 지역에서 비정상적인 중력 왜곡이 확인돼.”
칩이 경고음을 울렸다. 이한의 슈트 HUD에 즉시 중력 변화 그래프가 나타났다. 미약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중력 왜곡? 이게 대체 무슨…”
그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협곡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어두컴컴한 심연 속으로, 인공 조명만이 유일한 빛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협곡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거대한 바위벽처럼 보이던 곳에, 육중한 문이 박혀 있었다. 그것은 금속도, 돌도 아닌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표면에는 고대 문자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들은 살아있는 듯 미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문은 완벽하게 닫혀 있었지만, 그 틈새에서 차가운 기운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젠장, 정말 미친 곳이군.”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인류의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진 고대 문명의 유적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칩, 스캔.”
이한의 명령에 칩이 작은 몸체를 분리해 문으로 향했다. 다목적 스캐너의 탐색 빔이 문을 훑고 지나가자, 그의 HUD에 복잡한 데이터가 흘러넘쳤다.
“이한, 이 문… 단순히 잠긴 게 아니야.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 강력한 보호막 시스템이 작동 중이야.”
칩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이한은 에너지 빔 커터를 꺼내 들었다. 보호막이라면, 파고들 틈은 있을 터였다.
“걱정 마. 내가 못 뚫는 문은 없어.”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의 심장은 미약하게나마 고동치고 있었다. 이 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잊혀진 시간 속,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는 미지의 세계였다. 이한은 고대 문자가 새겨진 문을 향해 첫 번째 빔을 발사했다.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빛이 어둠 속으로 퍼져 나갔다. 탐험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