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화: 심연에 드리운 그림자
나락의 심장.
이곳은 이름만큼이나 잔혹한 곳이었다. 붉은 이끼가 뒤덮인 바위틈에서 섬뜩한 광채가 피어오르고, 땅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 냄새는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천 년의 어둠이 응축된 듯한 검은 공기가 숨통을 조여왔지만, 강진우의 심장은 그 어떤 독기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증오라는 이름의 불꽃이었다.
툭. 툭.
천천히 발을 내딛는 그의 부츠 밑에서 마른 해골 조각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저 깊은 곳, 탐험가 연합의 공식 지도에도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미지의 구역. 그곳에 이선우가 있었다. 진우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를 지옥으로 내던진 배신자.
손에 든 장검은 그의 심장과 같은 온도를 내뿜는 듯했다. 검은 용의 비늘 같은 문양이 새겨진 검신은 은은한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물. 그리고, 복수를 위한 유일한 도구였다.
“흐읍…”
깊게 숨을 들이쉬자, 차가운 공기가 폐 속까지 스며들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명료해지는 감각. 진우는 손에 든 검을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 *선우야, 조심해. 이건 우리가 예상했던 몬스터가 아니야.*
— *하하, 무슨 소리야 진우!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이 귀한 마핵을 우리 둘이 나눠 가질 수 있다고!*
— *하지만… 너무 위험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몰라.*
— *겁쟁이처럼 굴지 마! 네가 항상 말했잖아? 모험가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귓가에 울리는 과거의 대화에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선우의 목소리는 언제나 활기찼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비수가 되어 진우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날도 그랬다. 나락의 심장 깊숙한 곳,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태초의 마핵’을 발견했을 때. 둘은 환호했다. 평생의 동반자라 믿었던 친구와 함께 이룩한 위대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환희는 한순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진우야.”
선우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진우는 태초의 마핵을 손에 쥐고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친구의 존재. 그 순간, 진우는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다 너 덕분이야.”
진우는 고개를 돌려 웃었다. “무슨 소리야, 선우야. 네가 없었다면 난 벌써 몇 번이나 죽었을 거야.”
선우도 함께 웃었다. 그의 눈빛은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 진우는 어딘가 모를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 본능적인 경고였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콰직!*
등 뒤에서 느껴진 엄청난 충격. 진우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태초의 마핵이 손에서 미끄러져 날아갔다. 둔탁한 통증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등허리에 박힌 칼날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윽… 선우… 야…”
진우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칼을 쥔 선우의 얼굴에는 놀랍도록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는 진우가 알고 있던 선우의 것이 아니었다. 탐욕과 냉정함으로 뒤덮인,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미안해, 진우야. 이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무게인 것 같아.”
선우는 칼을 비틀어 박았다. 끔찍한 고통이 진우의 온몸을 덮쳤다.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의식이 아득해지는 와중에도 진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선우를 올려다봤다.
“왜… 왜…”
“널 믿었거든. 네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날 따라줄 거라는 걸.” 선우는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마핵은 달라. 이걸 가지면… 난 정말로 모든 걸 가질 수 있어. 그리고 넌… 조금 방해가 될 뿐이었지.”
선우는 진우의 몸을 발로 차, 나락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균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진우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차가운 돌멩이뿐이었다. 균열 아래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가라, 나의 영웅.”
그것이 진우가 들은 선우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끝없는 추락. 몸이 바위에 부딪히고 찢겨 나가는 고통. 모든 것이 암전되고, 의식은 저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죽었다.*
분명히 죽었을 터였다. 하지만 진우는 살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니, 죽음의 심연에서, 그는 다시 눈을 떴다. 피와 절망으로 범벅된 그곳에서, 그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심장에 박힌 칼날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훨씬 더 깊은 상처가 채웠다. 복수심이라는 이름의 상처였다.
—
“흐읍…”
진우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손에 쥔 검이 차갑게 느껴졌다.
*이제는… 내가 널 찾아갈 차례다, 이선우.*
나락의 심장은 여전히 음습하고 축축했다. 발밑의 바닥은 끈적한 액체로 뒤덮여 있었고, 썩은 살덩이와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진우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의 후각이 희미한 피 냄새와 함께 익숙한 금속의 비린내를 감지했다.
앞으로 뻗은 통로의 끝에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 사이로, 익숙한 스킬의 섬광이 번뜩였다.
“하! 이 정도는 돼야 던전 탐험이라고 할 수 있지!”
분명 선우의 목소리였다. 그 특유의 호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조. 진우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복수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진우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그의 존재는 마치 이 어둠 자체인 것처럼 완벽하게 주변에 녹아들었다.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천장에서는 기괴한 종유석들이 날카로운 이빨처럼 돋아나 있었고, 바닥에는 맹독성 액체가 흐르는 웅덩이가 곳곳에 파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선우와 그의 파티원들이 몬스터 무리와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선우는 여전히 눈부셨다. 과거 진우와 함께했을 때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강력한 스킬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진우가 알던 검이 아닌, 번쩍이는 은빛 대검이 들려 있었다. 태초의 마핵을 통해 얻어낸 힘이었으리라. 그의 주변에는 세 명의 탐험가가 더 있었다. 한 명은 힐러, 한 명은 탱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마법사였다. 꽤나 노련해 보이는 조합이었다.
“선우 오빠! 왼쪽! 거미 독액 조심하세요!”
힐러로 보이는 여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선우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독액을 피하고는 대검을 휘둘러 거대한 독거미의 머리를 두 동강 냈다.
“하하! 이 정도야 뭐!”
그의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진우는 그림자 속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선우의 스킬 하나하나, 파티원들과의 대화, 심지어 그의 자신감 넘치는 웃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진우의 가슴속에 날카로운 칼날처럼 박혔다.
*그때의 나는, 네 옆에서 늘 그림자처럼 존재했지.*
*네가 빛나도록, 내가 어둠이 되어주었어.*
*하지만 이제는 달라.*
*이 어둠은… 널 집어삼킬 것이다.*
몬스터 무리가 거의 정리될 무렵, 선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락의 심장이야! 올 때마다 새로운 전율을 안겨주는군! 이 정도면 오늘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겠지?”
“네! 선우 오빠 덕분이에요!” 힐러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하하, 뭘. 다 같이 힘낸 덕분이지.” 선우는 형식적인 겸손을 보였다. 진우는 그 모습에 역겨움을 느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선우의 가슴팍에 달린 휘장이었다. 탐험가 연합 최상위 랭커들에게만 주어지는, 황금빛 독수리 문양. 그가 죽은 뒤, 선우는 승승장구하여 최고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진우의 희생을 딛고.
진우의 심장 속에서, 차갑던 증오의 불꽃이 다시 뜨겁게 타올랐다. 그의 눈동자에 붉은 섬광이 번뜩였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지옥에서 기어 올라왔으니까.
선우가 파티원들과 함께 전리품을 정리하며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진우는 천천히 그림자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의 발소리는 공기 속에 완전히 흡수되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척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탱커였다. 덩치 큰 그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진우는 이미 그의 뒤에 서 있었다. 그의 검이 섬광처럼 휘둘러졌다.
*쉬이이익— 퍽!*
아무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탱커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몸이 맥없이 쓰러졌다. 그의 눈은 놀라움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 뭐야?!” 마법사가 경악하며 외쳤다.
선우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시선이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 모습을 드러낸 진우에게 닿았다. 낯익은 얼굴, 하지만 동시에 끔찍할 정도로 낯선 존재.
“강… 진우?!”
선우의 목소리는 공포와 충격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이 직접 나락의 심연으로 밀어 넣었던 친구가, 죽었어야 할 존재가 눈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예전과 같았지만, 그 눈빛은 모든 생명력을 잃은 듯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죽은 자의 눈동자처럼.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검 끝이 선우를 향했다. 그의 입가에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선우야.”
오랜 침묵 끝에 나온 진우의 목소리는 메마르고 거칠었다. 마치 깊은 무덤 속에서 겨우 기어 나온 듯한 목소리였다.
“이제… 네가 나에게 갚을 차례다.”
복수의 서막이, 나락의 심장에서 굉음과 함께 울려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