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어둠에 새겨진 맹세 (22화)

**[1]**

유리는 차가웠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는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리며 도시의 불빛을 길게 늘어트렸다. 방금 전까지 쫓기던 악몽이 여전히 뼈 속 깊이 박혀있는 듯, 민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어깨를 감쌌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스며들었다. 찬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카이엘은 침묵 속에 그녀의 뒤를 지켰다. 그의 그림자는 어둠 속에서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뿜어내는 알 수 없는 기운은 언제나 민아의 신경을 팽팽하게 죄어왔지만, 동시에 지독한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역설적이었다. 그에게서 느끼는 이 위태로운 평화는,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암묵적인 경고와 다름없었다.

“젠장….”

민아는 낮게 중얼거렸다. 어금니를 꽉 깨물자 턱이 뻐근했다. 폐 속 가득 찬 공포가 조금이라도 바깥으로 새어 나가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몇 시간 전, 그들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익숙한 도시의 뒷골목은 마치 낯선 지옥처럼 변해있었다. 번개처럼 번뜩이던 감시자들의 눈빛, 쇠붙이 긁는 듯한 기계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그녀를 끌고 도망치던 카이엘의 손. 그 손의 힘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괜찮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늘 그랬듯 감정을 읽기 힘든 낮은 울림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미세한 떨림을 민아는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민아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닿는 순간,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온도는 늘 서늘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열기를 빨아들여 차갑게 식혀버린 듯한, 그런 싸늘함.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았다. 이 지옥 같은 삶은 언제쯤 끝날까. 그녀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살아야 할까. 밤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카이엘도 그랬다. 그는 종족의 금기를 어겼고,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인간을 사랑했다. 그리고 민아는, 그런 그를 사랑했다.

“미안해, 카이엘.”

민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뒤돌아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단단한 몸에서 풍기는 흙과 철이 섞인 듯한 낯선 향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젠 그 냄새조차도 익숙해져 버렸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는 그녀의 머리에 턱을 얹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품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이대로 모든 위험을 잊고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민아는 망설이다 물었다. “네 종족에게도, 내 종족에게도. 우리는… 돌연변이잖아.”

카이엘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그가 민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너는 나에게 돌연변이가 아니야. 단 한 번도.” 그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진심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저… 너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2]**

민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짙은 눈동자는 깊은 심해처럼 검었고,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밤의 종족. 그들은 인간 세상에 숨어 살며, 인간의 감정을 양분 삼아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특히 두려움, 절망, 분노와 같은 강렬한 부정적인 감정은 그들에게 가장 달콤한 먹이였다. 하지만 카이엘은 달랐다. 그는 결코 민아에게서 그런 것을 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민아의 슬픔을 걷어내려 애썼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 사랑은 대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들이… 언제까지 우리를 쫓을까.”

“네가 안전할 때까지.”

“그건 평생이라는 말이야? 끝이 없어. 매번 이렇게 도망치고, 숨고,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해? 난 지쳤어, 카이엘.”

민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차가운 그의 손이 그녀의 뺨을 감쌌다. 그의 손가락 끝이 그녀의 떨리는 입술을 스쳤다.

“알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도… 지쳐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멈출 방법이 하나 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뭔데?”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빛은 더욱 깊고 어두워졌다. 마치 그 속에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민아는 문득 두려워졌다. 그가 말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대가가 과연 무엇일까.

그 순간이었다.

‘띠딕- 띠딕-’

갑작스러운 전자음이 정적을 깼다.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진 소리. 도청 탐지기가 맹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비상 상황을 알리는 붉은 빛이 방안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민아의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빌어먹을…!”

카이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망설임 없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는 한 손으로 민아의 허리를 감싸 안고, 다른 손으로 침대 옆에 숨겨둔 작은 배낭을 낚아챘다.

“벌써…?” 민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은신처는 가장 안전하다고 확신했던 곳이었다. 어떻게 벌써 발각된 거지?

“그들이 우리 위치를 정확히 안다기보다는… ‘장소’를 찾아내는 것에 능숙해진 거야.” 카이엘은 짧게 답하며 민아를 창문 쪽으로 이끌었다. “비밀리에 숨겨진 거점들을. 그들은 지능적이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추격전이 떠올라 민아는 몸서리쳤다.

“어디로 가려고?”

“아래로.”

카이엘은 망설임 없이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비바람이 방안으로 몰아쳤다. 창문 너머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이 건물의 층수는 대략 7층.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높이였다.

“미쳤어? 여기서 뛰어내리겠다고?” 민아의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카이엘은 대답 대신 민아의 눈을 깊이 들여다봤다. 그의 눈 속에서 찰나의 순간, 푸른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민아는 똑똑히 보았다. 마치 어둠 속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몸에서 희미한 검은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붙잡아.”

그의 목소리는 명령처럼 단호했다. 민아는 홀린 듯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의 차가운 몸에 온전히 기대자, 알 수 없는 힘이 그녀를 감싸는 듯했다. 공포와 함께 묘한 기대감이 피어났다.

카이엘은 민아를 안은 채 망설임 없이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것 같았다.
빗방울이 살을 찢을 듯 얼굴을 때렸다.
바람이 귀청을 때리며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추락하는 동안, 민아는 카이엘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인간의 심장 소리와 달랐다.
너무나도 느리고, 웅장하고, 고요했다.
마치 깊은 바다의 파도처럼, 거대한 태고의 리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아는 깨달았다.
그가 그녀를 끌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그의 세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어둠 속으로.

**[3]**

그들의 추락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게 끝났다. 카이엘은 마치 공기를 가르는 그림자처럼 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착지하는 순간, 그의 발밑의 아스팔트가 미세하게 움푹 파였다. 인간의 힘으로 상상할 수 없는 충격 흡수였다.

“괜찮아?”

그는 민아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물었다. 민아는 심장이 여전히 발광하고 있었지만, 몸은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시간 동안, 그녀의 몸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았던 것이다.

“응….”

민아는 비에 젖은 채로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눈빛은 예리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해, 카이엘?”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기기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검은색 기기에는 알 수 없는 문자와 도형이 번개처럼 번뜩였다. 그는 잠시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도심의 복잡한 건물들을 가로질러 어딘가 먼 곳을 향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경계’다.”

“경계?” 민아는 의아하게 되물었다. “그게 어딘데?”

“인간의 세상과 우리 종족의 영역이 맞닿아 있는 곳.” 카이엘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곳은… 너의 종족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우리 종족에게는… 금기의 땅이지.”

“금기의 땅이라니?”

“서로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이는 것을 묵인하는 곳. 혹은… 그 징조가 나타나는 곳.” 그의 눈이 민아에게로 향했다. 그 깊은 검은 눈동자 속에는 슬픔과 함께 어떤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곳에 가면 안전하다는 거야?”

“아니. 그곳은… 더 큰 위험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일한 길이다.”

카이엘은 민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지만, 억센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그녀를 이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고, 도시의 불빛은 멀리서 흐릿하게 반짝였다.

그 순간, 멀리서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쿠구구궁-’
땅이 미세하게 울리는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전해졌다.
저 소리는… 추격자들이 사용하는 비행 병기의 엔진음이었다.
그들이 벌써 여기까지 쫓아온 것인가?

민아는 겁에 질린 채 카이엘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하지만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 사이로,
핏방울처럼 붉은 무엇인가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빗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피였다.

카이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의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는 이 순간에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의 희생으로 얻어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들이 도달해야 할 ‘경계’라는 곳은 과연 어떤 지옥일까.

“가자.”

카이엘은 민아의 손을 더욱 강하게 붙잡았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점점 더 거대한 금기의 영역으로,
두 개의 심장은 서로 다른 리듬으로, 그러나 같은 방향으로,
미지의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뒤편에서, 거대한 기계음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민아는, 이제 막 시작된 진짜 악몽의 서막을 느꼈다.
카이엘의 피 냄새와 함께.
그의 희생이 가져올 대가가 무엇일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온몸으로 밀려오는 한기 속에서,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도피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