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자정의 기묘한 손님, 그리고 옆집

고요한 새벽 3시 17분. 내 원룸에는 키보드 소리만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탁, 타닥, 타다닥.’ 뇌를 쥐어짜듯 모니터 속 빈 칸을 채워나가지만, 이야기는 늪에 빠진 듯 헤어나올 줄 몰랐다. 망할, 마감은 코앞인데! 나는 웹 소설 작가 현우, 장르 불문 모든 글을 쓰는 잡글러지만 요즘은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다.

“젠장, 아이디어가 고갈됐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낡은 머그컵에 담긴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켰다.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순간, 책상 위에서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드르륵.’ 시선을 옮기자, 아까 분명히 필통 안에 얌전히 꽂아두었던 내 최애 샤프펜슬이 스르륵,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책상 끝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어이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뻗어 샤프를 잡았다. 고작 샤프펜슬 하나에 놀라다니, 역시 밤샘 작업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몸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슬슬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할지 고민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아니, 굴러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침대를 옆으로 ‘밀어낸’ 듯한 기분이었다. 베개는 저 멀리 책상 밑에 처박혀 있었고, 이불은 마치 격렬한 전투라도 치른 듯 내 몸에서 다섯 걸음은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미쳤나 봐, 내가 잠버릇이 이렇게 험했나?”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나? 아니, 지난밤은 아주 평화로운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산더미 같은 원고를 다 끝내고 유유자적 치킨을 뜯고 있었지.

그때부터였다.

일상의 모든 것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에 두었던 안경이 화장실 변기 옆에서 발견되고, 새로 산 시리얼 박스는 뜯지도 않았는데 내용물이 반쯤 사라져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면 항상 꽉 차 있던 음료수 칸이 텅 비어 있는가 하면, 리모컨은 이제 심심하면 냉장고에서, 옷장 속에서, 심지어는 내 머리맡에서 발견되기 일쑤였다.

나는 처음엔 내 기억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환각을 의심했다. 다음엔 몰래카메라 같은 악질적인 이웃의 장난을 떠올렸다. 하지만 복도에 CCTV를 설치하고 감시까지 해봤지만, 아무도 내 원룸에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현상은 더욱 대담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어느 새벽, 나는 식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방금 막 끓는 물을 부어 불려놓은 컵라면이 갑자기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내 눈앞에서 사정없이 ‘파바바박!’ 하고 내용물을 바닥에 쏟아버렸다. 스프 국물이 사방으로 튀고, 면발은 추하게 늘어져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채 컵라면이 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봤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던 컵라면은 이제 바닥에 처참하게 나동그라져 있었다.

“야, 이 개…!”

욕설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상대가 없다는 사실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내가 미쳐가는 게 분명했다. 이젠 하다하다 컵라면까지 나를 괴롭히다니!

그 순간, 벽 너머에서 둔탁한 ‘쿵!’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한 소리였다. 어쩌면… 이웃집에서 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나는 컵라면 테러의 잔해를 치우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벽 너머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쿵 소리와 드르륵 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저쪽도 나처럼 이상한 일을 겪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저쪽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걸까?

그리고 사흘 뒤, 그날의 절정은 찾아왔다.

나는 밤새도록 글을 쓰느라 탈진 상태였다. 겨우 한 문단을 완성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내 소중한 소설 원고가, 내 눈앞에서 ‘펄럭!’ 하고 공중으로 솟아오르더니 정확히 내 얼굴을 강타했다.

“악!”

종이에 코를 맞은 통증보다 황당함이 더 컸다. 그리고 그 원고는 마치 약이라도 올리듯 내 머리 위를 한 바퀴 선회하더니, 베란다 문을 향해 ‘후다닥!’ 하고 날아가 버렸다. 내가 황급히 베란다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원고는 난간 너머로, 바람에 실려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지난 3개월간 밤샘 작업으로 썼던 내 피와 땀 같은 원고가!

“안 돼! 이 망할 귀신아!”

나는 미친 사람처럼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소리쳤다. 그때였다.

옆집 현관문이 ‘덜컥’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뭔가 우당탕탕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악!” 하고 비명 같은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황급히 옆집 현관을 바라봤다. 낡은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안에서 곱슬머리의 여자가 비스듬히 넘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몽둥이처럼 생긴 길고 둥근 물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밑에는, 놀랍게도 방금 전 내 베란다 너머로 날아갔던 내 소설 원고가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깔려 있었다.

“저, 저기요…!”

나는 황당함에 말까지 더듬었다. 그녀는 겨우 균형을 잡고 일어서더니, 내 시선을 따라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봤다.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어어? 이게 왜 여기에…?”

그녀는 주저앉아 내 원고를 집어 들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단정하게 묶어 올린 머리칼, 커다랗고 동그란 눈망울, 그리고 톡 튀어나온 콧망울이 왠지 모르게 장난기 넘쳐 보였다. 그녀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며 원고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웃했다.

“저… 혹시 이 글, 이웃집에 사는… 현우 씨 꺼 맞나요?”

그녀의 손에 들린 원고 표지에는 내 필명인 ‘별밤지기’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내 원고가 베란다에서 날아가 옆집으로 떨어졌다고? 심지어 옆집 현관 안에?

“네… 제 건데요.”

“아, 역시! 현우 씨였구나! 이거 진짜 신기하죠?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리면서 이 종이들이 ‘파다닥’ 하고 제 집 안으로 날아들어 오지 뭐예요! 바람인가? 근데 베란다도 아닌 현관으로?”

그녀는 마치 재밌는 구경이라도 한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는 미처 치우지 못한 베란다의 난장판, 그리고 바닥에 뒹구는 컵라면 잔해들을 떠올렸다. 이상 현상은 나에게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혹시… 은하 씨 맞으세요?”

이사 온 지 한 달이 넘도록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옆집 여자. 나는 그녀의 현관문 앞에 붙어 있던 이름표를 기억해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전 여은하라고 해요! 저번에 떡 돌리러 갔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그녀는 내 원고를 고이 접어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집 안에서 ‘쨍그랑!’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하 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어휴, 또 시작이네!”

그녀는 한숨을 쉬며 현관 안쪽을 흘끔거렸다. 그리고 내 시선이 닿는 곳에는, 방금 전 몽둥이라고 생각했던 길고 둥근 물체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빗자루였다. 빗자루는 마치 스스로 움직이려는 듯, 바닥에서 미세하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혹시… 은하 씨도 이상한 일을 겪고 계신가요?”

내 말에 은하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눈가에는 피로가 짙게 깔려 있었다.

“말도 마요, 현우 씨. 제가 이 아파트 이사 오고 나서부터 매일 밤이 전쟁이에요. 제가 방금 전에도 저 빗자루랑 싸우느라… 으음,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녀는 급히 말을 얼버무렸지만, 이미 나는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빗자루가 스스로 움직인다니! 내 원룸에서 벌어지던 기묘한 현상들이, 어쩌면 그녀의 집에서도, 아니, 그녀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설이 머릿속을 스쳤다.

“저…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하 씨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차피 저도 이 미스터리를 풀 사람이 필요했는데, 잘 됐네요!”

그녀는 현관문을 활짝 열며 나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녀의 집 안을 쳐다봤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어딘가 불안정한 기운이 감돌았다. 식탁 위에는 접시들이 삐딱하게 놓여 있었고, 거실 바닥에는 베개가 뜬금없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방금 깨진 듯한 유리 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때였다. 은하 씨의 손목에 차여 있던 손목시계가 갑자기 ‘윙!’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핑!’ 하고 빠르게 회전하며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악!”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고, 시계는 ‘턱!’ 하고 내 어깨에 부딪힌 뒤, 바닥으로 떨어져 ‘쨍그랑!’ 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은하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어… 어쩌죠? 괜찮으세요, 현우 씨?”

내 어깨를 부여잡은 채, 나는 은하 씨를 멍하니 바라봤다. 로맨틱 코미디 소설을 쓰던 내게, 현실은 로맨스보다는 코미디, 아니,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괜찮… 지 않은 것 같아요, 은하 씨.”

나는 바닥에 흩어진 시계 조각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 미스터리한 폴터가이스트 현상,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그녀. 우리는 이 기묘한 도시의 밤을 함께 헤쳐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