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아르카디아의 어둠 아래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 그 웅장한 이름만큼이나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은빛 첨탑은 늘 학생들의 자부심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석조 건물에는 고대의 마법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밤이면 각 강의실에서 흘러나오는 오색 마법 빛이 밤하늘을 수놓아 별똥별처럼 아름다웠다. 이 학원은 마법사의 꿈을 꾸는 모든 젊은이들에게는 성지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랬다.

“유진, 또 거기서 꾸벅거리고 있냐? 대마법사님의 ‘시간 역류 주문’에 대한 논문 제출이 내일까지다. 너만큼 수식이 깔끔한 녀석도 드문데, 매번 막판에 지각할 작정이냐?”

낡은 양피지 꾸러미를 든 채 옆구리에 책을 잔뜩 끼고 나타난 에밀리가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녀의 은빛 머리칼은 도서관의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서도 반짝였다.

“시간 역류라… 지루해 죽겠네.”

유진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두꺼운 마법서 대신, 고서들이 잔뜩 꽂힌 서가의 맨 아래 칸에 박혀 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아무도 손대지 않는 듯한 그곳. 일반적인 금서 구역도 아닌, 그저 ‘잊혀진’ 구역이었다.

“지루하다고? 대마법사 파비안 님께 들키면 네 마법 봉이 박살 날 거야!” 에밀리는 과장된 몸짓으로 경고했다. “너같이 재능 있는 녀석이 고작 그런 옛날이야기에나 빠져서야 되겠냐? 현 시대의 마법은 진화하고 있단 말이야.”

“진화?” 유진은 비식 웃었다. “새로운 것이 언제나 옳은 진실은 아니지. 때론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날카로운 진실을 품고 있을 때도 있어. 도서관 사서도 모르는 이곳이라면, 분명 뭔가 숨겨진 게 있을 거야.”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서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빽빽하게 꽂힌 마법서들의 장서 번호는 이미 오래전에 지워진 듯 희미했다. 그는 손끝으로 책등을 쓸어내리다 한 권의 책 앞에서 멈췄다. 다른 책들과 달리 아무런 제목도, 표식도 없었다. 그저 짙은 회색 가죽으로 싸인 채, 마치 제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듯 웅크리고 있었다.

“이건…?”

이상한 감각이었다. 책을 만지는 순간, 손끝을 타고 오르는 차가운 전율. 마치 아주 오래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책을 뽑아냈다. 두툼한 먼지가 후드득 떨어져 작은 연기를 일으켰다.

“뭐야, 너 그건 또 어디서 찾은 거야?” 뒤따라온 에밀리가 경악하며 물었다. “왠지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는데? 도서관 규칙에 없는 책은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규칙이란 건 깨라고 있는 거지. 특히 아무도 모르는 규칙이라면 더더욱.”

유진은 에밀리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책을 펼쳤다. 안에는 글자 대신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문양들과 함께 칙칙한 검은색으로 그려진 삽화들이 가득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삽화의 내용이었다. 지하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 그리고 그 끝에 자리한 거대한 균열. 균열에서는 섬뜩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빛 속에서 알 수 없는 형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듯 일그러져 있었다. 그 형체들은 익숙한 인간의 형상이었으나, 동시에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기괴한 뒤틀림을 보였다.

그리고 그림 아래,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르카디아의 심장, 과거의 그림자가 영원히 춤추는 곳.`

그때였다. 책 페이지 사이에서 떨어진 얇은 금속 조각이 유진의 발밑에 떨어졌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육각형 조각이었다. 표면에는 미세한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들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진이 무심코 그것을 주워 들었을 때, 차가운 금속 조각이 그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섬광이 터졌다.

눈앞의 도서관 풍경이 일그러졌다. 오래된 서가들이 사라지고, 칙칙한 석조 벽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진은 자신이 도서관이 아닌, 깊은 지하 미궁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깨달았다. 공기는 눅눅하고 축축했으며, 알 수 없는 쇠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유진! 너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에밀리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지만, 유진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더욱 생생했다.

거대한 지하 공간의 중앙에는 책에서 본 듯한 거대한 균열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녹색의 섬뜩한 빛이 요동치며 공간을 비추었고, 균열 안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손들이 뻗어 나왔다. 그 손들은 마치 유령처럼 흐릿했지만, 그 절규는 너무나 선명했다.

“살려줘…!”
“시간이… 뒤틀려…!”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고통에 찬 비명들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균열 속에서 움직이는 형체들은 분명 인간이었다. 혹은 인간이었던 무언가였다. 그들의 몸은 시시각각 변형되었고, 어떤 이들은 젊은 시절의 모습과 늙은 시절의 모습이 한 몸에 뒤섞여 기괴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팔다리가 여러 개로 늘어나거나, 얼굴이 여러 개로 갈라지는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태로 뒤틀렸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들 중 몇몇의 얼굴이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학원의 역사서에서 보았던 초대 교장의 모습, 유진이 존경하던 전설적인 마법사 ‘엘리우스’의 젊은 시절, 심지어는 몇몇 현직 교수들의 젊은 모습까지. 그들은 모두 고통 속에 절규하며 그 균열 속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유진은 숨이 턱 막혔다. 이 비극적인 광경은 대체 무엇인가? 왜 아르카디아의 위대한 선배 마법사들이 이런 끔찍한 곳에 갇혀 있는가? 이 균열은 대체 무엇이고, 이곳은 어디인가?

그때, 저 깊은 곳에서 거대한 눈동자가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핏빛 눈동자는 유진을 정확히 응시했다. 그 시선이 닿는 순간, 유진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순수한 절망이었다.

*삑—!*

날카로운 이명과 함께 시야가 다시 일그러졌다. 지하의 끔찍한 광경은 사라지고, 유진은 다시 아르카디아 도서관의 낡은 서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그 검은 책과 육각형 금속 조각이 들려 있었다.

“유진! 너 정말 괜찮아? 얼굴이 새하얗잖아!”

에밀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유진은 비틀거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의 심장은 북처럼 격렬하게 울렸다. 방금 그 경험은 단순한 환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피부로 와 닿았던 축축한 공기, 코를 찌르던 쇠 비린내, 그리고… 그들의 절규.

그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의 한 조각, 혹은 뒤틀린 미래의 한 단면이었다.

“아르카디아의 심장… 과거의 그림자가 영원히 춤추는 곳…”

유진은 손에 든 검은 책을, 그리고 금속 조각을 번갈아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방금 전 자신이 서 있던 그 끔찍한 지하 공간을 떠올렸다. 학원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 그 균열은 무엇이고, 저기에 갇힌 마법사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엘리트 마법 학원 아르카디아의 자랑스러운 역사 뒤에, 이토록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니. 유진은 문득 이 학원의 모든 마법사들이 그저 이 진실의 위에 서서, 마치 시한폭탄 위에서 춤추는 것처럼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오싹해졌다.

“에밀리,” 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나… 할 일이 생긴 것 같아.”

그는 더 이상 대마법사 파비안의 ‘시간 역류 주문’ 논문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아르카디아의 빛나는 첨탑 아래, 어둡고 축축한 미궁 깊숙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끔찍한 균열의 진실을 파헤치고, 그 안에 갇힌 자들의 절규를 이해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 길의 끝에는, 학원의 모든 것을 뒤흔들 가장 위험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두려웠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르카디아의 어둠 아래 숨겨진 금기를 향한 그의 여정은 이제 막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