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젠장, 또 막다른 길인가?”

지훈은 낡은 홀로그램 랜턴을 이리저리 흔들며 좁고 습한 통로를 살폈다. 2077년 서울. 지상에는 마천루들이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고, 에어카들이 쏜살같이 오가는 미래 도시였지만, 지하에는 아직도 과거의 흔적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구역은 도시계획에서 완전히 소외된, 버려진 구 지하철 노선과 오래된 공공 시설물이 뒤섞인 곳이었다. 지훈은 여기서 로봇 공학 동아리 과제에 쓸 만한 고성능 배터리나 희귀한 회로 기판을 찾아다닌 지 벌써 두 시간째였다.

“음… 이 정도면 동아리 예산으로 감당 안 될 레어템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의 손에 들린 랜턴의 빛이 닿는 곳마다 녹슨 파이프와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가 으스스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공기는 눅눅했고,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몇십 년간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지훈은 이런 곳을 ‘도시의 맹장’이라고 불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곳.

그때, 지훈의 발에 뭔가 딱딱한 것이 채였다. “크윽!” 휘청거리며 겨우 균형을 잡은 그는 발밑을 내려다봤다. 낡은 금속판이었다. 다른 곳의 바닥과 달리 이곳만 깔끔하게 금속판으로 덮여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게 뭐야?”

지훈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금속판의 틈새를 살폈다. 오래된 보안용 패널 같기도 하고, 뭔가 중요한 것을 숨겨둔 뚜껑 같기도 했다. 그는 등 뒤의 백팩에서 휴대용 만능 공구 키트를 꺼냈다. 척추에 부착된 인공지능 보조장치 ‘아이콘’이 조용히 속삭였다.

[지훈님, 이 구역은 미등록 구역입니다. 더 깊숙이 진입할 경우 안전사고 발생 확률이 87%에 달합니다.]

“알아, 아이콘. 그래도 뭔가 있잖아. 내 육감이 말하고 있어.”

지훈은 평소에도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것에서 쓸모를 찾아내는 데 능했다. 버려진 전자기기에서 부품을 뜯어내 자신만의 장치를 만들곤 했다. 이번에도 그의 ‘촉’이 예사롭지 않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는 공구의 갈고리를 금속판의 가장자리에 걸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당겼다.

*끄으윽… 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금속판이 들려 올라갔다. 그 아래에는 예상치 못한 공간이 드러났다. 작은 수직 통로였다. 통로의 끝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미세하게 흐르는 공기의 움직임이 아래로 더 깊은 공간이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지훈님, 경고합니다. 내부 온도 25.3°C, 습도 92%, 산소 농도 19.8%… 어? 통신 오류 발생. 데이터 송수신 불가능.]

아이콘의 음성이 갑자기 뚝 끊겼다. 지훈은 눈을 깜빡였다. 이런 적은 없었다. 아이콘은 도시의 모든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한 초고성능 AI였다. 이곳이 단순히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뭔가 네트워크조차 닿지 않는 ‘블랙스팟’임을 직감했다.

“진짜 대박인가?”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랜턴을 아래로 비추자, 좁은 통로 아래로 이어진 낡은 사다리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디디며 내려갔다. 사다리의 철제 난간은 미끄러웠지만, 그의 눈은 아래를 향한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발밑에 딱딱한 바닥이 닿았다. 랜턴으로 주위를 비추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넓은 원형 공간이었다. 녹슨 파이프나 부서진 잔해는커녕, 주변은 매끈하고 단단한 어두운색 합금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마치 수십 년 전에 버려진 곳이 아니라, 어제 막 청소를 끝낸 듯한 완벽한 보존 상태였다.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 기둥이 솟아 있었고, 그 주위로 정체불명의 문양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대 문명에서나 볼 법한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아니면 지상에는 없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 같기도 했다. 숨을 들이켜니 눅눅한 먼지 냄새 대신, 미묘하게 달큰한 금속 향이 났다.

“와… 이거 진짜 박물관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훈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로봇 동아리 과제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이것은 그 어떤 고성능 배터리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발견이었다. 이런 곳이 도시의 심장부 아래 잠들어 있었다니.

그는 조심스럽게 중앙의 원통형 기둥으로 다가갔다. 표면에는 손때 묻지 않은 먼지만이 얇게 앉아 있을 뿐, 그 어떤 손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기둥의 정면, 지훈의 눈높이쯤 되는 위치에 작은 돌출부가 있었다. 그 위에는…

“이건… 뭐야?”

지훈은 숨을 삼켰다. 그곳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색 육면체가 놓여 있었다. 육면체는 어떤 빛도 흡수하는 듯 완벽한 어둠을 품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미세하게 빛을 발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마치 우주 깊은 곳의 블랙홀을 응축해 놓은 듯한 신비로운 존재감이었다. 수십만 년, 아니 수백만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인류의 역사를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유물이었다.

지훈은 홀린 듯 육면체에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차가울 줄 알았던 육면체에서 의외로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육면체는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고, 매끄러운 표면에는 아무런 흔적도, 이음새도 없었다.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완벽했다.

그때였다.

육면체의 한쪽 모서리가 지훈의 손가락을 스쳤다. *스윽.* 날카롭진 않았지만, 미세한 상처가 생겼다. 붉은 피 한 방울이 육면체의 검은 표면 위로 또르르 떨어졌다.

*쉬이이이이익…*

정적만이 감돌던 공간에,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가 닿은 육면체의 부분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균열이 마치 거미줄처럼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검은색이던 육면체의 표면은 서서히 투명해지더니, 그 안에 갇혀 있던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공간 전체가 맹렬한 진동에 휩싸였다. 육면체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지훈의 눈을 멀게 할 듯 강렬했고, 동시에 온몸의 세포가 전율하는 듯한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존재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벽면의 문양들이 빛나기 시작했고, 바닥과 천장에서도 같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공간 자체가 거대한 에너지 회로가 된 듯했다.

지훈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뒤로 나자빠졌다. 육면체는 그의 손에서 떨어져 공중에 떠오르더니,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피가 스며든 균열은 마치 우주의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그 순간, 지훈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영상과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거대한 우주선들이 별 사이를 유영하고, 푸른 행성들이 초록빛 에너지로 뒤덮이는 장면, 그리고… 검은 육면체를 든 한 존재가 하늘을 가르는 모습. 고통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고 압도적인 이미지들이 뇌를 강타했다.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수백만 년의 역사가 한순간에 그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은, 지독한 정보의 폭격이었다.

“으아아악!”

그의 비명은 빛과 진동에 묻혀버렸다. 마치 자신의 정신이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육면체는 이제 거대한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고, 그 빛은 지훈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격렬한 고통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는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쿠구구궁!*

공간 저편에서 둔탁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리 같았다. 지훈의 빛에 익숙해진 눈이 겨우 어둠 속을 응시했다. 멀리 떨어진 벽면의 한 부분이 서서히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거대한 통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통로 안에서, 붉은색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섞인 낮은 목소리.

[경고. 미확인 에너지 반응 감지. 시설 보안 프로토콜 ‘이리스’ 가동. 침입자를… 제거합니다.]

지훈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육면체의 빛이 여전히 그를 감싸고 있었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싹한 한기는 그의 온몸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그는 지금, 고대의 힘을 깨운 대가로 도시 아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동시에 깨워버린 것이다.

붉은 섬광이 다시 한번 번쩍였다.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빠르게 지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