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아르카나의 잔해
### 제 72화: 균열의 징조

우주선 ‘아르카나’는 심연 속을 유영하는 낡은 고래 같았다. 13년간의 항해. 인류가 보낸 탐사선 중 가장 멀리, 가장 깊이 들어온 그곳은 빛조차 닿지 않는 영겁의 어둠이었다. 통신은 두절된 지 오래. 지구는, 그 찬란했던 푸른 별은 이제 희미한 전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 승무원들의 일상은 정해진 패턴 속에서 조용히 흘러갔다. 모두가 익숙해진 권태로움과 함께, 어쩌면 이곳에서 고립되어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품고서.

함교의 푸른 조명 아래, 엘라 함장은 홀로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잡아낸 것은 텅 빈 암흑뿐.
“이서연 상사, 수신 상태는 여전히 불량이군.”
함장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속에는 지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네, 함장님. 미약한 배경 복사 외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브 주파수 대역까지 돌려봤지만…”
통신장교 이서연 상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가에도 깊은 피로가 역력했다.

그때였다.
“함장님! 긴급 상황입니다!”
류지훈 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함교를 갈랐다. 보통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과학 장교의 목소리에 일렁이는 경고음이 엘라 함장의 심장을 옥죄었다.
“무슨 일인가, 류 박사?”
“에너지 스캐너가… 미지의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기존에 감지된 적 없는, 패턴 자체가 이해 불가능한… 뭔가 거대한 것이, 저희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메인 스크린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점에 불과했던 것이 빠르게 확대되었다. 일반적인 천체가 아니었다. 주변의 중력장을 뒤틀고, 빛을 흡수하는 듯한 기이한 존재였다.
“속도 측정!” 엘라 함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측정 불가입니다! 감지되는 속도가… 빛의 속도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습니다!” 류 박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도 안 돼…!” 박수진 보안 팀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곧바로 무장 시스템을 활성화했다. “전투 태세! 모든 승무원은 비상 착용복을 착용하고 각자 위치로 복귀하라!”

거대한 그림자가 아르카나를 덮쳐왔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어둠처럼 다가왔다. 형체는 없었다. 그저 공간을 찢고 들어온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충돌은 없었다. 아니, 충돌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리적 접촉이 아니었다. 아르카나의 선체는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

“비상 경고! 선체 외부 보호막 50% 손상! 주 동력 장치 불안정!”
아수라장이었다. 아르카나는 심한 요동 끝에 간신히 자세를 잡았다. 함교는 온통 붉은 경고등으로 번뜩였고, 스파크가 여기저기서 튀었다.
“함장님, 외부 센서가 미쳤습니다! 존재할 수 없는 물질과 에너지 수치가 감지됩니다!” 김민준 수석 엔지니어가 절규하듯 외쳤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와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엘라 함장은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지시했다. “류 박사,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 박 팀장, 무장 시스템 보고!”

류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홀로그램 패널을 조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이건…!”
메인 스크린에 비친 것은 외부 공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밤하늘이 아니었다. 무한한 어둠 속에 떠 있는, 거대한 수정 기둥들. 그것들은 빛을 반사하지 않고, 오히려 삼키는 듯했다.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우린… 외부 공간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까 그 미지의 존재가 만들어낸… 차원의 균열 같은 곳에… 갇힌 것 같습니다.” 류 박사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때, 박수진 팀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함장님, 무장 시스템은 정상입니다. 하지만 발포는 무의미해 보입니다. 저것들은… 물질이 아닙니다.”
“함장님! 선체 내부 에너지 반응이 감지됩니다! 중앙 동력 코어 방향입니다!” 이서연 상사가 소리쳤다.
엘라 함장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뭐라고? 침입자라도 있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생체 반응은 아닙니다! 뭔가… 외부 에너지가 내부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코어를… 감싸고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중앙 동력 코어를 비추는 카메라 화면으로 향했다. 코어 주변에 투명하고 영롱한 무언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얼음꽃 같기도 하고, 투명한 거미줄 같기도 했다. 천천히, 하지만 집요하게 동력 코어를 잠식해갔다.
“젠장! 저게 뭔데? 당장 격리 조치해!” 박 팀장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 투명한 결정체가 동력 코어에 닿는 순간, 코어에서 거대한 푸른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섬광과 함께, 섬뜩한 정적(靜寂)이 아르카나를 감쌌다. 기계음, 경고음,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이게… 무슨…” 엘라 함장의 목소리가 멎었다.
정적 속에서, 동력 코어는 원래의 푸른 빛을 잃고 칙칙한 회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회색 코어 위에서, 아까 외부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검은 수정 조각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코어가 스스로를 변형시키는 듯했다.
“함장님… 통신… 외부 통신이…! 잡힙니다!” 이서연 상사의 목소리는 경악과 동시에 희미한 희망을 담고 있었다.
“뭐라고? 누구와 연결된 거지?”
“알 수 없습니다… 주파수는 난해하지만… 분명합니다! 저희가 발신한 게 아니라, 저쪽에서… 저희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메인 스크린에 노이즈와 함께 기이한 문양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도형의 반복. 그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암호 같았다.
“류 박사, 분석해! 저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 엘라 함장의 목소리는 명령이었지만, 그 속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류 박사는 필사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눈빛은 초조했지만,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미지의 언어를 해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수 분이 흘렀을까. 길고 긴 정적 끝에, 류 박사의 입술에서 충격적인 말이 터져 나왔다.
“해석… 했습니다… 함장님.”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뭔가!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박 팀장이 옆에서 다그쳤다.

류 박사는 스크린의 기이한 문양을 가리켰다.
“저들은… ‘균열의 핵’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유물이… 이 세계의… 끝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리 인류가 이 유물을 봉인하지 못하면… 모든 존재가 사라질 것이라고…!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류 박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마지막 문장이 뭔가, 류 박사! 당장 말해!” 엘라 함장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류 박사는 간신히 고개를 들고, 스크린에 떠오른 섬뜩한 마지막 문장을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가… 이미… 그 첫 번째 희생자라고… 합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아르카나의 선체 내부에서 섬뜩한 울림이 시작되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이 아니라, 마치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육중하고 불길한 맥동이었다. 천장의 조명들이 깜빡이기 시작했고, 선체 곳곳에서 알 수 없는 균열이 번개처럼 번져 나갔다. 그 균열의 틈새로, 검은 수정 조각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르카나의 모든 시스템이 경고음을 토해냈다.
*삐이이이익—! 선체 구조 불안정! 주 동력 코어 감염률 30%! 전 승무원 비상 탈출 준비!*
하지만 탈출선은 고장 나 있었다. 아까의 충격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엘라 함장은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들은 심우주를 탐사하던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자신들이 발견한 미지의 존재로 인해, 우주 미아가 아니라… 이 미지의 재앙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젠장…!” 그녀의 주먹이 떨렸다. “아직 끝이 아니다! 아직…!”

그 순간, 메인 스크린의 영상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 형상을 띄웠다.
거대한 검은 수정들이 빽빽이 들어찬, 마치 모든 별을 집어삼킨 듯한 암흑의 세계. 그 한가운데, 붉은 빛을 내뿜는 거대한 눈동자가 번쩍였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정확히 아르카나의 함교를, 엘라 함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막 인지했다는 듯이.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