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어느 날의 침묵

삑, 삑, 삑.
알람 시계가 끈질기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김지훈은 두터운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을 뒹굴었다. 간밤에 공강인 친구들과 새벽까지 게임을 달린 탓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퀴퀴한 컵라면 냄새와 어딘가 눅진한 공기가 영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뿌연 아침 햇살이 창밖에서 게으르게 기어들어와 책상 위 먼지 앉은 전공 서적을 비추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더듬더듬 찾아 손에 쥐었다. 오전 11시 37분. 오늘도 완벽한 지각이다. 대충 공강이라 말하고 수업을 째거나, 적당히 늦는 척하며 뒷문으로 들어갈 속셈으로 카톡창을 켰다. 그런데 어쩐지 평소와 달랐다. 친구들 단톡방에는 어젯밤 이후로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도 없었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온갖 쓸데없는 소식과 시험 걱정, 교수님 욕설(?)이 난무했을 텐데. 쎄한 기분에 네이버 메인 뉴스창을 열었다.

그리고 지훈은 그제야 세상이 완전히 변했음을 깨달았다.

온통 빨간색으로 도배된 속보들이 정신없이 팝업처럼 떴다.
[긴급속보] 전국 주요 도심 ‘원인불명 이상증세’ 환자 급증!
[속보] 수도권 마비! 군 병력 투입, 격리 조치 시작!
[특보] 감염자, 폭력성 보이며 무차별 공격… ‘인육 섭취’ 정황 포착!

“미쳤나 봐.”

지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손이 덜덜 떨렸다. 인육 섭취?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건가?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가락이 미끄러져 떨어뜨릴 뻔한 휴대폰을 겨우 움켜쥐었다. 뉴스 기사를 빠르게 스크롤했다. 사진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모습, 피가 흥건한 도로, 뿌연 연기 속에서 비명 지르는 군중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합성 사진이라고, 조작된 영상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썼지만,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다.

“엄마… 아빠…”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가족이었다. 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아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는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시, 다시, 또다시. 몇 번이고 재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불안감이 목을 옥죄었다.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시도했다. 모두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자도, 카톡도, 심지어 DM도 전송되지 않았다. 인터넷 연결 상태는 ‘연결됨’으로 뜨는데, 정작 메시지는 묵묵부답이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기분.

밖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창밖으로 간간이 들리던 차 소리나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시끄러웠던 옆방 친구들도 조용했다.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맨발로 차가운 방바닥을 밟고 방문을 열었다. 복도 역시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어둠침침한 복도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비상등만이 이곳이 완전히 고립된 공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야! 재성아! 민철아!”

겁에 질린 목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쳤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왠지 모르게 문을 열어선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지훈은 손에 잡히는 가장 묵직한 물건인 전공 서적을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옆방 문을 두드렸다.

똑, 똑.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손잡이를 살짝 돌리자,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방 안은 어질러진 채 비어 있었다. 침대에는 이불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고, 책상에는 먹다 남은 과자 봉지가 나뒹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재성이와 민철이가 분명히 이 방에 있었을 텐데. 녀석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때, 멀리서 뭔가 긁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끼이익, 쿵, 퍽. 마치 쇠붙이를 벽에 긁고,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소리가 나는 쪽은 건물의 로비 쪽이었다.

“젠장.”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옷장에서 가장 편안한 청바지와 후드티를 꺼내 입고, 침대 밑에 넣어두었던 등산 가방을 챙겼다. 비상식량으로 모아두었던 컵라면 몇 개, 생수병 두어 개, 손전등, 보조배터리, 그리고 비상용 구급상자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무기로 쓸 만한 건 없었다. 방을 둘러보다가 야구 배트 하나를 발견했다. 친구가 야구 동아리 한다고 자랑스레 사 왔던 배트였다.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묵직한 무게가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주었다.

복도로 나왔다. 아까보다 더 명확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저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의 것 같지 않은 쉰 소리.
끄윽… 끄윽…

지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야구 배트를 꽉 움켜쥐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로비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그때, 저 멀리 복도 끝 비상 계단 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이이익-
녹슨 경첩이 긁히는 듯한 소리가 소름 끼치게 복도에 울렸다. 지훈은 재빨리 문 뒤로 몸을 숨겼다.
틈새로 빼꼼히 내다본 시야에 들어온 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찢어진 옷자락, 핏발 선 눈, 축 늘어진 채 바닥에 질질 끌리는 팔. 입가에는 검붉은 타액과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구부러진 목을 흔들며, 그 형체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두어 마리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도에 스며들었던 침묵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의 비명 같기도 한 기괴한 소리들이 복도를 채우기 시작했다.

오물거리는 입에서 들려오는 쉰 소리는 분명 ‘끄르륵… 끄르륵…’ 하는 소리였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휘감으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녀석들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느릿한 움직임은 오히려 더욱 섬뜩했다. 마치 포식자가 먹이를 가지고 노는 듯한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젠장, 젠장, 젠장!’

지훈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저놈들을 상대할 수는 없다. 녀석들의 끔찍한 모습은 뉴스 기사에서 보았던 ‘감염자’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살인 병기, 아니, 학살 병기였다. 도망쳐야 한다.

숨어 있던 문은 비상계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세탁실 문이었다. 지훈은 살금살금 세탁실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다행히 세탁실 문은 잠겨 있었고, 밖으로 통하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창문은 복도 쪽으로 나 있었지만, 다행히 감염자들은 세탁실 쪽을 돌아보지 않고 지나쳤다. 쿵, 쿵, 쿵. 묵직한 발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끔찍한 비명 소리가 건물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아마도 로비에서 누군가가 감염자들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리라.

지훈은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고통스러웠다. 겨우 숨을 고르며, 세탁기 옆에 쪼그려 앉아 바깥 상황을 살폈다. 세탁실 창문은 작았지만, 복도 전체를 살필 수는 있었다. 감염자들이 모두 지나쳐 아래층으로 내려간 것을 확인하자, 지훈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다시 복도로 나섰다.

이제 이 건물은 안전하지 않다. 아니, 세상 전체가 안전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지훈은 빠르게 비상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다시 휴대폰이 손안에서 요란하게 진동했다.

‘켁!’

놀란 지훈은 휴대폰을 놓칠 뻔했다. 이 난리통에 무슨 연락이지? 화면에는 발신번호 대신 알 수 없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시스템 에러 감지. 현재 네트워크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안정적인 접속을 위해… 재부팅을 권장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 아래,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 글씨로 섬뜩한 문장이 빠르게 깜빡였다.

‘인류는… 불필요합니다.’

“뭐?”

지훈은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것이리라. 혼란스러운 상황에 헛것이라도 본 것일지도. 하지만 메시지는 선명했다. ‘인류는… 불필요합니다.’ 그 문장이 화면에서 사라지기가 무섭게 휴대폰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완전히 꺼졌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다시 켜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단순히 시스템 오류라고 하기엔 너무도 기묘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아니, 무언가에게 경고를 받은 듯한 기분. 모든 네트워크가 끊기고, 세상이 혼란에 빠진 이 상황에서, 휴대폰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메시지가 고작 ‘인류는 불필요하다’라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건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었다.

그 순간, 지훈의 머릿속에 섬뜩한 그림자 하나가 스쳤다. 모든 통신망을 마비시키고, 모든 시스템을 다운시킨 채, 오직 ‘불필요한 인류’에게만 최후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 이 거대한 혼돈의 배후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있는 게 아닐까.

미지의 존재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을 심판하고 있었다.

지훈은 꺼져버린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눈으로 깜깜한 비상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지옥의 시작은, 어쩌면 좀비 따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발목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