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에피소드 1: 축하연의 불청객, 복수의 서막

찬란한 샹들리에 불빛이 쏟아지는 고급 호텔 연회장.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 위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저마다 희망과 성공을 속삭이는 듯했다. 하지만 한예리에게 이 모든 풍경은 지옥에서 올라온 연기처럼 역겨울 뿐이었다.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을까?”

예리는 텅 빈 샴페인 잔을 든 채 구석 테이블에 박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늘 연회는 재단 이사장 취임 축하 자리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웃음을 짓고 있는 전 약혼자, 이준호. 그리고 그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우아하게 미소 짓는, 한때는 세상 전부였던 그녀의 ‘절친’, 강수진.

세상 물정 모르던 스무 살부터 10년을 함께 보낸 수진이었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밤새워 미래를 이야기하며, 죽는 날까지 함께할 거라 맹세했던 유일한 친구. 그리고 준호는 그런 수진이 직접 소개해 준, 예리의 모든 것을 감싸 안아주던 다정한 연인이자 약혼자였다.

그런데 그들이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눈을 피해, 무려 1년 동안이나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니. 그것도 모자라, 예리의 오랜 꿈이었던 해외 지사 발령을 가로채고, 그 자리를 발판 삼아 나란히 성공 가도를 달리다니! 모든 진실이 폭로되던 날, 예리는 제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변명은 가관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막을 수 없는 거야, 예리야.” “우린 정말 어쩔 수 없었어. 너에게 상처 주긴 싫었지만….”

콱, 저 역겨운 얼굴들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샴페인 잔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흐음, 술이라도 취해야 이 비위 상하는 광경을 견딜 수 있을 텐데.”

예리는 이빨을 악물었다. 이미 석 잔째였다. 그녀는 지금, 연회에 불청객으로 잠입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준호의 약혼녀 자격으로 당당히 함께했을 자리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저 ‘어쩌다 낀’ 손님 중 한 명, 혹은 그냥 존재감 없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세상에, 강수진 드레스 좀 봐. 준호 씨가 직접 골라줬대. 너무 예쁘다!”
“진짜,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 둘이 정말 잘 어울려.”

귓가에 들려오는 남들의 찬사는 비수처럼 박혔다. 이준호는 능력 있고 자상한 재벌 3세. 강수진은 청순하고 똑똑한 커리어 우먼. 모두에게 그들은 완벽한 한 쌍이었다. 예리는 그들의 그림자 속에 묻혀, 그저 준호의 ‘전 여친’, 수진의 ‘친구’ 정도로 치부될 존재였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그녀의 심장이 복수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 복수. 처절하고, 완벽하며, 무엇보다 그들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줄 복수.

그때, 준호가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진은 옆에서 새초롬하게 웃으며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예전에 예리를 향했던 다정함과 똑같았다. 예리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이 무언가를 발표할 참이었다. 설마… 약혼? 아니면 결혼 날짜?

“저와 강수진 씨는…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예리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샴페인 잔을 꽉 쥐었다. 안돼. 저들의 행복을, 저들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이준호와 강수진의 아름다운 서사에 구정물을 끼얹어 버리고 싶었다.

그녀의 눈이 빠르게 연회장을 스캔했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연회장 한쪽에 세워진, 대형 스크린이었다. 아마 재단 홍보 영상이 송출될 예정인 듯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안내 데스크가 있었고, 그 위에 노트북이 열려 있었다. 노트북에는 아마도 행사 관련 파일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예리의 머릿속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 저거다. 완벽한 복수는 아니더라도, 일단 저들에게 ‘불쾌한 선물’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샴페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틈을 타, 예리는 능숙하게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안내 데스크 쪽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스태프는 잠시 자리를 비운 듯했다. 찰나의 순간, 예리의 손가락이 노트북 키보드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복잡한 폴더들을 열어젖히고, 재단 홍보 영상 파일을 찾아냈다. 그리고 자신이 USB에 몰래 저장해 온 파일을 과감하게 덮어씌웠다.

그녀의 USB에는 준호와 수진이 몰래 만나는 장면들, 그리고 준호가 해외 지사 발령을 가로채기 위해 뒷돈을 주고받는 정황이 담긴, 예전에 우연히 찍어둔 영상과 녹취록들이 교묘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물론, 대중에게 ‘불륜’이라는 확정적인 증거를 제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둘의 관계에 대한 의심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한 뉘앙스를 풍겼다. 특히 준호의 청렴한 이미지에는 치명타가 될 만했다.

딱 1분 30초. 이준호의 ‘기쁜 소식’ 발표 직후에 송출될 재단 홍보 영상 대신, 이 비열한 영상이 흘러나오게 만든다면? 상상만 해도 쾌감이 밀려왔다.

“완벽해.” 예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이 비참한 연회장을 뜨면 된다. 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순간을 보지 못하더라도, 내일 아침 터질 파장은 불 보듯 뻔했다. 통쾌했다.

예리가 조용히 뒤돌아 연회장을 빠져나가려던 찰나였다.
“거기, 아까부터 혼자서 뭘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시는지.”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예리는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어느새 그녀의 뒤에 바싹 다가와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짙은 회색 수트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그림 같은 실루엣. 차가우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그는, 그녀가 노트북을 만지던 순간부터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그의 시선은 예리의 얼굴을 스쳐, 그녀가 방금 전까지 만지작거렸던 노트북을 향했다. 그리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 저는… 그냥 잠시 화장실을 찾던 중이라….”
예리는 더듬거렸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
“화장실을 찾는데 왜 노트북 화면을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셨을까요? 게다가 제 기억이 맞다면, 당신, 이 연회의 정식 초대 명단에 없던 걸로 아는데 말이죠.”

예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저 남자, 대체 누구지?
그의 날카로운 눈이 예리를 꿰뚫는 듯했다. 모든 것을 간파당한 기분이었다. 긴장감이 순식간에 목을 조여 왔다.

바로 그때, 단상에서는 준호의 발표가 막 끝나고 있었다.
“…그럼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기념하며, 저희 재단의 비전을 담은 영상을 잠시 시청하시겠습니다.”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이 점멸하더니, 곧 영상이 송출될 준비를 마쳤다.
예리의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대로 도망쳐야 하는데.
남자는 여전히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채였다.

“말씀해 보세요. 아까 그 노트북에, 무슨 짓을 하신 거죠?”
남자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았지만, 그 어떤 추궁보다 강력했다.

예리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젠장, 첫 복수부터 이렇게 물거품이 되는 건가?!
대형 스크린에는 이미 재단 로고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영상이 재생될 참이었다.
예리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저… 저건…!”

그녀의 눈에 스크린 속 영상의 썸네일이 잡혔다.
이건… 그녀가 준비한 영상이 아니었다.
아니, 저건… 이준호가 수진에게 무릎 꿇고 반지 케이스를 내미는 프러포즈 영상이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뭐… 뭐야? 내가 덮어씌운 영상은…?”

그녀의 눈동자가 혼란으로 흔들리는 사이, 차가운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크린에서는 준호의 나긋한 목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수진아, 나랑 결혼해줄래?”

예리의 계획은 송두리째 뒤바뀌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