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고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녹슨 도시. 하늘은 재빛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지상에는 끝없이 펼쳐진 폐허만이 존재했다. 태오는 낡은 가스 마스크 안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등 뒤에는 증기압으로 움직이는 특제 배낭이 낮게 웅웅거렸고, 손에 들린 조악한 금속 탐지기는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젠장, 또 헛걸음인가.”
낮은 혼잣말이 마스크 안에서 맴돌았다. 벌써 삼 일째였다. ‘증기핵’을 찾아 이 지옥 같은 폐기물을 헤맨 지도. 동력이 바닥나기 일보 직전인 에어쉽 ‘황금벌’을 다시 띄우려면, 고순도 증기핵이 절실했다. 황량한 평원에서 한밤중에 내려앉았던 황금벌은, 이제 태오의 유일한 보금자리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다.
발밑에 밟히는 것은 한때 거대한 건물을 지탱했을 법한 철골 조각들과, 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부품들뿐이었다. 과거의 번영이 먼지처럼 쌓여 모든 것을 집어삼킨 풍경. 이곳은 한때 번화했던 ‘증기 기관 지구’였다. 대재앙 이후 모든 것이 멈춘 채, 거대한 기계의 무덤으로 변해버린 곳.
삐이이이-!
금속 탐지기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진동했다. 태오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찾았다!”
그의 눈동자가 마스크 안에서 번뜩였다. 소리가 나는 쪽은 거대한 증기 발전소의 잔해였다. 반쯤 무너져 내린 외벽에는 톱니바퀴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고, 거대한 굴뚝은 부러진 팔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녹슨 심장’이라 불리던 곳.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지만, 그만큼 얻을 것이 많을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태오는 허리에 찬 낡은 스팀 건을 꽉 쥐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전소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내부 공기는 바깥보다 훨씬 무거웠다. 기름 섞인 쇠 비린내가 코를 찔렀고,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뿜어내는 기묘한 적막감이 폐부를 압박했다. 천장에서는 끊임없이 녹물이 떨어져 바닥에 검붉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내부로 깊이 들어갈수록 금속 탐지기의 반응은 더욱 강렬해졌다. 태오는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로 향했다. 거대한 증기 밸브와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미로 같은 공간. 마스크 안에서도 그의 호흡은 더욱 거칠어졌다.
그때였다.
지잉- 지잉-!
주변에 설치된 낡은 보안등 몇 개가 섬광처럼 깜빡이더니, 붉은빛을 토해내며 거친 경보음을 울렸다.
“젠장, 아직 작동하는 게 있었나!”
태오가 욕설을 내뱉는 순간,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날카로운 금속 다리 여덟 개가 바닥을 긁는 소리, 이빨처럼 생긴 갈고리가 번뜩였다. ‘강철 거미’. 대재앙 이전, 시설 방어를 위해 제작되었던 자율 전투 로봇이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고장이 난 채, 이제는 모든 움직임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살육 기계로 변모한 것들.
“크아악!”
태오는 몸을 날려 거미의 공격을 피했다. 날카로운 다리가 그가 서 있던 자리를 깊게 파고들었다. 눈앞의 강철 거미는 낡고 부식되어 있었지만, 그 움직임은 여전히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붉게 빛나는 광학 센서가 태오를 집요하게 추격했다.
태오는 허리춤에서 미리 준비해둔 소형 증기 폭탄을 꺼내 들었다. 핀을 뽑고, 정확하게 거미의 몸체 중앙부를 향해 던졌다.
콰아앙!
증기 폭탄이 터지며 고압의 증기와 함께 쇠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강철 거미가 잠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태오는 스팀 건을 겨누었다.
“이거나 먹어라!”
칙, 쉬이익-!
스팀 건에서 고압의 증기탄이 발사되었다. 증기탄은 강철 거미의 낡은 장갑판을 뚫고 들어가 내부의 핵심 구동부에 명중했다. 강철 거미는 비명을 지르듯 기이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곧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붉은 광학 센서의 빛도 꺼졌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태오의 금속 탐지기가 다시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진원지는 쓰러진 강철 거미의 바로 뒤편. 거대한 증기 보일러가 엉망진창으로 파손된 곳이었다.
태오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보일러 잔해 속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손으로 잔해를 치우자,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주먹만 한 크기의 투명한 결정체였다. 내부에서는 푸른 증기가 끊임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고순도… 증기핵!”
강렬한 에너지 파동이 느껴졌다. 에어쉽 황금벌을 최소 한 달은 거뜬히 날게 할 수 있을 만한, 아니, 어쩌면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할지도 모르는 완벽한 증기핵이었다. 태오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증기핵을 집어 들었다. 따뜻하면서도 강력한 에너지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그때, 저 멀리서 둔탁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두두두두… 쿵! 두두두두… 쿵!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태오의 얼굴에서 희열은 사라지고,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망할… 약탈자들인가!”
낡은 스팀 트럭의 엔진 소리. 기름때 낀 장갑차의 투박한 주행음. 이곳 폐허를 제 세상처럼 활개 치는 무법자들, ‘황무지 약탈자’들의 전형적인 소리였다. 이 증기 발전소에 증기핵이 남아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태오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태오는 서둘러 증기핵을 특수 제작된 보호 용기에 넣고 배낭에 단단히 고정했다. 탈출해야 했다. 놈들과 엮여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약탈자들은 먹잇감을 발견하면 끈질기게 추격했고, 한번 붙잡히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길 뿐만 아니라,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출구로 향하는 통로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쿵! 쾅!
발전소의 입구 쪽에서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철문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들어온 것인가!
태오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복도 저편에서 투박한 장갑복을 입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개조된 스팀 라이플과 톱니바퀴 칼이 들려 있었다. 약탈자 무리였다. 그들은 거친 욕설과 함께 발전소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봐! 여기 증기핵이 있다는 정보가 확실해?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닥쳐, 빌어먹을. 소스가 틀릴 리 없어. 더 깊이 찾아봐!”
약탈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태오는 등 뒤로 돌아가는 낡은 비상 계단 통로를 발견했다. 망설일 틈도 없이 그곳으로 몸을 던졌다. 삐걱거리는 금속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며 필사적으로 위로 향했다.
철커덕!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약탈자 중 한 명이 태오가 도망친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봐! 누가 도망간다! 잡아!”
등 뒤에서 총성이 터졌다. 칙, 쉬이익! 스팀 라이플에서 발사된 고압 증기탄이 그의 옆 철제 벽에 박혔다. 섬뜩한 열기와 함께 찌그러진 자국이 남았다.
태오는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살아서 황금벌로 돌아가야 했다. 증기핵을 사수해야 했다. 이젠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사명감이었다.
지상층에 도달한 태오는 무너진 벽을 통해 밖으로 몸을 날렸다.
바깥은 여전히 회색빛이었다. 폐허 속을 달리는 그의 뒤에서 약탈자들의 비명과 총성이 쫓아왔다.
두두두두… 쿵!
약탈자들의 스팀 트럭 엔진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놈들은 차량을 이용해 그를 추격하고 있었다.
태오는 고개를 돌렸다. 낡은 스팀 트럭의 짐칸에 올라탄 약탈자들이 미친 듯이 스팀 라이플을 난사하고 있었다. 놈들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냥감을 절대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때, 태오의 눈에 폐허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낡은 대형 크레인 잔해가 들어왔다. 그의 머릿속에 번뜩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젠장, 해보자!”
태오는 방향을 틀어 크레인 쪽으로 내달렸다. 낡은 크레인은 과거의 거대한 유물처럼 솟아 있었다. 그곳에 매달린 거대한 강철 추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태오는 재빨리 허리에 찬 개조된 스팀 그래플링 훅을 꺼내들었다. 조준, 발사!
쉬이이익-!
그래플링 훅이 쇠사슬을 뿜어내며 크레인 구조물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태오는 그 반동으로 몸을 날려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저놈 저기로 간다! 둘러싸!”
약탈자들의 스팀 트럭이 태오가 올라탄 크레인 아래로 맹렬하게 돌진했다.
태오는 크레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에는 미리 준비해둔 소형 절단용 증기 블레이드가 들려 있었다. 블레이드의 끝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그는 약탈자들의 트럭이 정확히 크레인에 매달린 강철 추 아래로 들어서는 순간을 기다렸다. 심장이 발광하듯 뛰어댔다.
왔다!
태오가 망설임 없이 증기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낡은 강철 추를 지탱하던 녹슨 와이어가 스팀 블레이드의 날카로운 열기에 끊어지는 순간, 거대한 강철 추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맹렬한 속도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콰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약탈자들의 스팀 트럭이 강철 추에 깔려 산산조각 났다. 증기 엔진이 터져 나오며 뜨거운 증기가 사방으로 치솟았고, 고철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약탈자들의 비명소리는 이내 거대한 폭발음에 묻혀버렸다.
태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크레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폐허가 된 트럭의 잔해와 연기만이 자욱했다. 살아남은 자는 없는 것 같았다.
“휴우… 망할…”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태오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이이이이익…!
그가 방금 훔쳐 온 고순도 증기핵이 보호 용기 안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푸른 증기가 평소보다 훨씬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더니, 용기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젠장! 불안정해진 건가?!”
불안정한 고순도 증기핵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자칫하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 황금벌로 돌아가 이 증기핵을 안정화시켜야 했다.
그때, 저 멀리 재빛 하늘 위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낡고 거대한 기계 새의 형상을 한 정체불명의 에어쉽이었다. 황무지 약탈자들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심상치 않은 장비였다. 그 에어쉽의 하단에서 거대한 탐조등이 지상을 향해 빛을 뿌렸고, 그 빛은 태오가 서 있는 크레인 위를 정확히 비추었다.
“이런… 망할… 이번엔 또 뭐야…?”
태오의 눈이 마스크 안에서 절망적으로 흔들렸다. 증기핵은 더욱 격렬하게 치이익거렸고, 거대한 에어쉽의 엔진음이 하늘을 가르며 태오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고독한 생존기는 이제, 또 다른 거대한 위협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다음 화에서는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릴까?
**23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