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황혼의 폐허에서

고통은 익숙한 아침 인사와도 같았다. 턱없이 모자란 잠과 뱃속을 긁어대는 허기, 그리고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가 잿빛 새벽 공기처럼 지혁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그는 낡고 거친 천으로 덧댄 마스크를 끌어올려 입과 코를 가렸다. 굳이 이 폐허에서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는 없었지만, 코끝을 찌르는 곰팡내와 미세한 재먼지가 후각을 마비시키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햇살은 희미했다. 어둠이 걷힌 자리에는 더 탁하고 칙칙한 회색빛이 대신했다. 한때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던 고층 빌딩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나갔고, 그 텅 빈 눈구멍 사이로 스며든 바람은 기괴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하아…”

지혁은 낮게 한숨을 쉬며 허리를 숙였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녹슨 철근을 날카롭게 갈아 만든 무기였다. 다른 한 손으로는 주변의 잔해를 조심스럽게 헤집었다. 그의 눈은 부서진 벽돌 틈새, 뒤집힌 자동차 잔해, 그리고 이따금 보이는 마른 흙더미 사이를 끈질기게 훑었다. 찾고 있는 것은 사소한 것이었다. 한 모금의 물, 한 입거리의 식량, 아니면 하다못해 닳아버린 칼날을 대신할 만한 쓸 만한 금속 조각이라도.

어제의 수확은 참담했다. 썩어버린 통조림 하나, 그리고 찢어진 장갑 한 짝. 그마저도 좁은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굶주린 들개 무리에게 쫓겨 달아나느라 놓치고 말았다. 이젠 물통마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젠장, 아무것도 없어.”

혼잣말이 텅 빈 거리에 메아리쳤다. 인적 없는 도시는 무덤보다 더 적막했다. 한때 수백만 명이 살았던 이곳은 이제 오직 바람과 먼지, 그리고 이따금씩 나타나는 변이된 짐승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대붕괴’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었고, 땅은 갈라졌으며, 지하에서는 미지의 존재들이 솟아났다. 살아남은 자들은 지하 벙커나 극소수의 안전지대로 숨어들었지만, 지혁처럼 바깥을 떠도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생존자’라 불렸지만, 사실상 ‘버려진 자’에 가까웠다.

그때, 발아래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듯했다. 그의 낡은 무기가 꽉 쥔 손에서 삐걱거렸다. 놈인가? 며칠 전부터 이 주변을 맴도는 변이된 쥐들이 떠올랐다. 일반 쥐보다 훨씬 크고, 무엇보다 날카로운 이빨에는 치명적인 독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바람에 날려온 부스러기들이 굴러가는 소리였다. 지혁은 긴장을 풀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무 예민해져 있었다. 그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의 시선은 멀리 떨어진 거대한 싱크홀에 닿았다. 그곳은 한때 번화했던 도심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거대한 입을 벌린 괴물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그곳을 ‘나락의 심연’이라 불렀다.

그곳이 바로 지혁이 향해야 할 곳이었다.

지상의 모든 것이 고갈된 지금,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은 ‘던전’으로 불리는 미지의 공간들을 탐험하는 것뿐이었다. 나락의 심연은 최근에 ‘활성화’된 던전 중 하나였다. 소문에 따르면 그곳에서는 희귀한 ‘정수’와 ‘유물’들이 발견된다고 했다. 물론, 그 소문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값을 치르고서야 얻어진 것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 해볼 만하겠지.”

지혁은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희망을 담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담고 있지도 않았다. 오직 무채색의 생존 의지만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락의 심연으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무너진 도로, 잔해에 뒤덮인 건물들, 그리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미지의 위협들. 하지만 지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경험이 그를 이끌었다. 도시의 지형은 대붕괴 이후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는 과거의 지도를 머릿속에 끊임없이 되뇌며 가장 안전한 경로를 찾아냈다.

한 시간가량을 더 걸었을까. 마침내 나락의 심연 입구가 지혁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싱크홀은 마치 지구가 토해낸 거대한 상처처럼 보였다. 그 가장자리에는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고, 그 밑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입구 주변의 공기는 기묘하게 차갑고 습했다. 그리고 잿빛 하늘과 대비되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변이의 기운’이었다.

지혁은 입구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손에 쥔 무기가 땀으로 축축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매번 던전에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이 압도적인 공포는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공포를 이겨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배낭을 단단히 고쳐 메고, 허리춤에 찬 낡은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건전지는 거의 다 닳아 희미하게 빛을 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제발… 제발 오늘은 뭔가 찾을 수 있기를.”

지혁은 마지막 기도를 올리듯 중얼거렸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어둠 속으로 향했다. 싱크홀의 비탈진 면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차가운 습기가 온몸을 감쌌다. 기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흙과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뒤섞인, 생경하면서도 으스스한 향기였다.

손전등 불빛이 어둠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과거에 거대한 지하 주차장이었을 법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둥들이 뒤틀려 부러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끈적한 물방울이 불규칙하게 떨어졌다. 곳곳에는 정체불명의 균류들이 기이한 빛을 내며 자라고 있었다.

“윽…”

지혁은 헛구역질을 했다. 불쾌한 광경이었다. 그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바퀴벌레 같은 생명체였다. 지혁은 즉시 몸을 숨겼다. 아직은 교전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한쪽 벽을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

복도 끝에 좁은 틈새가 보였다. 본래는 존재하지 않았을, 균열로 생긴 틈새였다. 이곳이 던전의 본격적인 시작일 터였다. 지혁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는 틈새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차갑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간다.”

그는 마지막 다짐을 뱉으며 좁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몸이 간신히 통과할 만한 공간이었다.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손전등 불빛마저 집어삼킬 듯한 암흑이었다. 몇 걸음 나아가자, 앞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 넓은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지혁은 손전등을 들어 앞을 비췄다. 빛이 닿은 곳은 거대한 동굴과 같은 곳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했고, 벽면에는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동굴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공간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희미하게 빛나는 보라색 결정체였다. 깨진 파편들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온전한 결정체가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지혁의 눈이 커졌다. 저것은 던전에서만 발견된다는 ‘심연의 정수’였다. 그것만 있다면 며칠은 식량 걱정 없이 버틸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심연의 정수가 있는 곳까지는 대략 십 미터. 아무런 방해물도, 위협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쉽잖아? 의문이 스쳤지만, 생존 본능은 보물을 향해 달려가라고 속삭였다.

다섯 걸음… 네 걸음… 세 걸음…

그때였다.

정수 주위에 흩뿌려져 있던 파편들이 일제히 지면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보라색 결정체들을 중심으로 뭉쳐들었다. 지혁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젠장!”

그는 뒤돌아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파편들이 거대한 형상을 이루며 하나의 거대한 괴물로 변해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말았다. 투명하면서도 단단한 보라색 결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팔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빛나는 핵을 가진 머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은 거대한 두 팔을 벌려 지혁을 향해 포효했다. 그 소리는 동굴을 뒤흔들며 지혁의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가장 깊은 심연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혁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