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유물과 어색한 멜로디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을 가로지르는 것은 우리 ‘탐사선 아틀라스’호의 숙명이었다. 지루하다 못해 숭고해지는 이 임무는 벌써 세 달째 이어지고 있었고, 나의 유일한 낙은 복잡한 수치들을 뒤적이다가 몰래 캡틴 이준호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것뿐이었다. 물론 이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나는, 탐사선 내 최고 두뇌를 자랑하는 한유진 박사님이시다! (자칭.)
“젠장, 이온 추진기 출력 안정화 모듈에 또 문제가 생겼잖아!”
나는 투박한 공구 스패너를 집어 들고 연구실 한구석에 있는 모형 엔진에 대고 씩씩거렸다. 실제 엔진을 뜯어 고칠 실력은 안 되니, 이렇게 모형 엔진에 분풀이라도 해야 했다. 이 우주선,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다 낡아빠진 고물 덩어리다. 차라리 고장이라도 화끈하게 나주면, 심심한 김에 온 우주를 구하는 대수리극이라도 펼칠 텐데. 꼭 이렇게 야금야금 말썽을 부려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때였다. 연구실 스피커에서 신경질적인 비프음이 울렸다.
— 한 박사님! 당장 브릿지로 와주십시오! 긴급 상황입니다!
놀란 나는 들고 있던 스패너를 떨어트릴 뻔했다. 김민준 항해사의 목소리였다. 평소에도 우주 먼지 하나만 봐도 기겁하는 겁쟁이인데, 긴급 상황이라니. 설마 소행성이라도 정면에 나타났나? 어쩐지 오늘따라 옆구리가 시리더라니.
“알겠습니다! 지금 갑니다!”
나는 서둘러 연구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복도를 가로지르며 브릿지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브릿지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김민준 항해사가 창백한 얼굴로 제어판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처럼 냉철한 표정의 박소라 보안팀장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넓은 어깨와 곧게 뻗은 등을 가진 이준호 캡틴이 우주 공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옆모습은 언제 봐도 그림 같았다. 평소 같으면 “캡틴, 제복이 오늘도 잘생김을 뚫고 나오는데요?” 같은 실없는 소리라도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무슨 일입니까, 캡틴?”
내가 숨을 헐떡이며 묻자, 이준호 캡틴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긴장감과 함께 묘한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한 박사. 이쪽을 보십시오.”
그가 가리킨 메인 스크린에는 선명한 푸른빛의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우주 부유물이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규칙적인 궤적을 그리며, 심지어는 우리 탐사선의 접근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는 듯했다.
“이게… 뭡니까? 이쪽 방향에는 어떤 천체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내 이성적인 회로가 빠르게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넓은 우주에서, 미지의 것을 마주한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자 동시에 불안을 야기하는 일이다.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탐사선이 발신하는 모든 신호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파수 변동에도 실시간으로 말이죠.”
캡틴의 설명에 나는 스크린 속 푸른 점을 확대했다. 점점 커지는 그 형체는 완벽한 구형이었다. 표면은 매끄러웠고, 간헐적으로 아주 미세한 무지갯빛이 감돌았다. 마치 깊은 우주 속에서 피어난 거대한 비눗방울 같았다.
“생체 반응은요? 인공물인가요?”
“어떤 데이터도 잡히지 않습니다. 열원도, 전자기장도, 심지어 질량도 측정 불가입니다.”
김민준 항해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캡틴, 설마 외계 괴물… 아니, 외계인이 던진 돌멩이 같은 거 아닐까요? 혹시 저게 우리의 함선을 향해 돌진해서…”
“김 항해사, 진정해.” 박소라 팀장이 그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저렇게 예쁜 돌멩이도 있나. 그냥 예쁜 쓰레기일 수도 있지.”
“확실한 건, 자연적으로 형성된 물질은 아니라는 겁니다.” 캡틴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함선을 500미터 이내로 접근시키겠습니다. 한 박사는 원격 스캔 준비를, 박 팀장은 비상 방어 모드에 들어가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준호 캡틴의 지휘 아래, 아틀라스호는 미지의 유물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의 순간일 수도 있었다. 스크린 속 구형 유물은 더욱 선명해졌다. 가까이 갈수록 희미했던 무지갯빛은 점점 짙어져,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듯 보였다.
우주선은 유물 상공에 멈췄다. 나는 곧장 연구실로 돌아와 최신예 원격 스캐너를 작동시켰다. 수많은 파장의 빛이 유물을 향해 뿜어져 나갔고, 데이터가 내 모니터에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다.
“정말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아?”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불가능해. 모든 물질은 고유한 파장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그 순간이었다. 유물이 아주 미세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연구실 전체에 알 수 없는 향기가 퍼져 나갔다. 마치 막 피어난 꽃잎의 향기 같기도 하고, 어딘가 달콤한 과일 향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내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고 경쾌하게 뛰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가?
— 한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캡틴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들려왔다.
“네, 캡틴. 특별한 이상은… 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모니터에 떠오른 데이터 그래프가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류 메시지도, 충돌 경고도 아니었다. 마치 음파 분석 그래프처럼 불규칙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곡선을 따라, 아주 작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환청인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캡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통신이 아니라, 연구실 문 너머에서 직접 들려오는 듯했다.
“한 박사. 직접 보러 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선 이준호 캡틴은 나를 향해 걸어왔다. 평소의 냉철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묘하게 상기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눈은 반짝였고, 얼굴에는 은은한 홍조가 돌았다.
“캡틴? 왜 직접…?”
내가 어색하게 묻자, 그가 껄껄 웃었다. 어색한 웃음이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말이죠. 어깨도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하하.”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몸에서도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평소라면 캡틴의 이런 허술한 모습에 ‘역시 잘생긴 사람도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비웃었을 텐데, 지금은 그의 웃음이 너무나도…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귀엽다니! 한유진 미쳤어?’
내 안의 이성이 경고음을 울렸지만, 몸은 이미 통제 불능이었다. 연구실에 퍼진 달콤한 향기는 더욱 짙어졌고, 멜로디는 내 마음속에 스며들어 알 수 없는 설렘을 증폭시켰다.
“캡틴도 느끼시는군요… 저도 방금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갑자기 막… 기분이 좋아지고… 캡틴 얼굴 보니까… 어?”
나는 내 입에서 방금 나온 말에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망할!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야!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준호 캡틴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내 씩 웃었다. 그 웃음에는 분명 장난기가 가득했다.
“호오, 제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십니까, 한 박사님? 꽤나 영광인데요.”
그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체취와 함께 달콤한 향기가 뒤섞여 나를 감쌌다. 멜로디는 점점 더 커져, 내 심장 박동 소리와 엉켜 하나의 왈츠를 추는 듯했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착각입니다! 이 유물이 뭔가… 감정을 건드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허둥지둥 변명했지만, 캡틴의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고, 그 속에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는 듯했다.
“감정을 건드린다… 흥미롭군요.” 그가 유물을 스캔하는 모니터를 흘긋 보더니, 다시 내 눈을 마주했다. “그렇다면, 한 박사님은 지금 제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십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당황한 나는 몸을 뒤로 뺐지만, 등 뒤에 실험대가 가로막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우리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멜로디는 절정에 달했고, 달콤한 향기는 이성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저는… 캡틴은… 그… 그러니까…”
내 입술이 바싹 말랐다. 캡틴의 눈동자가 깊고 부드러웠다. 아, 이건 분명히 유물의 효과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준호 캡틴의 잘생긴 얼굴에 홀려 이렇게 바보 같은 말을 내뱉을 리 없어!
그때, 유물이 담긴 원격 회수 장치에서 ‘띵!’ 하는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동시에 유물에서 무지갯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더니, 그 빛이 순식간에 수렴하며 유물의 형태가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구형이었던 유물에 마치 두 개의 작은 눈과 입술처럼 보이는 형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풉!*
마치 어린아이가 깔깔거리는 듯한, 맑고 청량한 웃음소리였다. 유물이, 우리를 보고 웃고 있었다!
이준호 캡틴과 나는 동시에 벙찐 얼굴로 유물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흐르던 어색한 멜로디와 달콤한 향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남은 것은,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내뱉어진 나의 엉뚱한 말과, 그 말을 듣고 장난스럽게 웃던 캡틴의 모습에 대한 어색한 잔상뿐.
“크흠.” 캡틴이 헛기침을 하며 나와의 거리를 약간 벌렸다. 그의 얼굴에도 미세한 홍조가 남아 있는 듯했다. “이… 이것 참. 예상치 못한 상황이군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니. 지금 내 심장 박동도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요, 캡틴.
나는 애써 침착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유물은 이제 완벽히 변형된 채, 여전히 우리를 향해 웃고 있는 듯했다.
“데이터… 데이터를 다시 확인해야겠습니다.”
내가 중얼거리자, 이준호 캡틴은 나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다시 평소의 냉철함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눈빛 속에는 여전히 묘한 웃음기가 서려 있는 듯했다.
“그러죠. 한 박사의 분석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연구실을 나섰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가 사라진 문을 응시했다. 유물은 여전히 웃고 있는 듯했고, 내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캡틴의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그렇다면, 한 박사님은 지금 제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십니까?’*
젠장. 이건 분명 유물의 저주다. 이 미지의 유물은… 우리 우주 탐사선 아틀라스호의 일상에, 예상치 못한 어색한 멜로디를 선사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멜로디의 화음은… 어쩐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