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7화: 균열의 틈새
이안, 17초 남았다. 시간은 없고, 감지망은 계속 조여와.”
카야의 목소리가 귓속의 통신기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어둠 속, 이안의 손가락은 홀로그램 패널 위를 미친 듯이 오갔다. 차가운 금속 냄새와 눅눅한 지하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엠브로시아 제국의 통신 허브는 언제나 이렇게 불쾌한 기운을 풍겼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제국 병사들의 순찰 로봇 불빛이 섬뜩하게 반사되었다. 이 거대한 괴물의 심장부, 이곳 엠브로시아 7구역 지하 통신망 교란 시설은 그 견고함만큼이나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었다.
“알아, 젠장. 퓨즈 박스를 우회하는 게 이렇게 까다로울 줄이야.” 이안은 식은땀이 흐르는 손으로 다음 코드를 입력했다. 그의 눈앞에는 제국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이 박힌 보안 시스템이 붉은 경고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삐빅’ 하는 작은 전자음과 함께 보안 시스템이 잠시 무력화되었다.
“됐다! 카야, 지금이야!”
상부에서 기다리던 카야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발소리는 그림자처럼 조용했고, 손에 든 저격총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금속광을 뿜어냈다. 목표는 단순했다. 이 지하 통신망에 ‘균열’을 내는 것. 제국의 거짓된 정보들을 잠시나마 마비시키고, 저 아래 심해 같은 빈민굴에서 들끓는 반란의 불꽃에 아주 작은 산소를 공급하는 것. 그들에게는 이 한 줄기 희망이 전부였다.
“젠장, 예상보다 빨라!” 렉스의 거친 목소리가 터졌다. 그는 항상 벽처럼 든든했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거대한 강철 문이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번쩍이는 레이저 포인트를 단 제국 병사 네 명이 통로를 막아섰다. 그들의 전투복은 어둠 속에서 번뜩였고, 헬멧의 냉정한 시선은 정확히 이안 일행을 향했다.
“꼼짝 마라! 반란군 쥐새끼들!”
카야는 이미 몸을 날린 뒤였다. ‘탕!’ 하는 날카로운 총성 두 발이 좁은 통로를 가득 메웠다. 제국 병사 둘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이미 팔뚝에서 펼쳐지는 에너지 방패를 펼치며 반격 태세를 취했다. 렉스가 우렁찬 포효와 함께 돌진했다. 그의 거대한 주먹이 방패를 강타하자 ‘콰앙!’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방패는 움푹 파였지만, 병사는 흔들림 없이 버텼다. 제국의 장비는 늘 예상 이상으로 견고했다.
이안은 빠르게 중앙 서버실로 향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통신망 교란 모듈을 설치하는 것. 모든 것은 그에게 달려있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뒤에서는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레이저가 벽을 태우는 소리, 그리고 렉스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였다.
서버에 모듈을 연결하자, 이안의 휴대용 데이터 패드에 수많은 암호화된 파일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래의 임무는 단순히 통신망을 교란하는 것이었지만, 이안은 늘 한 발 더 나아가려 했다. 제국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캐내는 것. 수많은 평민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고, 사라지는 세상에서, 진실은 그들을 뭉치게 할 유일한 무기였다. 그 순간, 데이터 패드 화면에 예상치 못한 폴더 하나가 나타났다. [프로젝트: 오메가].
“이안, 빨리 서둘러! 탈출 통로가 막히고 있어!” 리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막내 리안은 언제나 겁이 많았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주어진 역할을 해냈다.
“잠깐만… 이 파일들, 뭔가 이상해. 단순한 통신 데이터가 아니야.” 이안은 홀린 듯 집중했다. [프로젝트: 오메가]는 암호화 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그는 숙련된 해커였다. 짧은 순간, 몇 개의 핵심 파일을 간신히 복사하는 데 성공했다.
“젠장, 렉스! 카야! 후퇴!” 이안은 데이터를 확보하자마자 소리쳤다.
“이안, 이제 어디로 가야 해! 모든 통로가 막혔어!” 리안의 목소리가 절망적으로 울렸다.
그들의 등 뒤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통로가 무너져 내렸다. 제국 병사들이 사용하는 초중량 폭탄의 흔적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사방에서 감시 로봇의 탐지등이 춤을 추고, 제국 병사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안! 탈출구는?” 카야가 총을 연사하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흘렀지만,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이안은 재빨리 데이터 패드를 살폈다. “여… 여기다! 지하 15층 폐쇄 구역으로 통하는 비상 환기 통로가 있어! 폭이 좁지만 우리 모두 들어갈 수 있어!”
렉스가 거대한 몸으로 길을 막아서며 제국 병사들을 막아섰다. 그의 팔에는 이미 깊은 레이저 상처가 나 있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텠다. “가! 내가 시간을 벌겠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무너지는 통로를 흔들었다.
“렉스!” 카야가 소리쳤지만, 렉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굳은 어깨는 제국에 맞서는 모든 평민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이안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리안, 카야! 서둘러!”
좁고 녹슨 환기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머리 위에서는 렉스의 비명과 제국 병사들의 외침, 그리고 무수한 총성이 뒤섞여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이안은 숨을 헐떡이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수십 미터 아래, 폐쇄된 지하 구역의 눅눅한 바닥에 추락했다. 흙먼지가 풀썩이며 기침을 유발했다. 리안은 충격에 덜덜 떨고 있었고, 카야는 곧바로 주변 경계를 살폈다.
“렉스는… 렉스는 어떻게 된 거지?” 리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와 슬픔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이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렉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모두 잡혔을 것이다. 그들의 목숨값으로 치러진 이 작은 승리.
“이안, 이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할 거야?” 카야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녀는 슬픔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듯했다.
이안은 떨리는 손으로 데이터 패드를 다시 열었다. [프로젝트: 오메가] 폴더 안의 파일 하나를 클릭했다. 화면에 펼쳐진 내용은 그들의 희미한 희망마저 산산조각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말도 안 돼.” 이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제국은… 이 모든 게 단순한 통제와 부패가 아니었어.”
화면에는 은하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행성들의 이름과 함께, 거대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섬뜩한 명령어가 떠 있었다.
`프로토콜: 청소 (CLEANSE). 발동 예정 D-7.`
“이건… 이건 학살이야.” 카야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제국은… 우리를, 아니, 수많은 행성들의 평민들을 모두 말살하려 하고 있어.”
차가운 지하 공기 속, 그들의 심장은 얼어붙었다. 제국의 부패한 손아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잔혹했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반란군이 아니었다. 종말을 막아야 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일주일.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뿐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희망이 아닌, 절망의 심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