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찢어지고 별들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는 은하의 끝자락, 거대한 그림자처럼 떠오른 전함 한 척이 있었다. ‘레버넌트’. 망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함선은 존재 자체가 증오와 복수로 이루어진 결정체였다. 조종석에 앉은 카이젤의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무표정한 가면 아래, 그의 눈동자만은 차갑게 타오르는 붉은 불꽃을 품고 있었다.

“목표 지점 확인, 사령관.”

옆좌석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AI 비서, 세레나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완벽했다. 그녀의 데이터가 눈앞의 전술 디스플레이에 수백 개의 붉은 점을 뿌렸다. 그 점들은 고도로 무장된 적성 함대를 의미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깃발처럼 펄럭이는 문양이 카이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온의 문양. 황금빛 독수리가 칼날을 움켜쥔 형상. 역겨울 정도로 찬란하고 오만했다.

“이온… 네놈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동지? 가족? 하! 그 모든 것을 발아래 짓밟고 올라선 네놈에게 자비란 없으리라.”

카이젤은 조용히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모래알처럼 거칠었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몇 년 전, 빛나는 성단의 심장에서 벌어진 배신. 함께 맹세했던 꿈은 산산조각 났고, 그는 죽음의 심연으로 던져졌다. 우주 미아가 되어 부유하는 동안, 그는 수십 번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오직 복수라는 단 하나의 열망으로, 부서진 육신을 일으키고, 차가운 강철 심장을 새겨 넣었다.

그날 이후, 카이젤의 인생은 오직 이온을 향한 복수로만 재편되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룩했던 제국의 미래는 이온의 탐욕스러운 손아귀에 넘어갔고, 자신은 한때 ‘영웅’으로 불렸던 빛나는 이름을 잃고 ‘망령’이 되어야 했다.

오늘 밤, 이온이 이끄는 제2성계 방어 함대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온은 최근 카이젤이 파괴한 제1성계 함대의 잔해를 밟고 승리의 축배를 들었을 터였다. 방심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카이젤의 목표는 단순히 함선 몇 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온의 자존심, 그의 권력 기반을 뿌리째 흔들고,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공포를 심어주는 것. 복수는 차갑게 준비되어야만 했다.

“세레나, 작전 개시 3분 전. 최종 점검.”

“모든 시스템 정상. 레버넌트, 전투 준비 완료. 함선 외부 은폐막 완벽하게 작동 중입니다. 적 감지 범위 0.01% 이내에서도 포착 불능입니다.”

레버넌트의 특수 은폐막은 광학, 열, 심지어 중력파 감지기까지 완벽하게 회피했다. 적 함대의 코앞, 불과 수백 킬로미터 지점까지 도달할 때까지 아무도 카이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수십 척의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거대한 대형을 이루고, 그 한가운데에는 이온의 기함인 ‘가이아’급 전함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황금빛 독수리 문양이 선명하게 박힌 채.

“목표, 이온의 기함 ‘가이아’급 전함. 엔진 코어에 직접 타격.”

세레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이젤의 손가락이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놀림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유려했다. 망설임 없는 움직임. 레버넌트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은폐막이 해제되자, 레버넌트의 검은 실루엣이 적 함대의 센서에 벼락처럼 나타났다.

“경고! 미확인 고속정 출현!”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전 함선, 즉시 방어 태세!”
“젠장! 센서에 아무것도 안 잡혔잖아!”

적 통신망이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레버넌트의 존재를 포착한 순간,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뒤였다.

“너무 늦었어, 이온.”

카이젤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홀로그램 전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레버넌트의 주포가 붉은 섬광을 토해냈다. 집중된 에너지 탄이 밤하늘을 찢고 날아가, 이온의 기함 ‘가이아’의 후방 엔진 코어를 정확히 강타했다. 거대한 폭발음이 진공을 뚫고 카이젤의 함선에까지 진동으로 전해졌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

가이아급 전함의 거대한 선체가 비틀거리며 균열을 일으켰다. 파편들이 우주로 흩뿌려지고, 주변의 소형 함선들이 허둥지둥 대피하기 시작했다. 적 함대는 뒤늦게 레버넌트에게 포화를 퍼부었지만, 카이젤은 이미 다음 움직임을 계산하고 있었다.

“대상, 엔진 폭발 확인. 적 함대 통신망에 재밍 시작.” 세레나가 보고했다.

카이젤은 가이아의 통신망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짧고 굵은 메시지를 송출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얼음처럼 날카로웠다. 증오의 칼날이 담긴 파동이 우주를 가로질렀다.

“이온. 네놈이 앉아 있는 그 왕좌가 과연 영원할 것 같았나? 네놈이 짓밟았던 그림자가 이제 네놈의 심장을 겨눌 것이다. 기억해라… 카이젤이 돌아왔다.”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레버넌트는 다시 은폐막을 활성화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적 함대는 뒤늦게 무작위 공격을 퍼부었지만, 이미 텅 빈 공간에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들의 분노는 이제 막 불이 붙기 시작한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카이젤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망막에는 불타는 가이아의 잔해가 푸른 점으로 희미하게 깜빡였다. 이온은 지금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기함이 파괴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려 있을 터였다. 그의 견고한 심장에 이제 막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성공적인 작전입니다, 사령관.” 세레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성공? 겨우 시작일 뿐이야, 세레나.” 카이젤의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피가 마른 듯 건조한 미소였다. “이제 이온의 모든 것을 부서뜨릴 시간이다. 그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레버넌트는 미지의 어둠 속으로, 다음 복수의 무대를 향해 소리 없이 나아갔다. 그의 심장에는 꺼지지 않는 복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온, 그 이름 하나에 모든 증오가 담겨 있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그의 그림자는 이제 파멸의 전조가 되어, 이온의 왕좌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