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무한했고, 그 속을 가로지르는 것은 오직 빛의 잔상뿐이었다. ‘갈라테아’ 호는 낡고 지쳐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은하계 변방의 잔해 더미를 뒤지며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찾아 헤매는 첨단 탐사선이었다. 지구는 이제 ‘종말’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상처를 안고 숨 쉬는 병든 행성이었고, 인류는 새로운 보금자리, 혹은 최소한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아줄 무언가를 갈망했다.
“지민, 또 잡음인가?”
함교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강하준 선장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그의 눈은 전방의 블랙홀처럼 새까만 심우주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의식은 언제나 함교 곳곳의 승무원들에게 닿아있었다.
“네, 선장님. 심우주 통신 채널은 여전히… 죽어 있습니다. 이 부근은 전자기 스톰이 심해서요.”
박지민 통신 장교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묻어났다.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막내 장교에게 이 혹독한 임무는 버거워 보였다. 지민은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으며 눈앞의 스크린을 노려봤다. 삑삑거리는 백색 소음만이 그녀의 귓가를 채울 뿐이었다.
“괜찮아, 지민. 이 넓은 우주에서 한 가닥 희망 줄기 찾는 게 쉬울 리 있나.”
조종석에 앉아 있던 최혁진 보안팀장이 무심하게 내뱉었다. 그는 굵고 투박한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려 엔진 출력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의 직업은 보안팀장이었지만, ‘갈라테아’ 호의 낡은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는 일 역시 그의 몫이었다. 그는 늘 현실적이고, 때로는 염세적이기까지 했다.
바로 그때, 함교 중앙의 홀로그램 스크린이 파르스름한 빛을 뿜어내며 깜빡였다.
“선장님! 비정상적인 에너지 반응입니다!”
윤세아 과학 장교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평소에는 냉철하고 침착하기로 유명한 그녀였기에, 그 목소리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고장이야, 세아? 저번엔 소행성 잔해 가지고 난리를 치더니.” 혁진이 툴툴거렸다.
“아닙니다! 이건 차원이 달라요, 혁진 팀장님! 기존에 알려진 어떤 물질의 스펙트럼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특정 파동을 주기적으로 방출하고 있어요. 분석 불가능한 패턴입니다!”
세아는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스캔하며 손가락으로 공중의 스크린을 헤집었다. 홀로그램 지도가 붉은색 경고 표시와 함께 낯선 좌표를 띄웠다. 그것은 이전에 탐사된 적 없는, 심우주 공간의 가장자리였다.
하준 선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빛에 번뜩이는 이채가 스쳤다.
“경로 재설정. 해당 좌표로 이동한다. 속도는 최대한으로.”
“선장님, 무리입니다! 이 속도로 이동하면 엔진 과열 위험이…” 혁진이 반발했다.
“어차피 죽을 위기라면, 뭐라도 찾고 죽어야지. 전진.”
하준의 단호한 명령에 혁진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고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늙은 ‘갈라테아’ 호는 거대한 몸을 뒤틀며 새로운 항로를 향해 나아갔다. 우주선 전체가 웅장한 진동과 함께 서서히 가속했다.
수 시간이 흐르고, 우주선은 미지의 공간에 다다랐다. 주변은 여전히 어둠뿐이었고, 별의 희미한 빛조차 닿지 않는 적막의 심연이었다.
“멈춰.” 하준의 명령에 혁진이 조종간을 당겼다. ‘갈라테아’ 호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정지 궤도에 진입했다.
“시야 확보… 했습니다!” 지민의 목소리가 경탄으로 변했다.
전방의 메인 스크린에 희미한 형상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점처럼 보였던 그것이 점차 거대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세상에…” 지민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건축물 같았다.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로 이루어진, 새까만 구조물이었다. 빛을 흡수하는 듯한 표면은 그 어떤 금속이나 암석의 질감과도 달랐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처럼, 우주의 배경에 완벽히 동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존재감은 주변의 모든 별빛을 압도하는 듯했다. 육중하고, 침묵하며, 위압적인 고독을 뿜어냈다.
“스캔 결과는?” 하준이 숨을 죽인 채 물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선장님! 아니, 스캐너 자체가 작동을 거부해요. 마치… 저 존재가 아닌 것처럼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세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스크린을 연타했다. “이런 물질은 이론상으로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빛을 흡수하면서도, 동시에 존재감을 뿜어내는… 마치… 공간 자체를 뒤틀어버리는 것 같아요.”
“모든 무기 시스템 대기. 쉴드 최대 출력.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다.” 하준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선장님, 저건… 유물입니다.” 세아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인류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지의 존재가 만든 유물이에요! 이건 인류의 역사를 바꿀 발견입니다! 당장 접근해서 샘플을 채취해야 합니다!”
“위험합니다, 캡틴. 정체불명의 물질에서 나오는 에너지 반응은 예측 불가능해요. 당장 폭발하거나, 우리 우주선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도 있습니다.” 혁진이 경고했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하준 선장님… 저는 무서워요…” 지민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하준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은 유물을 떠나지 않았다. 탐험가의 본능이 격렬하게 고동쳤다.
“접근 허가한다. 셔틀 발진 준비. 조사는 나, 윤 장교, 최 팀장이 맡는다.”
“선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지민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하준은 고개를 저었다. “넌 함교를 지켜. 비상시 ‘갈라테아’ 호의 지휘는 네게 있다.”
“네… 알겠습니다.” 지민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작은 탐사 셔틀이 ‘갈라테아’ 호의 격납고에서 분리되어 유물을 향해 날아갔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세 사람은 작은 셔틀 안에 앉아 거대한 미지에 맞섰다. 유물의 크기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압도적이었다. 감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검은 벽이었다.
“표면 온도는 절대 영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미세한 열원 반응이 감지돼요.” 세아가 스캐너를 든 채 중얼거렸다.
혁진이 셔틀의 팔을 뻗어 유물 표면에 조심스럽게 접촉했다.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스캐너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이건… 존재하지 않는 물질처럼 스캐너가 인식해요.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수준인데.” 혁진은 혀를 내두르며 팔을 거두었다.
그때였다. 유물의 완벽했던 표면이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어느 한 지점에서 가느다란 선이 나타났다. 이내 그 선은 점차 길어지며 거대한 균열을 만들었고, 그 사이로 푸른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문인가…?” 하준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세아가 홀린 듯 손을 뻗으려 했다. 혁진이 본능적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안 돼! 위험해!”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강렬한 섬광을 일으키며 셔틀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 빛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마치 정신에 직접 와닿는 듯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소리 없는 진동이 셔틀을 뒤흔들었고, 멀리 떨어져 있던 ‘갈라테아’ 호 내부에서도 미세한 떨림이 감지됐다.
“캡틴! 유물에서… 뭔가가… 나와요! 통신이… 먹통입니다! 비상 주파수도 연결되지 않아요!”
지민의 비명이 찢어지는 듯한 통신 노이즈를 뚫고 희미하게 들려왔다.
셔틀 안의 세아의 눈동자가 극도로 확장됐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경악에 찬 말이 새어 나왔다. “이건… 차원 간섭 신호…! 아니… 기억…?”
하준은 허리춤의 권총을 뽑으려 했지만, 그의 몸은 이미 푸른빛에 속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혁진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유물의 푸른빛은 점점 더 강렬해지며, 셔틀 내부를 완전히 삼켜 버렸다.
그리고, 세 사람의 머릿속에, 마치 속삭이듯, 혹은 외치듯, 알 수 없는 이미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피로 물든 도시. 산산조각 난 행성. 모든 생명이 절규하는 고통스러운 비명.
그리고…
형체 없는 그림자들이, 굶주린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끔찍한 공포가 온몸을 짓눌렀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알 수 없었다.
“아아아악!”
세아의 비명이 통신망을 뚫고 ‘갈라테아’ 호에 마지막으로 닿았다. 그리고 모든 통신이 끊겼다.
함교에 홀로 남은 지민은 얼어붙은 채 메인 스크린을 바라봤다. 화면 속 푸른 섬광은 이제 하나의 점이 되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탐사 셔틀이 유물에 삼켜진 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가속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점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빛을 뿜으며 ‘갈라테아’ 호의 항로를 역으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추적하듯이.
“캡틴…?” 지민의 목소리가 공허한 우주선 안에 메아리쳤다.
그 순간, 메인 스크린 구석에 경고 문구가 섬뜩하게 깜빡였다.
[신호 감지: 오염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