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회색빛 새벽이 어둠골을 덮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으나, 골목은 이미 삐걱이는 삶의 소리로 가득했다.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허리 굽은 노인들이 낡은 수레를 끌고 나섰고, 깡마른 아이들은 흙먼지 덮인 맨발로 뛰어다녔다. 퀴퀴한 지푸라기와 썩은 채소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지만, 이들에게는 그것마저도 익숙한 일상의 일부였다.

하룬은 낡은 거적떼기를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등뼈가 우드득 소리를 냈다. 간밤의 추위 탓에 온몸이 뻣뻣했지만, 쉴 새 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그의 손은 거칠고 두꺼웠다. 하루 종일 벽돌을 나르고, 허리 부러져라 밭을 일궈도 그의 가족에게 돌아오는 것은 늘 메마른 빵 한 조각과 맑은 물 한 잔이 전부였다.

창 없는 움막의 문을 열자, 시린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어둠골의 적막을 갈랐다. 저것은 제국의 수도, ‘찬란의 도시’에서 울리는 종소리였다. 부패하고 거대한 제국, ‘황금 독수리 제국’의 심장에서 울리는 그 소리는 어둠골 사람들에게는 희망 대신 절망을, 약속 대신 공포를 상기시키는 비명처럼 들렸다. 그들의 삶이 황금 독수리의 발톱 아래 얼마나 짓밟히고 있는지 상기시키는 잔인한 알림이었다.

“하룬, 또 벌써 일어났느냐?”

움막 안에서 그의 어머니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늘 피곤에 절어 있지만, 아들을 향한 걱정은 쉬이 놓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네, 어머니. 오늘부터는 저녁까지 제국성 바깥 담장을 쌓아야 합니다.”

“또 그 징용인가… 벌써 세 번째다. 닷새 동안 먹을 것도 제대로 못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깊은 한숨이 배어 있었다. 제국은 해마다 늘어나는 세금과 함께 평민들을 강제 징용하여 자신들의 웅장한 건축물을 짓게 했다. 노동의 대가는커녕, 때로는 가져간 식량마저 빼앗기는 일도 허다했다.

하룬은 억지로 미소 지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이번엔 제가 챙겨둔 건빵이 좀 있으니 버틸 만할 겁니다. 그리고… 이번엔 좀 다를지도요.”

‘다를지도요.’ 그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이자, 어쩌면 작은 희망의 불씨였다. 어젯밤, 그는 몇몇 청년들과 함께 좁은 골목길에 모여 몰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속삭였다. 제국의 횡포가 하늘을 찌르고, 평민들의 피를 말리는 방식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움막을 나서며 하룬은 허리춤에 찬 낡은 주머니를 만졌다. 어젯밤 얻은 쌀알 몇 톨과 말린 고기 조각이 전부였다. 그것으로 닷새를 버티라니, 제국은 평민들을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 것이 분명했다.

어둠골을 벗어나 제국성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굶주림과 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끝없는 절망이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저 멀리, 거대한 성벽이 아침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황금 독수리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듯 솟아오른 그 성벽은 평민들에게는 닿을 수 없는 높은 벽이자, 자신들을 가두는 감옥과 같았다.

성문 앞에서 제국 병사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징용된 평민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번쩍이는 은빛 갑옷과 길다란 창이 위압적이었다. 그들의 굳은 얼굴에는 평민들에 대한 경멸과 귀찮음이 역력했다.

“꼼짝 말고 움직여라! 늦장 부리다간 회초리가 맛볼 줄 알아라!”

병사들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하룬은 그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그의 시선은 병사들의 어깨 너머, 드넓은 광장에 세워진 처형대에 닿았다. 어제 또 다른 ‘불경죄’를 저지른 자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죄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제국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미를 보인 자들이 그러한 운명을 맞이한다는 사실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작업장에 도착하자마자, 관리자가 징용자들을 재촉했다.

“시간 낭비하지 마라! 황제 폐하께서 성벽이 너무 낮다 하셨다! 더 높이, 더 튼튼하게 쌓아 올려라!”

삽과 곡괭이가 주어지고, 흙과 돌을 나르는 고된 노동이 시작되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허리 부서져라 일하는 평민들의 얼굴에는 땀과 흙먼지가 뒤섞였다.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불평 한마디 하지 못했다. 불평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점심시간이 되었다. 병사들이 거친 주먹밥과 짠물 한 그릇을 던지듯 나눠주었다. 하룬은 자신이 가져온 건빵과 쌀을 아껴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지쳐 있었지만, 한쪽 구석에 모여 앉은 몇몇 청년들의 눈빛은 달랐다. 그들의 눈에는 체념 대신 불꽃이 일렁였다.

그중 한 명, 갈색 머리의 강인해 보이는 청년이 하룬에게 눈짓했다. ‘다렌’이었다. 어젯밤,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다렌은 하룬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하룬, 오늘 밤은 달이 뜨지 않는다더군.”

달이 뜨지 않는 밤. 그것은 어둠이 가장 깊은 밤이자, 몰래 움직이기에 가장 좋은 밤을 의미했다. 어둠골의 청년들이 은밀히 모이는 시간이었다.

하룬은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때, 저 멀리서 한 병사가 거친 발길질로 한 노인을 때려눕혔다. 노인이 작은 돌멩이를 주워 먹으려다 걸린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도둑놈! 그깟 돌멩이가 뭐가 대수라고!”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이 비웃었다. 노인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신음했다.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나서면 같은 운명이 될 터였다.

하지만 하룬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손에 쥔 삽자루가 덜덜 떨렸다. 그의 시선은 병사의 등 뒤에, 그리고 그 뒤에 버티고 선 거대한 성벽에 고정되었다. 이 벽은 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들의 억압을 상징하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젠장…”

하룬의 입에서 낮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다렌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참아, 하룬. 아직은 때가 아니야.”

하지만 하룬의 눈은 이미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노인의 피가 땅에 스며드는 것을 보면서, 그는 결심했다.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이 부패한 제국에 맞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그날 저녁, 해가 지고 어둠이 다시 어둠골을 삼켰을 때, 하룬은 더 이상 자신의 움막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어둠 속에 숨겨진 작은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청년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낮의 체념과는 달랐다. 모두의 가슴 속에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왔군, 하룬.”

다렌이 낮은 목소리로 그를 맞았다. 흙먼지 묻은 다렌의 얼굴은 단단해 보였다.

“그래.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 거지?”

하룬의 목소리도 낮았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하룬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알았다. 더 이상 단순한 불평만 늘어놓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무언가 시작해야 할 때였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등불 아래, 그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들은 언젠가 제국의 그림자를 집어삼킬 거대한 불길이 될 조짐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어둠골의 이름 없는 평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혁명의 첫 페이지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