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깊은 밤의 장막을 드리웠지만, 지우의 아파트 안은 어둠보다 더 짙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몇 주 전부터 시작된 기이한 현상들은 이제 일상이자, 그녀의 모든 것을 좀먹는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유독 심했다. 그녀는 침대에 웅크린 채 벽시계의 초침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째깍, 째깍. 그 규칙적인 소리마저 이제는 섬뜩한 고문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거실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우는 숨을 들이켰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 혼자 사는 이 아파트에서, 그녀는 늘 혼자였는데. 이젠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였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제발… 아무것도 아니길.”
희미하게 중얼거렸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어둠 속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등골을 적셨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기분에 그녀는 팔을 쓸어내렸다.
두 번째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가깝게, 그리고 명확하게 들렸다.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쨍그랑!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그녀의 고막을 찢었다.
“흐읍!”
지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차마 눈을 뜰 수도, 그렇다고 이대로 잠들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지난번엔 침대 맡의 스탠드 램프가 저절로 켜졌고, 그 전엔 냉장고 문이 활짝 열려 냉기가 온 집안을 휘감았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었다. 매일 밤, 어둠이 내리면 그것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오래된 건물이라서, 착각이라서, 꿈이라서… 하지만 이제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아파트에 함께 있었다.
주방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로운 칼날이 도마 위를 쓸어내리는 듯한 소리. 이어서 찬장이 ‘덜컹’ 하고 격렬하게 흔들렸다. 지우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검은 어둠 속에서, 그녀는 겨우 눈만 깜빡였다.
그 순간,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이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지우의 심장이 발끝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얼른 손을 뻗어 휴대폰을 더듬었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휴대폰은 자꾸만 저 안쪽으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안 돼…!”
겨우 손끝으로 휴대폰을 잡아 올렸을 때,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시간은 새벽 2시 3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잠금 화면을 넘어, 알 수 없는 앱 하나가 저절로 실행되었다. 새까만 화면에 하얀 글씨로 쓰여진 문장 하나.
「넌, 혼자가 아냐.」
지우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화면의 글씨가 마치 뇌리에 박힌 듯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녀는 온몸의 피가 식어버리는 것 같은 한기를 느꼈다. 이건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이건… 의도를 가진 존재였다. 그녀를 알고, 그녀에게 말을 거는, 지독한 악의(惡意)가 담긴 존재.
갑자기 거실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뚝 끊겼다. 아파트 전체가 정지한 듯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지우의 신경을 더 날카롭게 긁었다. 무슨 일이지? 사라진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었다. 늘 그랬듯이, 이건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지우의 방문이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주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닫혀 있던 방문이 스스로 열리는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넓어지는 문의 틈새로, 거실의 더 짙은 어둠이 스며들어왔다.
문이 절반쯤 열렸을 때, 그녀는 보았다.
어둠 속에 잠긴 거실 한가운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 화병이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달빛이 희미하게 그 형체를 비추었다. 화병은 서서히, 그러나 명확히, 허공에서 흔들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을 붙잡고 장난을 치는 것처럼.
지우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만 크게 뜬 채, 그 기괴한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화병이 한 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이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아앙!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끔찍한 소리가 고요했던 아파트 전체를 뒤흔들었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방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거친 옷자락이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듯한, 끈적하고 스산한 소리.
점점 더 가까워졌다.
투둑, 투둑.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 오르는 소리. 지우의 침대 발치, 바로 그곳이었다. 그녀는 이불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녀의 침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공포 속에서, 지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지…우…야…”
귓가를 파고드는 속삭임. 메마르고 갈라진, 사람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바로 침대 맡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지우의 눈앞이 새하얘졌다. 그녀의 몸은 공포로 경련했다.
“나…를… 봐…”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야 할 이불 위로, 차갑고 축축한 무언가가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썩어가는 흙더미가 살갗에 닿는 것처럼. 지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순간,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들어 올려지고 있는, 길고 뼈마디가 드러난 손이었다. 창백한 살점 위로 거미줄 같은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비쳤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미라의 손처럼 바싹 말라 있었으나, 엄연히 살아있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손끝이 지우의 턱을 향해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그 손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 불길하고 섬뜩한 손만이 공중에 떠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우는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녀의 눈앞에서, 그 손은 허공에 멈춰 서더니, 이내 손가락 하나하나가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묶인 마리오네트처럼. 끔찍한 광경이었다. 손가락들이 제멋대로 꺾이고 비틀리며, 기이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손가락들이 멈춘 곳은, 그녀의 방문이었다.
그 손가락들이 허공에 대고 무언가를 그렸다. 어둠 속에서 빛 한 줄기 없이, 오직 형상만으로 느껴지는 섬뜩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지우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그것이 무엇을 그리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다섯 개의 뾰족한 가지를 가진 별, 그것도 거꾸로 뒤집힌 형태의 별.
역오망성(逆五芒星).
그 별이 완성되자마자, 아파트 전체가 한 번 크게 요동쳤다. 마치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가구가 흔들리고 창문이 와르르 떨렸다. 바닥의 유리 파편들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다시 떨어졌다.
지우는 고개를 들어 그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 기괴한 역오망성 아래에, 다시 한 번 하얀 글씨가 어둠 속에 떠올랐다. 이번에는 휴대폰 화면이 아니라, 허공에 직접 쓰인 듯한 글씨였다.
「곧… 시작될 거야.」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깨어나는 소리, 비명이 섞인 웅얼거림이 벽 너머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우는 아파트 바깥으로, 세상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마치 납덩이라도 매단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눈앞의 역오망성과 섬뜩한 글씨를 바라보며, 다가올 파멸의 시간을 직감할 뿐이었다. 그녀의 평범했던 아파트는 이제, 끔찍한 악몽의 문턱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문이, 활짝 열리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