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썩어가는 고름처럼 탁했다. 지평선은 온통 무너진 콘크리트와 뼈대만 남은 철골 구조물들로 뒤덮여 있었고, 흙먼지는 거대한 폐허의 숨통을 조이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날렸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도시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아니, 죽음보다 더한, 끔찍한 변형을 겪고 있었다.
“여기서 뭐가 나올 것 같아?”
세라가 목에 건 낡은 천 조각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텁텁한 모래 먼지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고 부서진 상점가를 훑어봤다. ‘슈퍼마켓’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간판은 이제 기괴하게 휘어진 철판 조각에 불과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이 완전히 내려앉아 건물 내부의 절반은 거대한 돌무덤이 되어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텅 비어 있었고, 썩은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쓰레기만 잔뜩 있겠지. 어제도 그랬잖아.”
내 말에 세라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등에는 우리가 가진 전부나 다름없는 낡은 배낭이 메어져 있었다. 물통 하나, 통조림 몇 개, 그리고 녹슬었지만 아직 날카로운 사냥용 칼. 그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의지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예전엔 이런 곳에 물건이 많았다고 했으니까.”
그녀는 아직 희망을 놓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세라의 낙천주의가 가끔은 부러웠고, 또 가끔은 불안했다. 이 세상에서 희망은 가장 위험한 사치품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우리는 조심스럽게 돌무덤을 넘어 안쪽으로 향했다. 발밑에서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밟힐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건물 안은 바깥보다 훨씬 어두웠고,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곳에서는 이상한 종류의 이끼 같은 것이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빛을 흡수하는 듯 검붉은 색을 띠는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자 같았다.
“잠깐, 저거 뭐야?”
세라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무너진 선반 더미 아래에서 무언가가 번뜩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펴보니, 녹슨 통조림 캔들이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내용물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있었다.
“하나라도 건지면 다행이지.”
나는 주저앉아 통조림 캔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들려온, *찍* 하는 소리. 마치 끈적이는 무언가가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세라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 지훈아…!”
나는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려 세라를 끌어당겼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의 벽에서 검붉은 이끼들이 꿈틀거렸다. 단순히 식물 같던 그것들이 아니었다. 이끼들이 모여 거대한 눈동자를 형성하더니, 그 안에서 불길하고도 기괴한, 수많은 실 같은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촉수들은 마치 굶주린 뱀처럼 허공을 더듬으며 우리 쪽으로 빠르게 뻗어 왔다.
“젠장! 뛰어!”
우리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무너진 선반 위를 뛰어넘고, 쓰레기 더미를 헤치며 출구 쪽으로 향했다. 뒤에서는 *찍찍* 거리는 소리와 함께 벽을 타고 기어오는 괴물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촉수들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지면을 내리치는 소리가 우리의 귀를 찢을 듯했다.
“저쪽!”
세라가 손가락으로 건물 한쪽 구석의 부서진 창문을 가리켰다. 거기로 탈출해야 했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창문은 금이 가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깨지진 않은 상태였다.
“발로 차!”
세라가 소리쳤다. 나는 있는 힘껏 발을 내질러 창문을 부쉈다.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틈으로 잿빛 바깥 풍경이 드러났다. 거의 동시에, 내 발목을 향해 끈적한 촉수 하나가 날아들었다.
“크윽!”
간발의 차로 피했지만, 촉수는 내 바지자락을 찢고 지나갔다. 소름 끼치는 감촉이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등 뒤로 세라가 이어 따라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우리는 폐허의 거리로 굴러떨어졌다. 거친 돌바닥에 몸을 부딪혔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일어섰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뛰쳐나온 창문에서 검붉은 촉수들이 튀어나와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괴물의 몸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젠장, 젠장!”
세라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와 식은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 역시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저건 대체… 뭐였던 거야?”
내가 겨우 입을 열자, 세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르겠어… 저런 건 처음 봐. 벽이, 벽이 움직였어.”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주저앉을 힘도 없었지만,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폐허를 가로질러,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없는 곳, 괴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만한 곳을 찾아 이동했다. 발밑에 밟히는 낯선 물질들이 더욱 우리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질 무렵, 우리는 간신히 낡은 고가도로 아래로 몸을 숨겼다. 희미한 그늘이 잠시나마 우리를 태양으로부터 지켜주었다.
“젠장… 망할 세상…!”
세라가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그녀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물통을 건넸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마시지 않았잖아.”
나는 통조림 캔을 바라봤다. 아까 간신히 챙겨 나온 세 개의 캔. 이것만으로는 며칠을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세라가 얼굴을 들었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결연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지훈아?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만 쳐야 해?”
나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세라가 나를 믿고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잿빛 하늘 저 너머에는, 언젠가 푸르렀다는 옛날의 하늘이 있었을까. 이제는 오직 기형적인 구름과, 정체불명의 징후들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때, 내 발밑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렸다. 돌멩이인가 싶어 발로 툭 차려는데, 문득 이상한 느낌에 허리를 숙였다. 흙먼지에 반쯤 묻혀 있던 것은 낡은 가죽 수첩이었다.
“이게 뭐야?”
세라가 내 손에 들린 수첩을 보고 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수첩을 펼쳤다. 낡고 바랜 종이 위에는 알아보기 힘든 글씨들이 휘갈겨져 있었다. 하지만 몇몇 단어들은 눈에 들어왔다.
‘…하늘의 균열… 별의 위치… 재앙의 주기는 다시… 놈들의 부름… 생존자들은 서쪽으로… 붉은 탑…’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희미하게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 엉성하지만, 분명 서쪽 방향으로 길게 뻗은 선과 그 끝에 불길하게 솟아 있는 탑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붉은색으로 강조된 ‘탑’.
“서쪽… 붉은 탑?”
세라가 내 어깨 너머로 지도를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시금 희미한 희망과, 동시에 깊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붉은 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또 다른 지옥으로의 입구일지, 아니면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일지.
나는 수첩을 꽉 움켜쥐었다. 손끝에 닿는 낡은 가죽의 감촉이 생존을 향한, 알 수 없는 이끌림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막연히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갈 곳이 생겼다. 그것이 어떤 곳이든, 우리는 가야만 했다. 이 황폐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붉은 탑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어떤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가자.”
나는 짧게 말했다. 세라는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불안했지만, 나를 향한 신뢰는 여전했다.
“그래.”
그녀가 힘겹게 일어섰다. 우리는 폐허의 고가도로 아래를 벗어나, 잿빛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죽은 도시의 서쪽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그것은 마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존재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붉은 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마지막 불꽃이 될지, 아니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끔찍한 구렁텅이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우리는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