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균열
김민준은 익숙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새벽 세 시.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흐릿한 시야 너머로, 텅 빈 거실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꽤 오래된 오피스텔이라지만,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덕분에 월세는 항상 그의 숨통을 졸라왔다. 그 압박감만큼이나 그의 삶은 단조로웠다. 프리랜서 웹소설 작가. 그의 유일한 규칙적인 활동은 마감 지키기였고, 그의 세상은 이 좁은 오피스텔 원룸이 전부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잠결에 희미하게 들려오던 소음들이 점점 더 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는 위층이나 옆집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이려니 했다.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에 불규칙하게 울리는 ‘쿵’ 하는 소리, ‘딸깍’ 하고 문이 닫히는 듯한 소리, 때로는 흐릿한 속삭임 같은 것들이었다. 민준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도시의 밤은 원래 시끄러우니까.
하지만 지난주부터는 달랐다.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던 물컵이 그의 손에 들린 채로, 갑자기 식탁 위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의 손은 분명 컵을 쥐고 있었다. 마치 컵이 스스로 그의 손아귀를 벗어난 것처럼. 차가운 물이 바닥에 흥건하게 고였고, 깨진 유리 파편이 얇게 반짝였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그날 이후, 이상한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책상에 가지런히 놓아둔 펜들이 제멋대로 굴러 떨어지거나, 침대 협탁 위에 두었던 휴대폰이 거실 바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잠이 오지 않아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식탁 위에 놓인 과일 바구니가 덜컹거리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 안의 사과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흔들리는 것처럼 좌우로 움직였다.
“이게… 뭐야?”
민준은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피로와 스트레스 탓이라고 생각했다. 작가 생활은 항상 과로의 연속이었고, 불규칙한 생활은 환각이나 착란을 일으키기 쉬웠으니까. 하지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현상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오래된 건물이 진동하는 것치고는 너무 정교했고, 바람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엔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늘 새벽, 다시 한번 잠에서 깬 것은 그의 귓가를 스치는 섬뜩한 속삭임 때문이었다.
‘…가지 마…’
너무나 희미해서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동반했다. 텅 빈 거실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은 아무리 보일러를 높여도 사라지지 않는 차가움이었다.
민준은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려 했지만, 협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또야?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어둠 속에서 발을 더듬거렸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발이 닿자 소름이 돋았다.
“젠장, 어디 간 거야…”
침대 주변을 더듬어봐도 휴대폰은 없었다. 그는 거실로 향했다.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어렴풋한 창밖의 불빛에 의지해 그의 시선은 바닥을 훑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식탁 의자 밑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이었다.
“거기 왜…”
그는 몸을 숙여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은 멀쩡했다. 그는 불평하듯 중얼거리며 화면을 켰다. 시간은 정확히 새벽 3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철컥.’
현관문에서 짧고도 명료한 잠금장치 소리가 들렸다. 민준의 등골이 오싹하게 얼어붙었다. 현관문은 분명히 잠겨 있었다. 그는 외출하고 돌아오면 늘 이중 잠금장치까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시각에 누가 문을 열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그는 숨을 죽인 채 현관 쪽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방금 들린 소리는 단순히 건물의 노후로 인한 소음이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현관문을 열었거나, 최소한 열려고 시도한 소리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여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휴대폰의 액정 불빛을 이용해 현관문을 비췄다. 손잡이는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이중 잠금장치의 빗장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민준의 뇌리에 섬광처럼 하나의 가능성이 스쳤다. 이건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 침입하려 한 걸까? 하지만 어째서 아무도 없는 지금, 문을 열어젖히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일까?
그는 공포에 질려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현관문 너머 복도가 희미하게 보였다. 텅 빈 복도. 하지만 어쩐지 그 복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차갑고, 습하며, 먼지 냄새가 섞인 곰팡이 냄새 같은 것. 그의 오피스텔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그리고 그 복도 저편, 분명히 굳게 닫혀 있어야 할 이웃집 문 대신, 거대한 검은 구멍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밤하늘에 블랙홀이라도 생긴 것처럼,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완벽한 어둠. 그 어둠의 가장자리에는 푸르스름한 안개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쿵!’
갑자기 그의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민준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식탁 위, 아까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던 자리에서 묵직한 유리 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춰, 그의 오피스텔 거실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액자가 기우뚱거렸고, 천장의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콰앙!’
이번엔 훨씬 더 큰 소리였다. 마치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 그의 눈앞에서 거실 벽 한쪽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얇은 금이 아니었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던 금은 이내 거대한 균열이 되었고, 그 균열의 틈새로 아까 현관문 너머에서 봤던 것과 같은 푸르스름한 안개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민준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오피스텔이, 그의 안식처였던 공간이, 송두리째 찢겨나가고 있었다. 벽의 균열은 점점 더 커져갔고, 그 안쪽은 더 이상 콘크리트 벽이 아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 속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깜빡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빛은 마치 멀리 떨어진 촛불 같기도 했고, 아니면 거대한 동굴 속의 누군가가 움직이는 불빛 같기도 했다.
‘쉬이익…’
균열 사이에서 바람 소리가 아닌, 무언가가 숨 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민준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의 이성은 비명을 질렀다. 이건 꿈이다. 혹은 말도 안 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너무나 생생했다.
갈라진 벽 틈새로, 그의 오피스텔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유령의 장난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는, 그의 집은, 지금 이 순간, 다른 차원의 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문턱에 서 있었다.
그의 오피스텔은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었다.
그곳은, 이제,
던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