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한때는 고층 빌딩이 즐비했을 도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린 잔해들로 가득했고, 그 위로 쌓인 흙먼지는 모든 것을 덮어버린 죽음의 이불 같았다. 류진은 낡은 방수포 아래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눈을 떴다. 밤새 뼈를 에는 듯한 한기는 옷 몇 겹을 뚫고 들어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는 겨우 팔을 움직여 뻣뻣한 목을 주무르며 희미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또 하루 시작인가.”

목소리가 갈라졌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바싹 마른 입술은 터진 지 오래였다. 이런 날이 대체 몇 년째인지, 이제는 세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세상이 ‘균열’로 뒤덮이고 영기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 이후, 살아남은 자들에게 시간은 그저 ‘죽지 않은 날’의 반복일 뿐이었다.

류진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낡은 가죽 재킷과 닳아빠진 바지는 곳곳이 찢어졌지만, 이 세상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준수한 방한복이자 보호구였다. 허리춤에는 그의 유일한 벗이자 생명줄인 녹슨 장검이 매달려 있었다. 칼집 안의 검날은 그나마 정성스럽게 닦여 있었지만, 세상의 기운이 뒤틀린 탓에 영기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한때 영검이라 불렸던 것도 이제는 그저 조금 날카로운 쇳덩이에 불과했다.

폐허가 된 건물 틈 사이로 한 줄기 빛조차 찾아보기 힘든 아침. 그의 가장 큰 과제는 오늘도 ‘살아남는 것’이었다. 식량은 거의 바닥났고, 오염되지 않은 물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웠다. 어제 간신히 잡은 변이종의 고기 몇 점으로는 며칠을 버티기 힘들 터였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밑에서 부서진 파편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기어 나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세상이었다. 그는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눈으로는 폐허 구석구석을 훑고, 귀로는 희미한 소리 하나 놓치지 않았다. 코로는 썩은 냄새, 금속 냄새, 그리고 가장 위험한 ‘변이종’ 특유의 비릿한 악취를 구별하려 애썼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중심부였을 곳을 향했다. 그곳은 가장 위험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많은 자원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붕괴된 백화점 건물, 박살 난 상점 간판들이 즐비한 거리. 한때는 번화했던 곳이었으리라 짐작만 할 수 있었다. 류진은 기억 속의 과거와 현재의 처참한 풍경을 애써 분리하려 했다. 과거에 갇히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한때 고급 의류 매장이었던 곳의 잔해 속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파편들을 치워나갔다. 무엇이든 쓸모 있는 것이 나올 수 있었다. 낡은 천 조각, 부서진 도자기 조각, 심지어는 녹슨 못 하나도 이 세상에서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며칠째 헛걸음이었다. 지친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름이 돋았다.
공기 중의 기운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그것은 변이종이 주변에 나타났을 때 특유의 현상이었다. 류진은 즉시 몸을 낮춰 그림자 속에 숨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짐승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영기가 오염되어 변이된 생명체, 즉 ‘영체 변이종’만이 낼 수 있는 기괴한 음성이었다. 류진은 숨을 죽인 채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건물 붕괴로 생긴 거대한 구멍 너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미형 영체 변이종인가.”

류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등은 거대한 거미와 흡사했지만, 다리는 기형적으로 길고 날카로운 낫처럼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여덟 개의 눈동자가 제각기 다른 방향을 주시하며 주변을 스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것은 한때 평범한 거미였을 것이지만, 지금은 영기를 탐하고 오염된 살점을 뜯어먹으며 진화한 흉물이었다. 녀석의 몸에서는 약하지만 치명적인 독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류진은 재빨리 자신의 영력을 내부로 순환시켰다. 온몸의 세포가 미세하게 반응하며 감각이 예리해졌다. 발소리를 죽이고 벽에 바싹 붙어 이동했다. 녀석은 아직 그를 정확히 감지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았다. 저런 변이종은 한번 사냥감을 감지하면 끝까지 추격했다.

놈은 류진이 숨어있는 곳에서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주변의 부서진 잔해들 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류진은 심장이 멎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낡은 검날 위로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한때는 찬란했을 영기가 이제는 겨우 이 정도의 빛을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젠장, 피할 수 없겠군.”

녀석의 더듬이가 움직였다. 류진이 내뿜는 미세한 영기의 흐름을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순간, 녀석의 여덟 눈동자가 일제히 류진을 향했다. 놈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긴 다리들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벽을 타고 기어왔다.

“크아아아!”

류진은 포효하며 튀어나갔다. 선제공격만이 살길이었다. 그의 몸은 영력으로 강화되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녀석의 다리가 날아와 류진의 옆구리를 노렸다. 류진은 겨우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날카로운 다리 끝이 재킷을 찢고 피부를 스쳤다.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독기가 스며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이 빌어먹을!”

그는 왼팔을 뻗어 벽을 짚고 몸을 띄워 녀석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영력이 담긴 검날이 아래로 꽂혔다. 녀석의 단단한 등껍질에 부딪히며 ‘쨍그랑’ 하는 금속성 소리가 울렸다. 검날이 튕겨 나갔지만, 미세한 균열을 만들었다. 영력이 부족한 탓에 한 번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

녀석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었고, 류진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위를 둘러싼 거미줄처럼 끈적이는 독성 액체가 튀었다. 류진은 온몸에 힘을 주어 독기를 정화하려 애썼다. 그의 영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싸움은 치열하게 이어졌다. 류진은 민첩함을 이용해 녀석의 공격을 피하고, 틈이 보일 때마다 검을 휘둘렀다. 녀석의 다리는 강력했지만 움직임이 단조로웠고, 류진은 그 약점을 파고들었다. 몇 차례의 공방 끝에 녀석의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갔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폐허에 울려 퍼졌다.

“이 녀석!”

류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잘린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성 피를 피하며, 그는 녀석의 눈동자를 향해 돌진했다. 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검날에 집중했다.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마지막 일격이었다.

“꿰뚫어라!”

검이 녀석의 가장 큰 눈동자를 정확히 꿰뚫었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녀석의 몸이 경련했다. 독기가 폭주하듯 터져 나오며 주변을 오염시켰다. 류진은 겨우 몸을 빼내 뒤로 물러섰다. 녀석의 거대한 몸체가 힘없이 무너지며 주변의 잔해들을 뒤엎었다.

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독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옆구리의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주저앉아 겨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하… 겨우… 살았군.”

승리했지만, 이것은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작은 전투일 뿐이었다. 그는 겨우 몸을 추슬러 쓰러진 변이종의 시체에 다가갔다. 비록 독기가 심해 먹을 수 있는 부위는 제한적이었지만, 녀석의 몸에서 얻을 수 있는 ‘핵석’은 귀중한 자원이었다. 영체 변이종의 핵석은 미약하게나마 영기를 품고 있어, 영력 수련에 도움이 되거나 혹은 장비 수리에 사용될 수 있었다.

류진은 거대한 시체를 조심스럽게 해체하기 시작했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는 익숙한 듯 무표정하게 칼을 놀렸다. 녀석의 몸속 깊숙이 박혀있는 작은 돌멩이, 그것이 핵석이었다.

간신히 핵석을 추출하고 나자, 류진은 극심한 피로감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끊임없이 찾아야 했다.

그는 멀리 보이는 무너진 고층 건물들을 바라봤다. 그중 가장 높이 솟아 있는, 한때는 자랑스러운 랜드마크였을 거대한 잔해. 그곳에는 아직 미지의 비밀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혹은,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언젠가는… 저곳에 가봐야 할 텐데.”

피 묻은 손으로 핵석을 움켜쥐며 류진은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피로와 함께, 희미하게 빛나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거대한 건물 잔해의 가장 높은 곳,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듯한 틈 사이로, 이제껏 보지 못했던 기묘한 빛줄기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류진의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희망의 빛일까, 아니면 더 깊은 절망의 시작일까. 류진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발길은 이미 그 빛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아가야만 했다.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