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마그나 마법 학원, 본관 지하 3층.
강민준은 피와 비명으로 얼룩진 복도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낡은 돌벽에는 군데군데 균열이 가 있었고, 푸르스름한 마법 램프는 깜빡이다 이내 꺼지기를 반복했다.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울부짖음은 심장을 꿰뚫는 칼날 같았다. 그 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두 시간 전만 해도 이곳은 빛나는 마법의 전당이었다. 학생들은 복도를 오가며 주문을 외우고, 교수들은 고대의 지식을 읊조렸다. 하지만 지금은? 피 냄새, 살 타는 냄새, 그리고 역겨운 시체 썩는 냄새가 뒤섞여 폐부까지 파고들었다.
“젠장… 젠장할!”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삐걱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틀린 형체들이 어둠 속에서 기어나오는 모습은 마치 악몽 그 자체였다. 그들의 몸은 창백하게 부풀어 오르거나 끔찍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눈은 핏발 서린 채 이성을 잃었고, 입에서는 짐승 같은 신음과 함께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젠장, 대체 이게 왜…!’
민준은 필사적으로 마법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얇고 낡은 지팡이였다. 그는 학원의 최하위 성적을 기록하는 문제아였고, 이런 위기 상황에 대비한 적도 없었다. 그는 그저 평범하게 마법을 배우고, 가끔은 몰래 연애 소설을 읽으며 졸업 후의 안온한 삶을 꿈꾸던 평범한 마법학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꿈은 산산조각 났다.
복도 모퉁이를 돌자, 지쳐 쓰러진 듯한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민준은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겨눴다. 혹시 살아있는 사람일까? 희망이 샘솟는가 싶었지만, 이내 그 기대는 차가운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림자는 축 늘어진 자세로 벽에 기대어 있었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신음소리가 그것이 이미 ‘그들’ 중 하나가 되었음을 알렸다.
“하아… 하아…”
민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놈은 몸을 천천히 돌렸다. 찢어진 교복 틈으로 끔찍하게 부어오른 피부가 드러났다. 한쪽 눈은 튀어나와 실핏줄에 매달려 있었고, 나머지 눈은 민준을 향해 이글거리는 광기로 가득했다. 벌어진 입에서는 녹슨 쇠 냄새가 진동하는 검붉은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크르르르…”
놈이 사지를 뒤틀며 다가왔다. 몸은 기괴하게 꺾여 있었지만, 그 움직임은 놀랍도록 빠르고 끈질겼다. 민준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마법을 써야 한다. 하지만 손은 덜덜 떨렸고, 주문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 민준! 대체 뭘 해야 하는 거야!’
그의 뇌리에는 어렴풋한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며칠 전, 지하 4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들었던 소문. 고위층 교수들이 극비리에 연구하는 ‘금기된 마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연구실에서 새어 나오던 기이한 냄새… 그때는 단순한 가십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호기심 어린 장난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그 금기된 연구실에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 같았다. 지상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마법 결계가 붕괴하는 소리, 그리고 교내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절규… 모든 것이 그 소문과 기이하게 겹쳐졌다.
놈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찢어진 손톱이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길게 자라 있었다. 민준은 이를 악물었다. 피할 수 없다면 싸워야 했다. 비록 학원에서 빛을 보지 못한 마법사일지라도.
“불꽃… 불꽃 화살!”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주문을 외쳤다. 지팡이 끝에서 작고 희미한 불꽃이 튀어나와 놈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위력은 형편없었다. 교재에 나오는 초급 마법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마법이었다.
*퍽!*
불꽃은 놈의 얼굴에 닿았지만, 마치 모기 불에 스친 듯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놈의 기괴한 얼굴에 검은 그을음만 남긴 채, 오히려 놈은 더욱 흉포하게 으르렁거렸다.
“이, 이런…!”
민준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평소에도 위력이 약했던 그의 마법은, 저 괴물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지팡이 대신 옆에 떨어진 낡은 철 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마법 학원 학생이라는 자부심도, 마법사의 위용도 모두 무의미해졌다. 지금은 그저 살아야 했다.
놈이 발을 질질 끌며 달려왔다. 그 끔찍한 형상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민준은 눈을 질끈 감고 철 파이프를 휘둘렀다.
*콰앙!*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하지만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 없는 눈동자로 민준을 노려보며, 튀어나온 눈알을 다시 한번 흔들었다.
“이 망할 괴물!”
민준은 다시 한번 파이프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놈의 머리를 찍었다. 놈의 머리에서 끈적한 검은 피가 터져 나왔고, 놈은 그제야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마치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것처럼, 바닥에 엎드린 채 손을 뻗어 민준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민준은 역겨움에 몸서리치며 발을 빼고 뒤로 물러섰다. 놈은 결국 몸을 완전히 뒤틀며 축 늘어졌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등 뒤에서 섬뜩한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악! 살려줘!”
복도 저편에서 달려오는 여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흰색 교복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얼굴은 공포로 창백했다. 그녀의 뒤에는 세 마리의 괴물이 굶주린 짐승처럼 쫓아오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는 거대한 식칼을 휘두르는 주방 직원의 모습이었고, 다른 두 마리는 마법 결계를 수리하던 작업복 차림의 학원 직원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망치와 렌치가 들려 있었는데, 마치 무기가 된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선배! 도와주세요!”
여학생의 비명에 민준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비록 보잘것없는 마법사였지만, 차마 눈앞에서 동료를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손에 든 철 파이프를 다시 고쳐 쥐었다.
“이쪽이야! 빨리!”
민준의 외침에 여학생은 필사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민준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는 그녀의 교복에 달린 명찰을 볼 수 있었다. ‘아스트라 반, 1학년, 김소은’. 앳된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소은이 민준의 뒤로 숨자, 세 마리의 괴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들의 찢어진 입에서는 굶주린 하울링이 터져 나왔다.
“하아… 하아… 망할…!”
민준은 다시 한번 주문을 외려 했지만, 이미 경험했듯이 그의 초급 마법은 소용없었다. 철 파이프 하나로 저 셋을 상대할 수 있을까? 가슴 속에서 절망이 피어올랐다.
그때, 소은이 민준의 옷소매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기에… 지하 4층으로 가는 통로가 있어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복도 한구석에 숨겨진 낡은 철문이었다. 평소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낡은 팻말이 붙어 있었고,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던 곳이었다. 바로 그 ‘금기된 마법’의 연구실로 통하는 문.
민준은 그 문을 바라봤다. 섬뜩한 기운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 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의 원인이, 혹은 그 해결책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더 큰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괴물들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가장 앞에 선 주방 직원이 든 식칼이 차가운 빛을 발했다. 도망칠 시간은 없었다.
‘선택해야 해… 이대로 죽거나, 아니면… 미지의 지옥으로 뛰어들거나.’
민준은 숨을 들이쉬고 소은을 돌아봤다. 그녀의 눈에는 같은 질문이 담겨 있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소은아, 저 문을 열어!”
민준의 외침에 소은은 망설임 없이 철문으로 달려갔다. 굳게 닫힌 문은 오래된 마법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소은은 가녀린 손으로 필사적으로 문을 열려고 했다.
그 사이, 민준은 철 파이프를 휘두르며 괴물들을 막아섰다.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울리고, 민준의 팔에는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빨리! 김소은!”
소은의 손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민준보다 한 학년 아래였지만, 마법 재능은 훨씬 뛰어났다. 마법 자물쇠가 녹아내리는 소리와 함께, 낡은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어둠 속에서 차갑고 눅눅한 공기가 새어 나왔고, 알 수 없는 쇠 냄새와 비린 냄새가 섞여 민준의 코를 찔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추는 붉은 빛.
“안돼… 가지 마…!”
괴물들의 울부짖음이 더욱 거세졌다. 그들은 마치 문 너머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굶주린 광기가 모든 두려움을 집어삼켰다.
“뛰어!”
민준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괴물 하나를 밀쳐내고, 소은의 손을 잡아끌었다. 끔찍한 어둠 속으로, 붉은 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미지의 통로로.
그들이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괴물들이 맹렬히 달려들었다. 민준은 마지막 힘을 다해 철문을 닫으려 했다. 놈들의 손이 문틈으로 밀고 들어왔고, 끔찍한 비명소리가 그들의 귀를 때렸다.
*쾅!*
마침내 문이 닫히고, 거대한 굉음이 복도를 울렸다. 바깥의 비명소리는 희미해졌지만, 대신 안쪽의 어둠과 함께 더욱 끔찍한 정적이 그들을 감쌌다.
민준은 숨을 헐떡이며 문에 기댔다.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소은의 떨리는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희미한 붉은빛이 깜빡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좁은 복도가 이어져 있었고, 복도 양옆으로는 강철로 된 거대한 격벽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군사 시설이나 거대한 감옥 같았다. 그리고 그 복도 끝, 붉은빛의 진원지에서는 알 수 없는 형상의 그림자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풍겨오는 냄새. 핏비린내와 쇠 냄새가 뒤섞인, 역겨우면서도 섬뜩한 냄새.
이곳이 바로, 아크마그나 마법 학원의 심장부에 숨겨진 금기, 모든 재앙의 근원이었다. 그들은 절망의 끝에서, 또 다른 지옥의 입구에 서 있었다. 어쩌면 이 문 안으로 들어온 것이, 그들이 내린 최악의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민준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때, 붉은빛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흔들리더니, 이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는, 마치 자신들의 침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