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회색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빌딩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도시. 잿빛 먼지가 덮인 거리는 죽은 듯 고요했고, 이따금 스산한 바람 소리만이 폐허의 노래를 불렀다. 리나는 낡은 가죽 재킷의 칼라를 바싹 세우고 무너진 백화점 잔해 속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있었다. 녹슨 철근과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발밑에서 삐걱거렸지만, 그녀의 눈은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었다. 살아남는 것.

수없이 뒤지고 또 뒤져 이미 텅 비었을 법한 매대 모퉁이에서, 리나의 눈이 번뜩였다. 녹슨 선반 위에 놓인, 기적처럼 온전한 캔 두 개. 통조림 야채와 고기 캔이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이 정도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캔을 집어 들고 품에 넣는 순간, 등 뒤에서 섬뜩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빠르면서도 묵직했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냉기. 리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옆으로 구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피부, 비정상적으로 길고 날카로운 손톱, 그리고 짐승처럼 헐떡이는 숨소리. ‘변이체’였다. 하수구에서 기어 나온 듯한 놈은 피에 굶주린 눈으로 리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놈이 으르렁거리며 덤벼들었다. 피할 틈도 없이 팔을 뻗는 순간,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무언가가 놈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변이체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벽에 처박혔다. 리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검푸른 털이 덮인 팔,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한 듯 희고 길게 뻗은 손가락,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 카엘이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철 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카엘은 변이체를 가차 없이 처리했다. 단 두 번의 일격으로, 놈은 바닥에 축 늘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잔인하고 효율적인 움직임.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완벽한 사냥꾼의 몸놀림이었다.

“다쳤어?”

나지막한 목소리가 폐허에 울렸다. 짐승의 낮은 울림이 섞인 듯한, 그러나 리나에게는 세상 그 어떤 소리보다도 안심이 되는 음성이었다. 리나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카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큰 손이 리나의 뺨을 감쌌다. 거친 피부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온기. 찢어진 가죽 장갑 사이로 드러난 그의 손등에는 오래된 상처 자국들이 선명했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리나의 얼굴을 훑었다. 걱정과 함께,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정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리나는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이 순간만큼은 두려움도, 불안도, 세상의 모든 금기도 잊을 수 있었다. 그와 그녀는 너무나 달랐다. 인간과, 그리고… 야수족. 종족 간의 오랜 반목과 유혈이 낭자한 역사는 그들의 사랑을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위험하고 금지된 것으로 만들었다. 인간들은 야수족을 야만적이고 짐승 같은 존재로 규정했고, 야수족 또한 인간을 나약하고 교활한 존재로 경멸했다. 그런 두 종족의 경계선에,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카엘이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의 품은 넓고 단단했다. 숲의 흙냄새와 야생의 향이 뒤섞인 익숙한 그의 체취가 리나를 감쌌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그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경고음이 섞여 있었다. 분명 그의 예민한 감각이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리라. 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마자,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나는 몸을 굳혔다. 인간 수색대였다.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놈들은 물자를 찾아 무자비하게 폐허를 뒤지고, 때로는 다른 생존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카엘이 띈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결말이었다.

카엘은 이미 소리를 감지한 듯했다. 그는 지체 없이 리나의 손목을 잡고 무너진 벽의 틈새로 몸을 숨겼다. 철근이 튀어나온 좁고 어두운 공간. 두 사람의 몸이 밀착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리나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쪽은 없는 것 같군! 저쪽 빌딩으로 가보자고!”

“발소리 조심해. 변이체 놈들이 득실거려.”

가까이, 너무 가까이. 발소리가 바로 벽 너머에서 들렸다. 리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카엘은 그녀를 더욱 끌어당겨 안았다. 그의 단단한 가슴에 리나의 귀가 닿았다. 격렬하게 울리는 그의 심장 소리가 리나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 주었다.

몇 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발소리가 멀어지고, 엔진 소리마저 희미해졌다. 그제야 카엘은 조심스럽게 리나를 놓아주었다. 어둠 속에서 마주친 그의 금빛 눈은 깊고 어둡게 흔들리고 있었다.

“위험해… 너무 위험해, 카엘.”

리나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이래서는 안 돼. 만약… 만약 들켰다면….”

카엘은 말없이 리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내가 널 지킬 거야.”

그의 말이 너무나 단호해서, 리나는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킨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은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고, 남은 것은 오직 증오와 불신뿐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언제까지 숨어 지낼 거야? 우리 둘 다… 이러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녀의 말에 카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는 시선을 돌려 어둠이 짙게 깔린 폐허의 풍경을 바라봤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리나의 심장이 다시 한번 쿵, 하고 떨어졌다.

“우리의 땅으로 가는 거야.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이라면….”

그의 말은 희망을 속삭이는 듯했지만, 동시에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의 땅. 야수족의 은신처. 그곳은 리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이자, 인간으로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의미였다. 자신의 종족, 자신의 과거,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리나는 카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금빛 눈동자에는 간절함과 함께, 그녀와 같은 고뇌가 담겨 있었다. 그 역시 자신들의 금기를 깨고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이리라.

“그게… 가능할까?”

리나의 입술에서 겨우 흘러나온 말이었다. 카엘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갔다. 그의 심장 박동이 그녀의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하고, 뜨겁게.

그때였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폐허의 적막을 찢고 섬뜩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짐승의 포효 같았지만, 어딘가 인간의 언어가 섞인 듯한, 기이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 변이체 놈들의 비명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무언가를 알리는 듯한, 조직적인 신호처럼 들렸다.

카엘의 몸이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얼굴에서 모든 혈색이 사라졌다.

“저건….”

그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갈라졌다. 리나는 그의 변화를 감지하고 불안감에 휩싸였다. 저 소리는 대체… 무엇인가.

카엘은 리나의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눈은 폐허의 어둠 속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들이… 우리를 찾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