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며칠째 제대로 된 식량은 입에 대지도 못했다. 뼈와 가죽만 남은 손이 낡은 쇠꼬챙이를 꽉 쥐었다. 녹슨 쇠 맛이 혀끝에 감도는 듯했다. 이 지독한 갈증과 허기를 달래지 못한다면, 결국 이 폐허에서 또 하나의 이름 없는 시체가 될 뿐이었다.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한때 번화했을 거리는 이제 잔해와 먼지로 뒤덮인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흉물스럽게 솟아 있고, 부러진 철골 구조물은 바람에 삐걱거리는 비명 소리를 냈다. 시선을 떼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땅에 널브러진 시체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액체 자국,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한 건,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다른 생존자들 혹은 변이체들. 이진우는 죽은 듯이 조용히, 그림자 사이를 스치듯 이동했다.

이곳은 ‘신서울’이었다. 그러나 이제 ‘신’이라는 접두사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오염된 지 오래. 살아남은 자들은 그저 숨 쉬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진우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고통이었고, 숨 쉬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찾아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젠장…!”

갈라진 입술 사이로 마른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제의 수확은 쥐꼬리만 한 통조림 하나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반쯤 부패했지만, 살기 위해선 그런 것조차 마다할 수 없었다. 오늘은 반드시 더 많은 것을 찾아야 했다. 최소한 물이라도.

진우의 시선이 저 멀리, 반쯤 무너진 간판을 좇았다. 흐릿하게 ‘세이브 마트’라고 적혀 있었다. 희미한 희망이 가슴 한구석에서 꿈틀거렸다. 아마… 텅 비었겠지만, 혹시 모른다. 단 한 조각의 빵이라도, 혹은 마실 수 있는 물 한 병이라도. 그곳은 한때 거대한 쇼핑몰이었고, 재앙 직전까지 수많은 식량과 물품이 쌓여 있던 곳이었다. 폐허가 된 지 오래지만,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가 진우를 움직이게 했다.

마트로 향하는 길은 지뢰밭과 같았다. 무너진 도로 위에는 널브러진 차량들이 흉물스럽게 엉켜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숨겨진 함정이나 변이체들의 흔적이 보였다. 진우는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의 눈은 익숙하게 땅에 박힌 발자국을 읽고, 부러진 나뭇가지의 방향을 파악했다. 공기 중의 미묘한 냄새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경고 신호였다.

마침내, 거대한 마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입구는 거대한 유리창 파편과 철골 잔해로 막혀 있었다. 진우는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철제 프레임이 삐걱이는 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깨뜨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마비된 듯 고요한 내부. 진우는 숨을 죽였다. 썩은 음식물과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심스럽게 계산대 너머로 몸을 숙여 이동했다. 텅 빈 진열대, 찢어진 포장지, 부서진 선반들. 예상대로였다.

그의 눈은 본능적으로 식료품 코너로 향했다. 무너진 기둥 옆,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통조림 코너. 캔 몇 개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곰팡이와 녹이 슬어 있었지만, 내용물이 온전하다면 먹을 수 있었다. 그의 심장이 기대감으로 미약하게 뛰었다.

그때였다.

저 안쪽 어두운 구석에서, 무언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사냥감이 뼈를 갉아먹는 소리. 진우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숨을 들이켜 폐에 가득 채운 채, 쇠꼬챙이를 꽉 쥐었다.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졌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섬광 같은 움직임.

검은 그림자가 기괴한 형태로 움직였다. 이내 어둠 속에서 거대한 아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부패한 살덩이로 뒤덮인, 덩치 큰 짐승.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고, 날카로운 발톱은 바닥을 긁어대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눈알은 이미 녹아내려 구멍만 남았고, 턱은 기형적으로 벌어져 있었다. 탐식귀(貪食鬼). 재앙 이후 나타난 가장 끔찍한 변이체 중 하나였다. 이 버러지들은 끝없이 먹어치웠다. 살아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심지어 폐허의 흙먼지조차도.

탐식귀는 진우를 발견했다. 이미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듯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였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쇠꼬챙이가 손에서 튀어 나갈 뻔했다. 탐식귀의 발톱이 그가 방금 서 있던 자리를 후려쳤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진우는 옆으로 굴러 떨어지며 반쯤 부서진 진열대 뒤로 몸을 숨겼다.

“크아악!”

탐식귀의 울부짖음이 마트 내부를 뒤흔들었다. 이 거대한 괴물과 정면으로 맞붙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놈은 굶주려 미쳐 있었다. 진우의 뇌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진우는 진열대 모서리를 잡고 몸을 틀어 방향을 바꿨다. 쇠꼬챙이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탐식귀가 진열대를 부수며 돌진했다. 진우는 그 틈을 노려 괴물의 옆구리를 향해 쇠꼬챙이를 찔러 넣었다. 철골이 썩어가는 살덩이에 파묻혔다. 질척이는 감각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꿰에엑!”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탐식귀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독한 피 냄새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진우는 쇠꼬챙이를 빼내며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그는 식료품 코너를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무너진 선반들이 그의 길을 막았지만, 진우는 주저 없이 그것들을 뛰어넘거나 부수며 나아갔다.

탐식귀는 뒤뚱거리면서도 끈질기게 추격해왔다. 그 끔찍한 비명이 등 뒤에서 쫓아왔다. 진우는 폐허가 된 마트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출구를 찾았다.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였다. 후문이었다.

다급하게 몸을 던지듯 후문으로 향했다. 문은 이미 뜯겨 나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우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잔해 위로 뛰어올랐다. 그의 발밑에서 돌멩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탐식귀의 거대한 그림자가 후문까지 쫓아왔지만, 그 육중한 몸으로 좁은 문을 통과할 수는 없었다. 놈은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다. 그 절규는 진우의 귓가에 맴돌았다.

안전한 곳까지 멀리 떨어진 후, 진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진 벽에 기대앉았다. 온몸이 쑤셨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는 살아남았다. 오늘도.

그때, 그의 손가락 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아까 탐식귀에게서 도망치다 바닥에 뒹굴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움켜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흙먼지로 뒤덮인 손바닥을 펼치자, 작고 낡은 과자 봉지 하나가 보였다. 찢어진 포장지 속, 아주 작은 조각이 남아 있었다. 검붉은 색의 초콜릿 부스러기.

진우는 그것을 주워 입에 넣었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잊었던 맛이 입안을 채웠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작은 조각이 그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이 지독하고 잔혹한 세상에서, 한 조각의 초콜릿이 그의 전부였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잿빛 구름이 가득한 세상.
살아남았다. 오늘도. 하지만 내일은… 알 수 없었다.
진우는 쇠꼬챙이를 다시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한 조각의 희망을 위해. 혹은 그저 단 한 번의 숨을 더 쉬기 위해.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림자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