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아르카나 마법 학원, 밤 11시.

수많은 학생이 삼삼오오 모여 불꽃을 흩뿌리던 교정은 이제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대강당의 웅장한 아치형 문은 굳게 닫혔고, 기숙사 창문들은 드문드문 희미한 마법광으로 빛날 뿐이었다. 하지만 나, 김진우에게 밤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했다.

“젠장, 또 틀렸잖아!”

나는 땀으로 축축한 이마를 쓸어 올리며 낮은 신음성을 뱉었다. 연금술 실습실 구석, 오래된 마법 서적들이 가득 쌓인 책상 위에는 실패한 포션의 잔해가 검붉은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3시간째 붙잡고 있는 ‘수면의 비약’ 마법은 대체 왜 이리도 까다로운지. 학년 수석이라는 타이틀은 어쩌면 저주에 가까운 것 같았다. 완벽을 추구할수록 나 자신을 갉아먹는 느낌이랄까.

“음… 마나 흐름이 불안정했나? 아니면 재료 배합 비율이 미묘하게 어긋났나?”

나는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고 레시피를 다시 한번 정독했다. 손톱만큼 작은 ‘별똥별 이끼’ 한 조각이 모자랐을까? 아니, 분명 정량대로 넣었는데. 완벽주의자에게 0.01g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법이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실습실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나는 심장이 발끝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에 자세를 움츠렸다. 설마, 밤늦게 순찰 도는 마법부 교수님…? 걸리면 연금술 실험실 청소 1개월 형인데!

“흐읍, 흐읍… 찾았다, 드디어!”

그러나 문에 기대어 서 있는 건 교수님이 아니었다. 헝클어진 흑발, 뺨에 덕지덕지 묻은 그을음, 잔뜩 부푼 실험복 소매…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맹렬한 눈빛의 소유자. 이 학교의 명물이자, 나의 영원한 라이벌, 이슬비였다.

“이슬비? 네가 왜 여기에… 또 뭘 터뜨린 거야?”

내 목소리에는 불쾌감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이슬비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설마?) 하는 짧은 착각은 곧 이슬비의 다음 말로 산산조각 났다.

“김진우! 너 여기 있었냐? 딱 맞춰 잘 왔다! 네 연금술 지식이 지금 아주 절실하게 필요해!”

그녀는 내 허락도 없이 내 실험실로 성큼성큼 들어와 내 책상 위의 실패작 포션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흥, 아직도 수면의 비약 같은 걸 만들고 있었냐? 그거 초급 마법이잖아.”
“닥쳐! 네가 터뜨린 것보단 훨씬 유용하고 안정적인 마법이야!”

나는 발끈했다. 그녀의 실험은 늘 대단원 속에서 시작해 대폭발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번엔 ‘공중 부양 마법’을 시도하다가 기숙사 지붕을 날려버리지 않았던가.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슬비는 다급하게 내 팔을 잡아끌었다. “지금 당장 나 좀 도와줘! 아주 중요한 마법 약품을 찾는 중인데, 그게 아마도…”

그녀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학교 지하에 있는 ‘제2 밀실’에 봉인되어 있을 것 같아!”

“뭐?!”

나는 기겁했다. 제2 밀실이라면…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학교 설립 초기부터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금지 구역이 아닌가. 이곳은 학원장조차 쉽게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위험천만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어떤 학생도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고, 그곳에 들어가려다 걸린 학생은 즉시 퇴학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이슬비, 너 미쳤어? 제2 밀실은 금지 구역이야! 퇴학당하고 싶어?!”
“시끄러워! 내 눈에는 그게 단순한 ‘금지 구역’이 아니라, 거대한 ‘지식의 보고’로 보인다고!”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로 벌써 실습실 문을 향해 나를 끌고 가고 있었다. “아, 그리고 내가 실험하다가 실수로 엄청나게 중요한 ‘마나 안정화 수정’을 그쪽 방향으로 날려버렸거든… 헤헤.”

그녀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실수로’라니. 저 녀석의 ‘실수’는 언제나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뭐? 마나 안정화 수정? 야, 그거 내가 다음 주 실험에 써야 할…”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갚을게! 그러니까 일단 나 좀 도와줘!”

나는 이슬비의 억센 힘에 이끌려 거의 질질 끌려가다시피 실습실을 나섰다. 복도를 가로지르고, 으슥한 계단을 내려가자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빛 한 점 없는 지하 복도는 마치 살아있는 미궁 같았다. 오래된 석벽에서는 축축한 이끼 냄새가 났고, 간혹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야, 정말 이쪽 맞아? 여기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나는 불안감에 주위를 둘러봤다. 학교 지하에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창고나 폐기된 마법 도구 보관실 등이 있긴 했지만, 이곳은 명백히 더 깊은 곳이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공간 같았다.

이슬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주머니에서 고대 문양이 새겨진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나침반의 바늘은 맹렬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쉿! 마나의 흐름이 저쪽에서 강하게 느껴져. 분명히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거야.”

우리는 조심스럽게 어둠 속을 헤쳐 나갔다. 복도의 끝에는 거대한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붉은 마법진이 문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그 위에 쓰인 고대 문자는 ‘접근 금지’라는 섬뜩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곳은 들어가면 안 됩니다!’라고 외치는 듯한 분위기였다.

“찾았다! 여기가 제2 밀실이야!” 이슬비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찾았다고 좋아할 게 아니잖아! 저 마법진을 봐! 풀 수도 없어!”

나는 철문 앞을 가로막는 붉은 마법진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봤다. 강력한 봉인 마법이었다. 보통의 마법으로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견고했다.

“흥, 그건 네 생각이고.”

이슬비는 특유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이상하게 생긴 쇠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끝부분에는 낡은 수정 조각이 박혀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지팡이를 마법진에 갖다 댔다.

“뭘 하려는 거야, 이슬비! 제정신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쇠 지팡이 끝의 수정에서 푸른 섬광이 터져 나왔다. 콰지직! 하는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마법진이 일그러지더니, 마치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버렸다. 강력했던 봉인 마법이 이렇게 허무하게 파괴되다니!

“자, 됐지? 김진우, 천재 마법사 이슬비의 위엄을 똑똑히 봐두라고!”

이슬비는 으스대며 삐걱거리는 철문을 힘껏 밀었다. 틈새로 묵직한 먼지 냄새와 함께 오랫동안 갇혀 있던 음습한 공기가 훅 끼쳐 왔다. 문 안쪽은 마치 무덤처럼 어둡고 고요했다.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 조심해!”

나는 불안한 마음에 손에서 작은 ‘발광 마법’을 터뜨렸다. 동그란 빛구슬이 허공에 떠올라 주변을 밝혔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넓은 원형의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은 석상이 서 있었는데, 그 위에는 먼지가 잔뜩 쌓인 기묘한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항아리는 검은색 도자기 재질로, 표면에 복잡한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항아리에서 희미하게 보랏빛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게… 뭐야?” 나는 저절로 걸음을 멈췄다. 으스스한 기운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명 뭔가 특별한 거야! 저 마나의 흐름을 느껴봐!” 이슬비는 항아리에 홀린 듯 다가섰다.

나는 그녀의 무모함에 기가 막혔다. 대체 저 항아리가 그녀가 잃어버린 ‘마나 안정화 수정’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슬비, 함부로 건드리지 마! 위험할지도 몰라!”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슬비는 이미 항아리 옆에 놓인 작은 양피지 조각을 주워 들고 있었다. 양피지에는 역시 고대 문자가 쓰여 있었다.

“음… ‘진실의 속삭임 항아리’… ‘오래된 마음을 담아’… ‘발동 시,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감정을…’ 어?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양피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그녀에게 다가가 양피지를 빼앗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삐끗!

내 발이 굴러다니던 돌멩이에 걸려 균형을 잃었다. 휘청거리는 몸이 이슬비에게 부딪혔고, 이슬비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양피지 조각과 함께 항아리를 덮고 있던 낡은 천을 걷어냈다. 콰당! 천이 바닥에 떨어지고, 항아리는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살짝 기울어졌다.

그리고 항아리의 입구에서, 응축되어 있던 보랏빛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우리 주변을 감쌌다.

“으아악! 김진우, 네가 또! 대체 뭘 한 거야!” 이슬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뭘! 네가 함부로 건드리려고 하니까 그런 거잖아!”

우리는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격렬하게 싸웠다. 보랏빛 기운은 점차 짙어지며 우리를 옥죄는 듯했다. 몸 안에서 이상한 기운이 솟구치는 듯한 느낌에 나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진짜 꼴도 보기 싫네, 저 성가신 바보…”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이슬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 바보?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나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분명 속으로 생각한 말이었는데, 내 입 밖으로 그대로 튀어나온 것이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그냥!”

“네가 짜증 난다고! 맨날 잘난 척하는 주제에 허당인 게 웃기다고!”

이번엔 이슬비의 입에서 내가 평소에 그녀에게 품고 있던 생각들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어? 내가 왜 이딴 말을…”

“젠장! 이 항아리… ‘진실의 속삭임 항아리’라고 했지? 설마…”

내 머릿속으로 섬뜩한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감정을… 발동 시…

나는 이슬비를 노려봤고, 그녀 역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우리의 입에서는 마치 통제 불능의 주술처럼, 서로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가장 부끄러운 생각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저 바보 같은 얼굴… 으아아, 근데 가끔은 좀 귀엽다고 생각할 때도 있단 말이야!” (내 속마음)
“흥, 김진우 주제에… 밤늦게까지 혼자 남아서 고생하는 거 보면 좀… 짠하다고 해야 하나… 근데 잘생기긴 했어!” (이슬비의 속마음)

보랏빛 기운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리의 얼굴은 삶아놓은 문어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끔찍한 금기. 그건 마법의 재앙도, 고대의 괴물도 아니었다.
바로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엘리트 마법 학교 지하에 숨겨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이보다 더 끔찍한 금기는 없었다.
그리고 이 금기는, 이제 막 발동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