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게 드리워진 땅, 크로노스 제국의 그림자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곡창 지대와 풍요로운 광산들마저 제국의 탐욕스러운 손아귀 아래 신음했다. 백성들은 뼈 빠지게 일해도 굶주림을 면치 못했고, 작은 불평조차 황제 폐하를 모독하는 죄가 되어 끌려가는 시대였다. 수도의 화려한 궁전은 매일 밤 불꽃놀이로 하늘을 수놓았지만, 그 빛은 백성들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 뿐이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밤, 해가 진 지 오래된 시골 마을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새벽은 마른기침을 내뱉는 어린 동생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려주었다. 벽 틈새로 스며드는 칼바람은 가난한 오두막의 온기를 모조리 앗아가는 듯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한 새벽의 배는 텅 비어 있었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동생의 병색이었다.
“누나… 추워…”
“괜찮아, 조금만 참자. 아침이 오면… 좋아질 거야.”
새벽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희망이 없는 말이었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은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체념이 아닌,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갈망하는 빛이었다.
그날 밤, 마을에는 제국군이 들이닥쳤다. 병사들은 겨울 양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두막을 샅샅이 뒤졌다. 세금 독촉이었다. 이미 낼 것도 없는 마을 사람들은 저항하다 매질을 당했고, 식량 창고의 얼마 안 되는 곡식마저 모조리 빼앗겼다. 새벽은 동생을 품에 안고 숨죽여 울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는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이다.
절망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 속에서 새벽은 오두막 뒤편의 낡은 우물가로 향했다. 그곳은 마을 사람들이 더러운 물이라며 기피하던 곳이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지만, 새벽의 마음은 한없이 어두웠다. 그때였다. 우물 깊은 곳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본 것은.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새벽은 조심스럽게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낡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자, 물과 함께 손바닥만 한 돌멩이가 따라 올라왔다. 그 돌멩이는 마치 밤하늘을 조각내어 담아놓은 듯,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별들이 박혀 있는 푸른색 결정이었다. 새벽의 손에 닿자, 결정은 따뜻한 온기를 내뿜으며 맥동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빛에 놀라 새벽이 손에서 놓치려던 순간, 결정은 더욱 강렬하게 빛을 발했다. 빛은 새벽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마치 수백 개의 별들이 그녀의 혈관 속에서 깨어나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이것은… 대체…”
결정을 든 채 새벽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우물가에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이, 주변의 어둠을 집어삼키는 듯한 찬란한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낡은 옷은 순식간에 별빛이 수놓인 드레스로 변했고, 손에는 은은한 광채를 뿜는 지팡이가 쥐어졌으며, 머리 위에는 작은 별이 박힌 티아라가 떠올랐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곳에는 오직 확고한 의지와 별처럼 빛나는 희망만이 가득했다. 새벽은 깨달았다. 이 힘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그녀의 변신은 한밤중의 마을을 뒤흔든 제국군 기병대에게도 감지되었다. 그들은 징집과 약탈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저것은… 무엇이냐!”
병사들이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질렀다. 새벽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를 꽉 잡았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힘이었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그녀는 지팡이를 휘둘러 빛의 방패를 만들어냈고, 병사들이 쏘아대는 화살은 모조리 튕겨 나갔다. 이어서 그녀가 땅을 강하게 내리찍자, 대지에서 솟아오른 별빛이 병사들을 감싸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무릎을 꿇고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굶주림과 공포에 찌든 얼굴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눈에는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더 이상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새벽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밤하늘을 울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 밤, 마을에 내려앉았던 절망은 새벽의 별빛에 의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
새벽의 이야기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제국에 대항하는 작은 불씨를 품고 있던 이들은 새벽의 등장을 기적처럼 여겼다. ‘별무리’라 불리던 저항 조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비밀 아지트는 폐광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고, 그곳에서 새벽은 진과 리아를 만났다.
진은 거친 외모와는 달리 냉철한 판단력과 뜨거운 심장을 가진 별무리의 리더였다. 그는 새벽을 처음 보자마자 경계심을 드러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자는 언제나 위험하지. 특히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더더욱.” 진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네가 정말 백성을 위한다면, 왜 이제야 나타났지? 그 힘을 가지고 대체 무엇을 할 생각이지?”
리아는 달랐다. 그녀는 새벽의 이야기에 가장 먼저 귀 기울여준 사람이었다. 리아는 맑은 눈으로 새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 오빠, 새벽 언니는 우리와 같아.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큰 슬픔을 겪었을지도 몰라.”
리아의 말에 진의 굳게 닫혔던 마음이 아주 조금 열렸다.
새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동생의 병, 마을의 비참함, 그리고 우물에서 발견한 별의 조각.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별무리의 일원이 되었고, 그녀의 힘은 곧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새벽은 전투 기술은 부족했지만, 그녀의 마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는 병사들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부상당한 이들을 치유했으며, 때로는 강력한 별빛으로 제국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별무리 저항군의 규모는 날마다 커져갔다. 새벽의 존재는 사람들의 잠들어 있던 용기를 일깨웠다. 제국군에 대한 크고 작은 게릴라전에서 승리하면서, 별무리 저항군은 단순한 도적이 아닌, 진정한 저항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제국의 백성들은 새벽을 ‘새벽별의 수호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제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황제는 격노했고, 최고의 정예 부대와 ‘철혈’이라 불리는 총사령관 카이저를 파견했다. 카이저는 자비 없는 학살자로 악명 높았다. 그의 손에 스러져간 마을과 저항군은 헤아릴 수 없었다.
“작은 반란군의 우두머리치고는 제법 눈에 띄는군.” 카이저는 황궁에서 받은 새벽의 초상화를 찢어발기며 비웃었다. “허나, 빛나는 것은 언제나 어둠에 삼켜지기 마련이다. 이 제국의 힘을 감히 누가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
별무리 저항군은 제국의 주요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대규모 작전을 계획했다. 그것은 제국군과의 정면 대결이나 다름없었다. 폐광 아지트에서 진은 지도를 펼쳐 놓고 작전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제국군의 주력 보급선은 북쪽 평원과 연결된 이 협곡을 지나간다. 카이저가 직접 호위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번 작전은 성공한다면 제국군 전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우리 모두의 종말이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때 새벽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진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네 힘은 귀중하다. 최대한 아껴야 해. 우리가 시간을 버는 동안 후방에서 지원을…”
“아뇨, 진 오빠.” 리아가 진의 말을 끊었다. “언니의 힘은 사람들의 희망이에요. 언니가 가장 앞에서 싸워야, 모두가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예요.”
새벽은 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은 결연했다.
“저의 힘은 모두를 위해 존재합니다. 더 이상 숨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별무리 동료들과 함께, 우리 모두의 새벽을 만들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모두의 눈에 다시금 불꽃이 피어올랐다.
***
결전의 날, 북쪽 협곡은 새벽의 안개에 잠겨 있었다. 별무리 저항군은 비장한 표정으로 각자의 위치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비록 낡은 무기와 부족한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심장에는 불타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있었다.
이윽고 제국군의 선두 부대가 협곡으로 진입했다. 수많은 병사들과 짐수레, 그리고 선두에 선 카이저의 거대한 전투마가 위압감을 뿜어냈다. 카이저는 붉은색 깃털 장식이 달린 투구를 쓰고 있었고, 그의 검집에는 용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이다! 공격!” 진의 우렁찬 목소리가 협곡에 울려 퍼졌다.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고, 매복해 있던 별무리 저항군이 튀어나와 제국군과 뒤섞였다. 숫적으로 열세였지만, 별무리 저항군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닌, 정의를 위한 투지가 불타고 있었다.
카이저는 비웃음을 흘렸다.
“어리석은 것들! 이 거대한 제국의 군대를 감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모두 죽여라!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그의 명령에 제국군은 더욱 맹렬히 공격했고, 별무리 저항군은 하나둘 쓰러져갔다. 그때, 협곡의 가장 높은 바위 위에서 찬란한 빛이 솟아올랐다.
“새벽별의 수호자!”
새벽이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든 채 우뚝 서 있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별빛으로 반짝였고,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한 별무리 문양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카이저!” 새벽의 목소리는 협곡 전체를 울릴 정도로 맑고 강렬했다. “당신들이 짓밟은 백성들의 고통을 이제 되돌려받을 시간이다!”
카이저는 피식 웃었다.
“흥, 겨우 어린 여자아이가 이런 소란을 피우고 있었군. 네까짓 것이 감히 이 카이저를 상대할 수 있을 줄 아느냐!”
그는 말을 채찍질하며 새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은 살기를 품고 있었다.
새벽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팡이를 휘둘러 별빛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별빛은 카이저의 검과 부딪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새벽은 공격을 피하며 카이저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빛의 족쇄를 날렸다. 카이저는 순식간에 묶였지만, 그의 괴력은 빛의 족쇄마저 부서뜨릴 기세였다.
“하찮은 마법 따위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카이저가 포효했다.
새벽은 온 힘을 다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밤하늘의 모든 별들이 그녀의 지팡이 끝에 모여드는 듯한 환상이 펼쳐졌다. 거대한 별빛 구슬이 생성되었고, 새벽은 그것을 카이저에게 던졌다.
별빛 구슬은 카이저의 갑옷에 명중했고,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폭발했다. 카이저는 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의 갑옷은 부서졌고, 얼굴에는 깊은 상처가 났다.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신음했다.
“이럴… 수가…!”
카이저의 패배는 제국군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사기를 잃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진과 리아는 남은 저항군을 이끌고 맹렬히 반격했다.
제국군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고, 협곡에는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새벽은 바위에 기대어 숨을 헐떡였다. 온몸의 마력이 고갈된 듯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있었다. 리아가 달려와 새벽을 부축했고, 진은 깊은 감격에 찬 눈빛으로 새벽을 바라보았다.
“해냈어, 새벽! 우리가 해냈어!” 리아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진은 새벽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새벽.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기지 못했을 거야.”
새벽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진 오빠. 제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이겼을 거예요. 사람들의 마음에 불씨가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저 그 불씨를 조금 더 밝혀준 것뿐이에요.”
새벽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알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거대한 제국은 아직 건재했고, 갈 길은 멀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새벽별의 수호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밝힌 희망의 별빛은, 이 밤의 끝에서 반드시 새로운 새벽을 불러올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