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대리석 복도를 가득 채운 정적은 언제나 심장을 옥죄는 듯했다. 에스텔라 마법 학원, 이름만 들어도 아카데미 최상층 엘리트들이 으스댈 만한 이 곳은, 겉으로 보기엔 고고한 위엄과 찬란한 마법의 빛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이 그림자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시아, 또 수업 땡땡이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느긋한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류진이었다. 늘 내 행동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녀석의 손에는 고서 몇 권이 들려 있었고, 그 고서들 사이에서 은은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역시 수석답다.
“땡땡이라니, 예언학 실습실로 가는 길이었거든? 너야말로 이 한가한 시간에 도서관에서 뭘 하는 거야?”
나는 애써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예언학 실습실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 이 시간은 마법 연금술 기본 수업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침, 연금술 증류기 폭발 사고로 또다시 벌점을 받을 게 분명했기에, 차라리 아예 수업에 나타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물론, 벌점이 더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류진은 내 말을 비웃듯 어깨를 으쓱했다. “예언학? 지금 이 시간에? 오, 그럼 네가 지금 학원 지하 구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는 예언이라도 받았나 보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녀석은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눈을 피했다. “지하 구획이라니? 말도 안 돼. 난 그런 곳은 관심도 없거든.”
“흐음, 그래? 그런데 네 지팡이가 왜 그렇게 지하실 쪽으로만 향하고 있을까? 자성 마법이라도 걸렸나?”
류진은 슬며시 내 손에 들린 지팡이 끝을 가리켰다. 은빛으로 빛나는 내 지팡이 끝은, 어느새 복도 끝의 낡은 철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문은 평소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저 학원 보조 창고쯤으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며칠 전부터 알 수 없는 이끌림에 그 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마치 문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혀서.
“그냥… 손이 미끄러진 거야.”
나는 어색하게 지팡이를 내렸다. 류진은 여전히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경고하듯 말했다.
“시아, 그 문은 학원에서 공식적으로 출입을 금지한 곳이야. 십여 년 전, 마력 폭주 사고 이후로 봉인된 구역이라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곳에 들어갔던 선배들이 모두 미쳐서 돌아왔다던데?”
“미쳐서 돌아와? 농담도 참.”
나는 애써 웃었지만,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 소문은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문이, 낡은 철문 너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잠재우기는커녕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봉인된 구역, 마력 폭주 사고, 미쳐버린 선배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맞춰지고 있었다.
류진은 더 이상 나를 말릴 생각은 없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른 복도로 사라졌다. “네 목숨은 네가 알아서 지켜라, 호기심 많은 바보야!” 그의 마지막 외침이 텅 빈 복도를 울렸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낡은 철문으로 향했다. 차가운 금속 손잡이에 손을 얹자, 마치 심장 박동처럼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녹슨 빗장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짙은 어둠이 나를 맞이했다. 코끝을 스치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성 비린내가 섞여 들어왔다.
지팡이 끝에서 작은 발광 마법을 일으켜 어둠을 밝혔다. 계단이었다.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낡은 돌계단. 나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돌계단은 어느 순간 매끈한 금속 통로로 바뀌어 있었다. 벽면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기호들 사이에서는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학원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마법의 고풍스러움이 아닌, 차갑고 인공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깊은 바닷속 연구 시설에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게… 대체 뭐지?”
나는 벽에 손을 댔다. 금속은 차갑고 매끄러웠다. 기호들은 일반적인 마법 문자와는 달랐다. 언뜻 보기에는 고대 마법 문양 같기도 했지만, 자세히 보면 기하학적인 패턴과 미세한 회로 같은 형태가 섞여 있었다. SF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통로를 따라 더 깊이 들어가자,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들과 거대한 환기구들이 나타났다. 천장에서는 주기적으로 낮은 기계음이 울려 퍼졌고, 바닥에서는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복도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이중 잠금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문은 낡아 보였지만, 그 위에는 수많은 마법 봉인진과 함께 알 수 없는 첨단 장치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문 너머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류진이 말했던 마력 폭주 사고와, 미쳐버린 선배들의 소문이 섬뜩하게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지팡이 끝은 다시금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문 너머에 무언가 강력한 마력원이, 혹은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때, 문틈 사이로 아주 작은 틈새가 보였다. 마법으로 강화된 문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세한 균열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 틈새로 눈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돔형 공간이었다. 수많은 크리스탈 관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 속에는…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잠들어 있는 듯했지만, 그들의 몸은 알 수 없는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피부 곳곳에는 미세한 금속성 회로가 박혀 있었고, 등 뒤에서는 마치 촉수처럼 길게 뻗은 은빛 케이블들이 크리스탈 관의 바닥과 연결되어 있었다. 얼굴은 인간이었지만, 눈은 감겨 있었고, 텅 빈 무표정은 마치 살아있는 인형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심장 부근에서, 주기적으로 강력한 마력 파동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내가 여태껏 느껴본 어떤 마력보다도 강렬하고, 순수했으며, 동시에 오싹할 정도로 불길했다. 마치 생명을 부여받은 기계와 같았다. 혹은 기계가 된 생명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건 대체… 무엇이지? 학원 지하에 이런 것이 숨겨져 있었다고?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호기심 많은 작은 영혼.”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누군가에게 강하게 붙잡혀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틈새로 보이던 끔찍한 광경은, 마치 환상처럼 멀어져 갔다. 그리고 내 귓가에는, 크리스탈 관 속에서 잠들어 있던 인형 같은 존재들의 심장 박동 소리와 같은, 섬뜩한 기계음만이 맴돌았다.
나는 직감했다. 나는 이제, 학원의 가장 끔찍하고 거대한 금기를 목격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금기는, 나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