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잊혀진 문

고요한 밤, 서울의 북쪽 외곽에 자리한 낡은 빌라의 옥탑방. 이재준은 책상 위를 가득 메운 고문서들과 흙먼지 쌓인 유물 파편들 사이에서 홀로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돋보기가 들려 있었고, 시선은 한 폭의 낡은 천 조각에 박혀 있었다. 희미하게 그려진 지도는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와 기하학적 문양으로 가득했지만, 재준의 눈에는 그 모든 혼돈 속에서 어렴풋한 질서와 목적이 보였다.

“이게… 정말이라면.”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재준은 ‘잊혀진 왕국’의 존재를 주장하며 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다. 주류 사학자들은 그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망상으로 치부했고, 선배 교수들은 비웃음 섞인 동정심으로 그를 바라봤다. 명문대 고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재준은 빛나는 미래 대신, 고립된 연구와 고독한 투쟁을 택했다. 이 천 조각이야말로 그 모든 편견을 부수고 자신의 신념을 증명할 유일한 열쇠였다.

며칠 전, 재준은 익명의 소포를 받았다. 낡은 상자 안에는 이 천 조각과 함께 손바닥만 한 흑요석이 들어 있었다. 흑요석에는 마치 수억 년 전의 별빛을 담아낸 듯 미묘하게 빛나는 푸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천 조각의 특정 지점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마치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퍼즐 조각처럼.

재준은 흑요석을 천 조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흑요석에서 뿜어져 나오던 희미한 푸른빛이 천 조각의 문양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도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변화했다. 원래는 알아보기 힘들었던 선들이 선명해지고, 엉켜있던 문자들이 마치 퍼즐처럼 맞춰지며 하나의 단어를 이루었다.

“북동… 산맥… 용의 심장.”

재준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용의 심장은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전설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산맥이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용의 석상이 잠들어 있으며, 그 심장부에 ‘시간을 잊은 문’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다. 아무도 믿지 않는, 그저 아이들을 위한 옛날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되던 전설.

재준은 밤을 새워 지도를 해독하고, 기존의 지형도를 대조하며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최소한의 장비만을 챙겨 옥탑방을 나섰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 대신, 뜨거운 열정과 확신이 가득했다.

버스, 기차, 그리고 다시 허름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산골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외지인의 등장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도를 따라 숲으로 향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난 희미한 산길은 곧 끊겼다. 발아래에는 낙엽과 젖은 흙이 뒤섞여 미끄러웠고, 가지들은 그의 얼굴을 스치며 할퀴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숲은 더욱 깊고 으스스한 기운을 내뿜었다. 재준은 등불을 꺼내 들고 길을 재촉했다. 지도의 최종 지점은 오래된 폭포 뒤편에 있는 동굴이었다.

밤새도록 걷고 또 걸어, 드디어 폭포 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곳에 다다랐을 때, 재준은 비틀거렸다.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절벽 뒤로 희미한 어둠이 보였다. 전설 속의 ‘용의 심장’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지치고 땀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그는 폭포 뒤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차가운 물보라를 헤치고 들어간 동굴은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천장에서는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고, 바닥은 이끼와 젖은 흙으로 미끄러웠다. 재준은 등불을 높이 들었다. 동굴은 깊고 어두웠지만, 공기는 의외로 눅눅하지 않고 맑았다.

몇 시간을 더 걸었을까. 동굴은 점점 좁아지더니, 마침내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듯했다. 하지만 재준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천 조각 지도를 다시 펼쳐들었다. 지도는 이 지점에서 ‘벽을 부숴라’고 암시하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바위에 새겨진 미묘한 문양, 다른 바위들과는 다른 옅은 색깔.

“여기군.”

재준은 배낭에서 휴대용 착암기를 꺼냈다. 쉬지 않고 바위를 뚫기 시작했다. 굉음이 동굴을 뒤흔들고, 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몇 시간의 사투 끝에, 마침내 바위 벽이 무너지며 새로운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 너머는 동굴과는 확연히 다른 공간이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석벽과 완벽하게 균형 잡힌 아치형 천장이 등불 빛에 희미하게 드러났다. 공기 중에는 먼지 대신, 어딘가 모르게 신성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었다.

“이럴 수가…”

재준은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수천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고대 문명의 흔적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학계가 비웃던 ‘잊혀진 왕국’의 실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내디뎠다. 바닥에는 정교한 문양들이 새겨진 돌들이 깔려 있었고, 벽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했다.

그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의 끝에는 거대한 원형 홀이 나타났다. 홀의 중앙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돌기둥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단의 상단에는 익명의 소포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흑요석이 박혀 있었다. 다만, 이곳의 흑요석은 재준이 가진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으며,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다.

재준은 홀린 듯 제단으로 다가갔다. 제단 주변에는 고대 언어로 새겨진 글자들이 있었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고대 언어 연구에 매달려 왔기에, 희미하게나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 흐름… 뒤틀림… 문…”

문득, 그의 손에 쥐여 있던 작은 흑요석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손안에서 맥박이 뛰는 것처럼 쿵쿵거렸다. 동시에 제단에 박힌 거대한 흑요석도 더욱 강렬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홀 전체를 뒤덮으며 신비로운 기운을 자아냈다.

재준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손안의 작은 흑요석을 제단 중앙의 거대한 흑요석이 박힌 부분에 가져다 댔다.

‘틱!’

마치 자석처럼 두 흑요석이 완벽하게 결합하는 순간, 홀 전체가 굉음과 함께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닥의 문양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재준의 발밑에서부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으악!”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분해되었다가 다시 재조립되는 듯한 고통과 함께 엄청난 압력이 그를 짓눌렀다. 시야는 파란색과 검은색의 혼란스러운 빛으로 뒤섞였고, 귀에는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모든 존재의 근원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몇 초였을 수도, 몇 년이었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추고, 재준은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신음하며 눈을 떴다.

홀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푸른빛은 사라졌고, 공기는 더욱 맑고 상쾌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홀의 석벽 곳곳에 켜져 있는 희미한 빛이었다. 마치 작은 별들이 박힌 것처럼 빛나는 광물들이 석벽을 따라 박혀 있었다. 아까는 분명히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재준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시선이 제단 주변의 벽면을 향했다. 아까는 알아볼 수 없었던 벽화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벽화들 속에는, 재준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복장과 생김새를 한 사람들이 거대한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도시의 건축 양식은 그가 알고 있는 어떤 문명과도 달랐다.

그때였다. 홀 저편, 어두컴컴한 복도 끝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이어서, 낯선 언어로 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동굴 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였다.

재준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이곳은 분명히 폐쇄된 고대 유적이었다. 수천 년간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은 곳. 그런데 대화 소리라니?

그는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여 복도 끝으로 다가갔다. 빛은 더욱 선명해졌고, 말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고대의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재준이 가진 등불과는 확연히 다른, 빛을 내는 도구가 들려 있었다.

재준은 벽 뒤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이곳은… 어디지? 그리고 저들은… 누구지?

그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명확하게 귓가에 박혔다. 그것은 재준이 알고 있는 어떤 언어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뇌는 그 뜻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도 ‘시간의 문’은 잠잠하군. 잃어버린 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

재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잃어버린 자? 시간의 문?
그는 자신이 방금 겪었던 현상, 그리고 이 모든 미지의 상황을 한꺼번에 깨달았다.

자신은, 단순히 잊혀진 유적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시간을 넘어, 존재해서는 안 될 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었다.
**과거**였다. 알 수 없는 시대의 **과거**였다.

그의 심장은 두려움과 함께 새로운 모험에 대한 전율로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