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둠은 잿빛으로 물든 대지를 영원히 삼키려 들었다. 잿골이라 불리는 이 고랑 깊은 땅은, 제국 아크론의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자, 죽음의 숨결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었다. 매캐한 재와 먼지 냄새는 폐부 깊숙이 박혀들어,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일상이었다. 해는 언제나 옅은 그림자처럼 하늘에 걸려 있을 뿐,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법이 없었다. 마치 제국의 차가운 눈빛처럼.

윤은 낡은 두건을 더욱 깊이 눌러썼다. 등에는 어설프게 꿰맨 자루가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는 오늘 하루 간신히 주워 모은 썩은 나무 조각들과 찌그러진 쇳조각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이것들이 오늘 그의 가족이 겨우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잿골의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존 방식을 터득했다. 버려진 것들 속에서 삶의 조각을 찾는 것.

“젠장, 오늘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어.”

마른 기침이 목구멍을 긁었다. 윤의 눈은 언제나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건물 잔해들, 흙먼지가 쌓인 골목길, 그리고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 늘어선 희망 없는 사람들의 그림자. 그 그림자들 위로 가끔씩, 너무도 이질적인 강철의 번뜩임이 스쳐 지나갔다. 제국 근위병들의 행렬이었다.

그들은 완벽하게 정돈된 대열로 잿골의 중앙을 가로질렀다. 검은색 망토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흉갑은 차가운 금속광을 뿜었다. 그들의 발소리는 잿골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가는 동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치마폭에 숨었고, 노인들은 닳아빠진 문간에 기대어 땅만 바라봤다. 그들의 등 뒤에는 언제나 거대한, 낯선 마차 한 대가 따라붙었다. 창문은 두꺼운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 안에서 무엇이 움직이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스산한 한기가 주위를 감쌌고, 잿골의 주민들은 이유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오늘은… 수확의 날인가?”

누군가 작게 읊조렸다. 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수확’. 제국이 잿골 주민들에게서 거두어 가는 가장 잔혹하고 기이한 세금. 돈도, 곡식도 아니었다. 가장 건강하고, 가장 생기 넘치는 ‘젊음’. 그것이 제국이 요구하는 공물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열 살에서 스무 살 사이의 아이들을 데려갔다.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한 번 끌려간 아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국 근위병들이 멈춰 선 곳은 잿골에서 가장 빈곤한 구역 중 하나인 ‘숨막힘 골목’이었다. 그곳의 오두막들은 서로를 짓누르듯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조차 탁한 공기에 빛을 잃었다. 근위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한 오두막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손에는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열두 번째 가호 오두막. 서른일곱 번째 기록. 아린.”

굳게 닫혔던 오두막 문이 덜컥 열리고, 깡마른 여인이 불안한 눈빛으로 밖을 내다봤다. 그녀의 뒤에는 이제 막 열 살이 되었을까 싶은 어린 소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린. 윤은 그 소녀를 알았다. 늘 병약한 동생을 위해 빵 부스러기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애쓰던 아이였다.

여인의 얼굴은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아니… 안 됩니다! 아린은 아직 어립니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어요!”

대장은 차가운 눈으로 여인을 노려봤다. “제국의 기록은 오류가 없다. 열 살. 제국의 공물 대상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근위병 둘이 오두막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거대한 강철 팔 앞에서 그녀는 속절없이 밀려났다. 어린 아린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엄마와 병사들을 번갈아 보다가, 곧 자신이 붙잡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작은 손으로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애썼다.

“엄마! 엄마!”

그녀의 울음소리가 잿골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굳은 표정으로, 혹은 절망에 잠긴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심장은 마치 잿더미 속에서 튀어나온 돌멩이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린은 결국 근위병의 품에 안겨 마차 쪽으로 끌려갔다. 마차가 가까워질수록 소녀의 울음소리는 더욱 격렬해졌고, 동시에 마차 주변의 공기가 기이할 정도로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윤은 느꼈다. 검은 천으로 가려진 마차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윤은 찰나의 순간, 무언가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붉은, 너무나도 붉은 빛이었다. 마치 심장이 뿜어내는 피와 같은 색깔.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아린이 마차 안으로 던져지자마자, 문은 다시 닫혔다. 울음소리도, 비명도, 일말의 저항도 없이. 마치 소녀가 존재한 적 없었다는 듯이.

마차는 다시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근위병들이 차가운 발걸음으로 행진했다. 그들의 침묵은 잿골의 주민들에게 끔찍한 무게로 다가왔다. 윤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형의 친구도, 그의 이웃집 소녀도.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 그의 여동생도. 그 생각에 윤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차가 사라진 후에도, 잿골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절망과 체념,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공포로 가득 찬 침묵이었다. 그때, 윤의 귓가에 늙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잿골의 가장 오래된 주민 중 한 명인 ‘검은 실 할멈’이었다. 할멈은 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 중얼거림이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또 저주받은 이빨이 하나 더 뽑혀 나갔구나… 제국은 저주받은 신을 숭배하며 영원히 죽지 않는 힘을 얻었다고 떠들어대지만… 그 힘은 저 아이들의 피와 살로 빚어진 것인 것을… 쯧, 썩어 문드러질 제국.”

윤은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아이들이… 피와 살로 빚어진 힘이라뇨?”

검은 실 할멈은 쭈글쭈글한 얼굴을 들어 윤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어둠골의 밤처럼 깊고 오래된 비밀을 담고 있었다. “모르는 게 약인 것을… 하지만 네 눈에는 이미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니, 이제 곧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

할멈은 윤의 팔목을 붙잡았다. 앙상한 손아귀에서 생각보다 강한 힘이 느껴졌다. “제국의 심장부에는 거대한 심장이 박혀 있단다. 검은 돌로 만들어진 심장. 그 심장은 피를 마셔야만 뛰고, 생명을 빨아들여야만 제국에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준다고 하지. 매년 수확해 가는 아이들은… 그 심장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한 제물인 게다.”

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물… 이라고요? 설마…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는 말입니까?”

“제물이라기엔 너무 가벼운 단어지. 그들은 그저 제국의 존재를 위한 소모품일 뿐. 생명력을 뿌리째 뽑아내어, 제국의 위대한 건축물들을 지탱하고, 제국 근위병들의 강철 같은 몸을 유지시키고, 황제의 늙지 않는 젊음을 보존하는 데 쓰이는 거다.” 할멈은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어둠 속에 숨겨진 진실은 더 끔찍하지. 가끔 그 심장이 너무 많은 것을 삼키면… 제물들의 그림자가 형체를 얻어 잿골을 떠돈다는 소문도 있다. 이빨 빠진 아이의 울음소리가 밤마다 들린다고… 밤마다.”

할멈의 말을 듣자 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잿골에 떠도는 기이한 소문들. 밤마다 들려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 사라지는 가축들, 그리고 가끔씩 발견되는 기괴하게 뒤틀린 시체들. 그는 늘 그것들이 제국의 잔혹한 통치에 시달린 사람들의 정신병적인 환상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만약 할머니의 말이 진실이라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요.” 윤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믿든 믿지 않든,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 저 마차에 실려 가는 아이들은… 다시는 사람의 형체로 돌아오지 못할 게다. 그들의 생명은 검은 심장의 양분이 되고, 그들의 영혼은 제국의 그림자가 되어 떠돌지. 우리가 이 고통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잿골은 영원히 제국의 제물 창고가 될 뿐이다.”

할멈의 눈빛은 한없이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윤의 팔을 놓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희미한 햇빛 아래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윤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할멈의 끔찍한 이야기와 어린 아린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는 지금까지 제국의 횡포에 그저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강자에게 복종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하지만 이제 그는 알았다. 그들의 생존은 제국의 잔혹한 의식을 위한 연료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의 심장 속에서, 차갑게 식었던 무언가가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노였고, 절망이었으며, 동시에 이 모든 것을 뒤엎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었다. 잿골의 어둠 속에서, 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잿더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가운 흙바닥에 주먹을 내리쳤다. 그의 시야에 잿빛 하늘이 들어왔다. 그 하늘 너머 어딘가, 제국의 화려한 수도가 있을 터였다. 그곳에 자리한 검은 심장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의 생명을 빨아들이고 있을 터였다.

‘이대로는 안 돼.’

윤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반역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은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이대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죽어가는 것보다는, 불꽃이라도 되어 타오르다 재가 되는 길을 택하리라. 잿골의 주민들은 눈먼 채로 제국에 희생되고 있었다. 그들을 일깨워야 했다. 아무도 밟지 않으려 하는 어둠의 진실 속에서, 그는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끈을 발견하려 했다. 그것이 제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눈을 뜬 자들의 반란.

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절망의 그림자가 없었다. 대신, 차갑고 단단한 결의가 어린 낯선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낡은 자루를 다시 고쳐 메고, 어둠이 짙어지는 잿골의 골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윤은 없었다. 그는 이제 제국의 어둠에 맞설 작은 불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씨는 언젠가 거대한 불꽃이 되어, 썩어 문드러진 제국을 집어삼킬 수도 있을 터였다.

**제1장. 잿골의 수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