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폐허 속 불꽃
강철과 먼지가 뒤섞인 회색빛 도시는 마치 거대한 짐승의 뼈대처럼 하늘을 찔렀다. 스모그에 가려진 태양은 겨우 그 존재를 알릴 뿐, 지상에는 영원한 황혼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폐기물 더미를 헤치며 걷는 것에 익숙했다. 이곳, 제7 폐기구역은 한때 번화했던 도심의 잔해였지만, 이제는 낡은 금속 조각과 죽은 에너지 셀을 찾아 헤매는 스크래퍼들의 사냥터였다.
내 이름은 강찬. 스물두 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보다 눈썰미 좋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내 손에 들린 스캐너는 삑삑거리는 불협화음을 뿜어내며 미약한 에너지 반응을 가리켰다. 다른 스크래퍼들이 놓친 것, 그게 내가 찾는 보물이었다.
“젠장, 오늘은 영 시원찮네.”
나는 낡은 장갑으로 얼굴에 묻은 기름때를 닦아냈다. 벌써 몇 시간째 헤매고 있었지만, 쓸만한 건 고철 덩어리뿐이었다. 그 흔한 코어 셀 하나 찾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오늘 저녁 식탁엔 고형 단백질 큐브조차 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때였다. 스캐너가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보통의 에너지 반응과는 다른, 훨씬 강렬하고 불규칙한 파장. 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이 구역에서 감지될 수 없는 종류의 반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스캐너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거대한 건물 잔해 사이, 무너진 고가도로의 기둥 아래에 숨겨진 틈새. 그곳에서 강력한 에너지 반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변에는 그 어떤 구조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게 자연스럽지 않았다.
“빌어먹을, 다른 놈들이 먼저 왔으면 어쩌지?”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호기심과 욕망이 그보다 더 강했다. 나는 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듯, 묵은 흙먼지가 사방에서 나를 맞았다. 한참을 기어 들어갔을까, 마침내 공간이 넓어졌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거대한 동굴이었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 아니었다. 벽면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고, 바닥은 알 수 없는 금속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웅장하고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 무언가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거대한 석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기계였다. 하지만 내가 알던 어떤 메카와도 달랐다. 투박하고 거친 철골 구조물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유려하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은은한 푸른빛이 장막처럼 그것을 감싸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그 빛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거대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게… 뭐야?”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떨렸다. 전설 속에서나 들어봤던 ‘고대 병기’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이건 그냥 고철 덩어리가 아니었다.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홀린 듯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조심했지만, 내 심장박동은 너무나 시끄러웠다. 메카의 발치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 거대한 몸체 중앙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수정이었다. 아니, 수정이라기보다는 에너지가 응축된 덩어리에 가까웠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내부에는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푸른빛이 담겨 있었다. 주변의 푸른 장막은 바로 이 수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스캐너가 미쳐 날뛰던 에너지의 원천도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수정에 닿는 순간, 차가운 감촉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온몸을 휘감았다.
“크윽!”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거대한 전쟁, 푸른빛으로 빛나는 기체들, 그리고 압도적인 힘. 그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생생함이었다. 나의 의식이 그것과 연결된 듯한 느낌.
동시에, 메카를 감싸고 있던 푸른빛 장막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굴 전체가 푸른색으로 물들었고, 굉음과 함께 바닥이 흔들렸다. 메카의 눈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두 개의 거대한 푸른빛이 번쩍였다. 마치 잠에서 깨어난 짐승의 눈빛처럼.
“이런… 내가 뭘 건드린 거지?”
나는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늦었다. 메카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천 년간 잠들어 있던 거인이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무너진 바위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고, 동굴 천장에서는 먼지와 잔해가 비처럼 흩뿌려졌다.
그 순간, 동굴 입구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입구가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먼지구름이 걷히자, 날카로운 헤드라이트와 함께 거대한 군용 메카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현재 이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아크론 기업’의 주력 모델, ‘기간테스’였다. 두꺼운 장갑과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최신예 병기.
“뭐야, 아크론 녀석들?! 어떻게 벌써…!”
내가 발견한 에너지 반응을 그들도 감지한 모양이었다. 녀석들의 스캐너는 내 것보다 훨씬 민감하고 강력할 테니.
기간테스 중 한 대가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렸다. 팔뚝에 달린 기관포가 나를 향해 겨눠졌다.
“인간형 반응 확인. 불법 침입자. 즉시 제거.”
기계적인 음성이 동굴을 울렸다. 나는 얼어붙었다. 기간테스의 화력을 아는 나로서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죽음의 공포가 내 심장을 짓눌렀다.
바로 그때, 내 몸과 연결된 듯한 푸른빛 메카가 움직였다.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거대한 팔이 번개처럼 뻗어져 나와 내 앞에 섰다. 기간테스의 기관포가 불을 뿜었지만, 메카의 팔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방어막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이게… 정말 내가 조종하는 건가?”
아니, 조종이라기보다는… 메카가 내 의지에 반응하는 것에 가까웠다.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였다.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어떤 감각이 깨어난 것처럼.
메카는 방어막을 거두고, 곧바로 기간테스를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고 유려했다. 기간테스는 당황한 듯 기관포를 난사했지만, 메카는 춤추듯이 포화를 피해갔다. 그리고는 한쪽 기간테스의 다리를 움켜쥐고는 그대로 집어 던졌다.
콰앙! 콰드득!
수십 톤에 달하는 거대한 군용 메카가 벽에 부딪혀 박살 났다. 내부에서 섬광이 터지며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이… 이건 미쳤어!”
남은 한 대의 기간테스 조종사는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 또한 믿을 수 없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현실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고대의 병기가 이렇게 강력할 줄이야.
메카는 멈추지 않았다. 푸른빛이 감도는 주먹이 남은 기간테스의 몸통을 강타했다. 거대한 장갑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폭발음을 냈다. 그리고 메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파괴된 잔해를 밟고 섰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내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거대한 힘. 고대 유물에서 깨어난 미지의 에너지. 이것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마법에 가까운, 혹은 마법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그때, 나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나라, 계승자여. 오랜 잠에서 깨어난 우리의 심장이 너와 하나가 되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니었지만, 마치 내 생각처럼 명확하게 들려왔다.
*‘이제 네가 우리의 의지이자, 우리의 힘이다.’*
이 메카와 내가 연결되었다는 뜻인가? 이 막대한 힘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말인가?
나는 푸른빛을 내뿜는 거대한 메카의 심장부에 손을 얹었다. 차가웠던 수정은 이제 따뜻한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동굴 입구 밖에서, 더 많은 기간테스의 발소리와 함께 전투기의 굉음이 들려왔다. 아크론 기업이 이 반응을 감지하고 전력을 다해 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메카의 조종석으로 추정되는 곳에 몸을 실었다. 내 몸에 흐르는 힘은 강렬했고, 알 수 없는 확신을 주었다.
“좋아… 한번 해보는 거야. 이 미친 세상, 내가 한번 뒤집어 보지 뭐.”
내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폐허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대의 힘이, 이제 나의 새로운 운명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나의 무덤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메카의 거대한 팔이 동굴 천장을 향해 뻗어졌다. 푸른 에너지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폐허의 잔해들이 거세게 흔들렸다.
나는 폐허를 뚫고 하늘로 솟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