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이토록 짙고 깊었다. 우주선 ‘아스트랄리스’의 함교를 감싼 둥근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인류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침묵과 광활함 그 자체였다. 수십억 년의 시간이 응축된 듯한 검푸른 심연은, 가끔씩 저 멀리 빛나는 성운이나 이름 모를 별들의 잔광으로 그 존재를 알릴 뿐이었다. 항성간 항행을 시작한 지 벌써 3년. 아스트랄리스는 인류의 지도를 넘어선 심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함교는 적막했다. 오직 제어판의 희미한 불빛과 생명 유지 장치의 규칙적인 낮은 웅웅거림만이 그 침묵을 간신히 깨고 있었다. 함장 엘리아스는 홀로그램 지도를 응시하며 팔짱을 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항해의 피로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예리했다.
“항해사 준, 특이사항은 없나?” 엘리아스가 나직이 물었다.
메인 콘솔 앞에 앉아있던 준 항해사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그의 두 눈은 이미 수많은 별들을 담아냈다. “네, 함장님. 평소와 다름없는 심우주의 고요입니다. 탐사 범위 내에서는 어떤 생명 반응이나 인공 신호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좋아. 계속 주시해.” 엘리아스는 다시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수억 광년 떨어진 미지의 성계를 향한 이번 임무는, 인류의 존재론적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마지막 시도와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껏 그들이 발견한 것은, 그저 끝없는 공허함뿐이었다.
그때였다. 준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며 콘솔을 두드렸다.
“함장님!” 준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장거리 센서에… 뭔가 잡혔습니다.”
엘리아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뭔가? 우주 잔해인가? 아니면…”
“아닙니다. 어떤 알려진 물질의 특성과도 다릅니다. 에너지 신호도, 질량도… 측정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습니다.” 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거대한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함교의 분위기가 일순 얼어붙었다. 보안 책임자인 카엘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단단한 체격은 언제나 함선의 안정감을 대변했지만, 지금은 어딘가 모르게 경직되어 있었다.
“항해사, 정확한 좌표를.” 카엘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좌표는…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아니, 변하는 게 아닙니다. 이 존재 자체가 우리의 측정 기준을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준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방향은 확실합니다. 이쪽입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은, 아스트랄리스가 현재 나아가고 있는 경로 바로 앞이었다.
엘리아스는 잠시 침묵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이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지의 것에 대한 탐험가의 오랜 갈망이 그의 이성을 압도했다.
“속도를 줄여. 그리고 김레나 박사를 함교로 호출해.” 엘리아스는 마침내 명령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팽팽한 긴장이 담겨 있었다. “접근한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 총괄 책임자인 김레나 박사가 함교에 들어섰다. 그녀의 흰색 연구복은 어두운 함교의 색채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했다. 레나 박사는 들어서자마자 준의 콘솔로 향해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놀랍군요.” 그녀의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화면 속 패턴을 좇았다. “이런 신호는 처음 봅니다. 모든 파장대에서 분석 불가능입니다. 마치…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물질 같군요.”
“그래서, 정체가 뭡니까, 박사?” 카엘이 물었다. 그의 말투는 늘 직설적이었다.
“글쎄요, 병장님. 알았다면 제가 이렇게 흥분하지도 않았겠죠.” 레나 박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과학자 특유의 호기심이 그녀의 얼굴을 지배했다. “함장님, 근접 시각 관찰을 허가해주십시오. 제 레이더 망은 완전히 먹통입니다.”
엘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접근 속도 0.001 광속. 모든 불필요한 시스템 정지. 방어막 최대.”
아스트랄리스는 거대한 심해어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창밖의 심연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십 분의 침묵이 흐른 후, 준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함장님, 육안 관측 범위에 들어왔습니다.”
엘리아스와 레나 박사, 그리고 카엘 병장이 일제히 함교 전면의 주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우주 저편에 떠 있는, 인류의 어떤 어휘로도 표현하기 힘든 **그것**을.
그것은 어떤 기하학적인 도형에도 속하지 않았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것도, 거칠게 솟아난 것도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검은색 결정체, 혹은 우주 그 자체의 응축된 심장처럼 보였다. 빛을 반사하는 대신, 오히려 주변의 빛을 흡수하는 듯한 칠흑 같은 표면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일렁이는 보랏빛과 푸른빛의 섬광들이 마치 내면의 맥박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세상에…” 레나 박사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홀린 듯 유리창에 손을 뻗었다.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생물도, 광물도, 인공 구조물도 아닙니다. 마치… 우주가 스스로를 빚어낸 예술품 같습니다.”
“예술품이라기엔 섬뜩합니다만.” 카엘 병장이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경계심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우리의 센서가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거리에서도 외부 방어막에 미세한 진동이 감지됩니다.”
엘리아스는 굳은 얼굴로 그것을 응시했다. “방어막에? 어떤 에너지 파장도 감지되지 않는데?”
“바로 그겁니다, 함장님. 아무것도 없는데, 진동이 느껴집니다. 마치… 우리 의식의 파장에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였다. 칠흑 같은 유물의 표면에서 미세한 균열 같은 것이 나타났다. 아니, 균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상상하기 힘든 색채의 섬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빛.
그 빛은 아스트랄리스의 방어막을 뚫고 함교 내부로 스며들었다. 희미하게 일렁이는 보랏빛과 검은빛이 모든 것을 뒤덮었다.
“으윽!” 준이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뭔가… 들려요… 귓가에… 속삭여요!”
카엘 병장도 휘청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허공을 헤매는 듯했다. “이건… 이건… 환상인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군…”
레나 박사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어가 흘러나왔다. 마치 꿈속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모습이었다.
엘리아스 함장 역시 알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이미지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우주를 유영하는 미지의 문명, 빛보다 빠른 속도로 멸망하는 행성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종말.
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존재가 내뿜는 빛과 함께 밀려들어왔다.
유물은 천천히, 그리고 완전하게 그 눈꺼풀을 열었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이제 함교 전체를 잠식했고, 승무원들의 정신을 잠식했다.
그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 혹은 우주 그 자체의 심장을 찢고 나온 어둠의 조각이었다.
엘리아스의 귀에, 그 빛 속에서 울려 퍼지는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환영한다, 새로운 자들이여. 너희는 이제, 끝의 시작을 보게 될 것이다.**
함교 전체가 뒤틀리는 듯한 환상과 함께, 아스트랄리스는 미지의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