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심연의 속삭임

천랑호는 망망한 심우주를 가르고 있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아니, 애초에 지도가 그려진 적도 없는 미지의 영역. 함선의 푸른색 항법등만이 끝없이 펼쳐진 암흑 속에서 유일한 길잡이였다. 기관실을 울리는 저음의 공명음은 심장의 박동처럼 규칙적이었지만, 선원들의 마음속에는 고요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수백 광년을 여행해 온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여행의 끝에는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거나, 혹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강하준은 브릿지 정중앙의 부기장석에 앉아 홀로그램 창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은하의 찢어진 조각들이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볍게 허공을 스치자, 창밖의 별들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축소되었다.
“함장님, 이온 엔진 안정도 99.8% 유지 중입니다. 항로 이탈은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예민하게 세상을 감지했던 그는,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단순히 기계음만 듣는 것이 아니었다. 때때로, 아주 희미하게, 마치 존재하지 않는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듯한 묘한 기운을 느끼곤 했다.

“수고했다, 하준.”
최정우 함장은 묵직한 목소리로 답하며 뒤편의 지휘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짙은 피로와 함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단단한 의지로 빛났다.
“유진 박사, 탐사 결과는 여전한가?”
함장의 질문에 옆자리 탐사대장 유진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함장님.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중력 이상 현상이 이 항로 전반에 걸쳐서 감지됩니다. 일반적인 암흑 물질 분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우리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유진 박사의 눈은 피로 속에서도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고대 문명과 우주 현상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었다.

그때였다. 브릿지 전체에 비상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삑- 삑- 삑-
모두의 시선이 메인 홀로그램 창으로 향했다. 평소의 별자리 대신,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그들의 항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게… 뭐지?”
이수혁 보안팀장이 옆구리에 찬 플라즈마 권총을 무의식중에 만지며 낮게 읊조렸다. 그의 얼굴에는 잔뜩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하준은 재빨리 데이터를 확인했다.
“함장님! 미확인 물체 출현! 크기는… 행성 하나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질량은… 극도로 낮아요. 센서가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측정 불가라고?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최 함장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수백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측정 불가’라는 결과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유진 박사가 홀로그램 창에 투영된 데이터를 손으로 확대하며 집중했다.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질량이 거의 없으면서 이 정도 크기를 유지한다는 건…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거예요. 아니, 차라리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에 가깝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보다는 학자적 흥분이 묻어났다.
물체는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빛을 흡수하는 듯, 아니, 빛 자체가 그 물체를 통과할 수 없는 듯한 절대적인 어둠. 그러나 그 어둠 속에는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심연의 바닥에서 솟아난 거대한 그림자처럼, 그것은 우주에 떠 있었다.

“접근 각도 수정, 최소 안전거리 5천 킬로미터 유지.” 최 함장이 명령했다. “수동 조종으로 전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모든 무장 시스템을 활성화시켜라!”
“예, 함장님!”
하준은 능숙하게 함선을 수동 조종 모드로 전환했다. 천랑호의 거대한 선체가 미지의 존재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물체의 윤곽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거대한 구형의 구조물이었다. 매끄럽고 어두운 표면은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진 현무암 같기도 했고, 어떤 각도에서는 짙은 남색으로 빛나는 수정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표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양들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기하학적이면서도 유기적인, 동시에 무한한 과거를 담고 있는 듯한 문양들.

“고대 문명… 이 정도 기술이라면…” 유진 박사가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이건… 우리가 아는 어떤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흔적입니다. 이건… 신의 영역에 가까워요.”
그 순간, 하준은 느꼈다. 그에게만 들리는 듯한, 아주 희미한 속삭임.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오래된 기억의 파편 같은 감각이었다. 그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강하준 부기장, 무슨 문제라도 있나?” 최 함장이 그의 반응을 눈치채고 물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함장님. 그저… 기분이 묘해서요.”
하준은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눈은 이미 홀로그램 창 너머의 미확인 물체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마치 그 물체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탐사선 두 대가 발진 준비를 마쳤다. 이수혁 팀장이 이끄는 보안팀과 유진 박사가 이끄는 과학팀이 탑승했다. 하준은 브릿지에서 모니터링 임무를 맡았다.
“착륙 지점은 없습니다. 표면에 고정 장치로 부착하겠습니다.” 이수혁 팀장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흘러나왔다.
탐사선이 조심스럽게 미확인 물체의 표면에 접근했다. 육안으로 본 그 물체는 더욱 거대하고 경이로웠다. 표면의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희미하게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에너지 반응 감지! 아주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방출되고 있습니다.” 유진 박사의 목소리가 상기되었다. “이건… 생명체 반응은 아니지만, 어떤 규칙적인 파동입니다. 마치… 거대한 장치가 작동하는 것 같아요.”

바로 그때, 탐사선 한 대가 접촉 지점에 고정되는 순간, 물체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일제히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워어어! 이게 무슨…!” 이수혁 팀장의 다급한 외침이 통신을 통해 들려왔다.
하준은 숨을 헙 들이켰다. 물체 전체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압축해놓은 듯 영롱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천랑호가 있는 브릿지까지 닿는 듯했다.
“함장님! 에너지 파동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함선 전체에 과부하 경고가 뜨고 있어요!” 한 승무원이 외쳤다.
“탐사선에 즉시 철수 명령 내려라! 모든 시스템을 최대로!” 최 함장이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미확인 물체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에너지의 흐름처럼 천랑호를 덮쳤다.
하준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이 휘청였다. 브릿지의 모든 홀로그램 창이 꺼졌고, 비상등만이 붉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하준의 머릿속에 폭풍처럼 거대한 정보의 물결이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그림이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신룡들.
별들을 손쉽게 부수고 창조하는 신선들.
공간을 찢고 시간을 거스르는 무형의 존재들.
수많은 세계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탱하는,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기(氣)’의 흐름.

하준의 온몸이 타오르는 듯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혈관 속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릴 적부터 그가 희미하게 느끼던 그 기운의 정체가 비로소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그의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마치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 듯한 강력한 충격이었다.
그의 눈앞에서 빛이 번쩍였다. 환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광선이 그에게 쏟아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온몸의 세포가 새롭게 정렬되는 듯한 격렬한 고통과 쾌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으윽…!”
하준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의자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양손이 저절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그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색의 미약한 빛이 번개처럼 파지직거렸다. 그것은 전기가 아니었다. 그가 본 적 없는,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이었다.
“강하준! 괜찮은가!”
최 함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하준의 귀에는 웅웅거리는 이명만이 가득했다. 그의 시야는 흐릿해졌고, 의식은 아득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그 심연의 끝에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을 그는 분명히 느꼈다.

문이 열렸다.
미지의 유물이, 우주선 승무원 중 한 명의 내면에 봉인되어 있던 거대한 힘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그것이 축복일지, 저주일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천랑호는 여전히 미지의 심우주 속에서, 기이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유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강하준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