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덧문 너머의 속삭임

도시의 심장은 밤에도 잠들지 않았다. 스물네 시간 내내 쿵쾅거리는 소음과 빛의 향연 속에서, 고층 아파트 숲은 고독한 섬처럼 우뚝 서 있었다. 민준은 그 섬 중에서도 가장 흔한, 17층의 작은 보금자리에서 지친 몸을 뉘었다. 막 퇴근하고 샤워를 마친 참이었다. 축축한 머리칼을 대충 수건으로 비벼 말리며 식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 다짐했지만, 손가락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스크롤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흐음?”

작은 소리였다. 아주 작고 희미한, 마치 멀리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소리. 거실 구석, 창문으로 향하는 블라인드가 덧문처럼 닫혀 있는 곳에서 들려왔다. 민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옆집에서 넘어오는 소리인가? 아니면 윗집? 층간소음은 아니지만, 뭐… 도시란 원래 이런 잡음으로 가득 찬 곳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불과 몇 초 뒤, 그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조금 더 선명하게, 마치 덧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긁히는 듯한 신경질적인 소음과 함께.

“뭐야, 설마 바람 소리인가?”

민준은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향했다. 에어컨은 꺼져 있었고,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방충망 틈새로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고 해도 저런 소리가 날 리 없었다. 그는 덧문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회색빛을 띤 덧문의 표면은 매끈했고,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덧문을 툭툭 두드려 보았다. 텅 빈 소리만 울릴 뿐, 아무 반응도 없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피식 웃으며 도로 침대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등 뒤에서 또다시 ‘슥- 사악’하는 마찰음이 들렸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가까웠다.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덧문을 천천히 긁는 듯한 섬뜩한 소리였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민준은 숨을 멈추고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등골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 혼자 사는 이 아파트에, 지금 이 순간에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 없어요?”

식은땀이 흘렀다. 어둠에 잠긴 거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낮에는 그저 편안한 공간이었던 곳이, 밤이 되자 알 수 없는 위협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덧문을 응시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조차 드리워지지 않은 완벽한 정적.

“장난치지 마.”

민준은 애써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하지만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그 자신이 느끼기에도 너무나 약했다. 그때, 그의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닫혀 있던 덧문의 가장자리, 손잡이 반대편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안에서 누군가 문을 비트는 것처럼, 단단히 고정된 나무판이 불가능하게 비틀리는 듯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아주 옅은 푸른빛. 섬광처럼 번쩍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먼지 입자가 가득한 공간에 빛이 스며드는 것처럼, 서서히, 불안하게.

민준은 뒷걸음질 쳤다. 말문이 막혔다. 저건 환각일 리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덧문의 비틀림이 점차 강해졌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의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콰앙!

굉음과 함께 덧문이 안쪽으로 거칠게 밀려 열렸다. 아니, 밀려 열렸다는 표현보다는, 마치 내부에서 강력한 힘이 폭발하듯 찢겨져 나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덧문은 경첩이 부러진 채 바닥에 곤두박질쳤고, 그 뒤에 있던 창문이 온전히 드러났다.

밤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도시의 불빛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 불빛들 너머, 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무언가가 번뜩였다. 하늘에서 드리워진 것인지, 아니면 땅에서 솟아오른 것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빛의 기둥이 수직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단순한 도시의 조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에너지 덩어리처럼 거대한 용오름을 그리며 하늘을 찢고 있었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그 광경은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린 듯 비현실적이었다.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의 시선은 그 거대한 빛의 기둥에 꽂혀 있었다. 그의 아파트 17층에서 그 모든 광경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저것은… 대체 무엇인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재앙의 전조인가?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다시금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명확했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짚은 듯한 생생한 감각.

“안녕.”

귓가에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 차갑고, 음산하고, 무엇보다 너무나 가까웠다. 너무나 명확하게 사람의 목소리였다. 민준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감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그 존재의 손길이 점점 더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차가운 손길이 그의 어깨를 지나, 그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드디어, 찾았다.”

속삭임은 더 이상 인간의 언어가 아닌 듯했다. 수천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겹쳐진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울림이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민준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거대한 빛의 기둥이 시야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돌아갈 시간이야.”

그와 동시에 민준의 몸은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떠올랐다. 중력이 사라진 듯, 그의 몸은 창문 밖으로 향하는 듯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 했지만,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대어가 웅웅거리는 듯했고, 그의 눈에 보이는 아파트 내부의 풍경은 마치 물에 잉크가 번지듯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이것은 장난도 아니었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 도시의 밤하늘을 찢는 거대한 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제 막 시작이라는 것을.

그의 아파트 17층, 찢겨진 덧문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춤추는 가운데, 민준의 몸은 점점 더 허공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