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어둠 속에서 ‘아레스 III호’는 한 점 빛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빛조차 집어삼킬 듯한 심연의 일부였다. 은하계 가장자리의, 인류의 탐사선이 채 도달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 지구 시간으로 3년, 왕복 6년이라는 임무는 승무원들의 정신을 서서히 마모시키고 있었다.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유일한 인류의 흔적은 아레스 III호, 그리고 그 안의 여섯 명의 선원들뿐이었다.
정적과 기계음만이 공존하는 함교. 이하윤 함장은 깊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창밖의 풍경을 말없이 응시했다. 수억 개의 별들이 희미한 점으로 박혀 있는 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섬뜩할 만큼 고독했다. 그녀는 손목에 찬 구형 단말기를 힐끗 보았다. 앞으로 3년. 지루하고도 아득한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정적을 깨고 관제실의 경고음이 울린 것은.
“함장님! 알 수 없는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박선우 부함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하윤은 즉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선우는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목소리에 담긴 긴장감은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자세한 내용은?” 이하윤이 짧게 물었다.
“기존 데이터와 일치하는 바가 없습니다. 에너지 반응이 극도로 높고, 물리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파편이나 소행성은 아닙니다. 너무나… 완벽한 형태로 접근 중입니다.”
선우의 말에 최지훈 수석 과학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지훈이었지만,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함장님, 좌표를 보여주십시오. 제가 직접 분석하겠습니다.”
함교 중앙 홀로그램 스크린에 미지의 물체가 투영되었다. 처음에는 흐릿한 점에 불과했지만, 줌 인 될수록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건…” 이하윤의 미간이 좁혀졌다.
“인공물입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거대한.” 지훈이 숨을 헐떡였다. “지름이 최소 수십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표면은 칠흑 같지만, 미세하게 파동치는 듯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기도, 혹은 아주 오래된 고대의 유적 같기도 합니다.”
화면 속의 물체는 완벽한 구형이었다. 어떤 우주선이나 정거장과는 달랐다. 차가운 금속 같으면서도, 동시에 생명력을 품고 있는 듯한 기이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외계 문명 유물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우주의 지성체들이 남긴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지훈의 목소리가 들떴다.
“섣부른 판단은 금지입니다, 박사.” 이하윤이 차분하게 제지했다. “박선우 부함장, 항로 재조정. 해당 좌표로 최대한 접근. 김민준 기관장, 모든 시스템 점검하고 비상 대기.”
“알겠습니다, 함장님!” 민준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의 손은 이미 조종간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레스 III호가 거대한 유물에 다가갈수록,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구형의 유물은 우주의 심연 속에서 홀로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빛은 차갑고도 신비로웠다.
“함장님, 유물에서 약한 에너지 파장이 감지됩니다.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박선우가 보고했다.
“그럼 뭘 하려는 거지?” 이하윤이 중얼거렸다.
“확인해 봐야 합니다!” 최지훈 박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탐사선 ‘헤르메스’를 보내겠습니다. 직접 샘플을 채취하고 데이터를 수집해야 합니다!”
이하윤은 잠시 망설였다. 미지의 위험에 대한 본능적인 경고음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인류가 미지의 영역에서 마주한 첫 번째 외계 문명의 흔적일 수도 있었다.
“좋아. 탐사선 발사 준비. 하지만 유물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어떤 식으로든 직접적인 접촉은 금지합니다.”
“예! 함장님!” 지훈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소형 탐사선 ‘헤르메스’가 아레스 III호의 격납고를 떠나 조용히 우주로 나아갔다. 조종은 베테랑 조종사 이진우가 맡았다. 그는 능숙하게 헤르메스를 유물 표면 가까이로 유도했다.
“함장님, 헤르메스, 유물 표면 500미터 지점 도달.” 진우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침착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 유물 표면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칠흑 같은 표면은 마치 살아있는 피부처럼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표면에는 복잡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언어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샘플 채취 로봇 팔 작동.” 진우가 보고했다.
헤르메스의 로봇 팔이 조심스럽게 뻗어나갔다. 유물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100미터, 50미터…
그때였다.
“젠장! 함장님! 알 수 없는 파장이 탐사선을 덮치고 있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먹통이 되고 있습니다!”
진우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스크린 속 헤르메스 주변에 푸른빛의 파동이 일렁였다.
“진우 조종사! 무슨 일이야! 응답해!” 이하윤이 소리쳤다.
“조… 조종이 안 됩니다! 헤르메스가… 빨려 들어갑니다!” 진우의 비명.
헤르메스는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유물 표면으로 강하게 끌려갔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탐사선은 유물의 표면에 달라붙고 말았다. 통신이 완전히 끊겼다.
“젠장! 헤르메스를 회수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하윤이 소리쳤다.
아레스 III호의 거대한 로봇 팔이 헤르메스를 향해 뻗어나갔다. 유물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숙련된 김민준 기관장의 조작으로 겨우 헤르메스를 아레스 III호 격납고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격납고 문이 열리고, 이진우 조종사는 좌석에 축 늘어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의료팀! 긴급 후송!” 이하윤이 명령했다.
정혜진 의료팀장이 직접 진우를 의료실로 옮겼다. 그녀는 진우의 상태를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함장님, 이진우 씨의 활력 징후가 불안정합니다. 열이 40도 이상이고, 피부에 이상한 반점들이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뇌 활동도 비정상적입니다. 마치… 무엇인가가 급속도로 증식하는 것 같습니다.”
지훈 박사가 의료실로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불안감도 섞여 있었다.
“유물에서 방출된 에너지가… 탐사선 뿐만 아니라, 이진우 조종사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일종의 생체 에너지 간섭일지도 모릅니다.”
“생체 에너지 간섭?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겁니까?” 이하윤이 날카롭게 물었다.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반점들… 마치 세포 단위에서부터 변형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우는 의료용 침대 위에서 계속해서 신음했다. 몸을 뒤틀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번쩍 떠졌다.
정혜진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진우의 홍채는 탁하게 변색되어 있었고, 핏발이 가득했다. 그의 시선은 텅 비어 있었다.
“이진우 씨? 정신 차리세요!” 혜진이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진우의 고개가 느릿하게 혜진을 향했다. 그의 입에서 낮고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으… 배고파… 먹고 싶어…”
그의 손이 느릿하게 혜진의 목을 향해 뻗어왔다. 혜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뒤로 뺐지만, 진우의 움직임은 의외로 빨랐다. 강철 같은 손아귀가 혜진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윽!” 혜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젠장! 이진우 조종사! 뭐 하는 짓이야!”
소란을 듣고 달려온 김민준 기관사가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진우의 팔을 잡아 떼어내려 했지만, 진우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민준의 노련한 완력에도 진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친 숨을 내쉬며 민준을 노려봤다.
“물러서, 민준! 저건 더 이상 이진우가 아니야!”
이하윤 함장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진우는 이제 완전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네 발로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기괴하고 비틀거렸지만, 짐승처럼 빠르게 혜진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그의 입가에는 거품이 맺혔다.
“피… 피가 필요해…”
“정혜진 박사! 어서 피해요!” 이하윤이 외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섬광과 함께 충격음이 의료실을 뒤흔들었다. 진우의 어깨에 총알이 박혔지만, 그는 잠시 움찔할 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계속 달려들었다.
“이건… 이건 단순한 병이 아니에요!” 혜진의 절규.
그때, 함교에서 또 다른 경고음이 울렸다.
“함장님! 의료실 내부 통신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의료실 격벽 일부에 이상한 부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선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뚫고 들려왔다.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의료실 격벽의 일부가 검게 변하며 녹아내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마치 유물 표면의 문양처럼 기괴한 형태로 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하윤의 얼굴에 절망과 함께 차가운 결의가 교차했다. 그녀는 진우를 노려보며 낮게 읊조렸다.
“젠장… 우리가 뭘 건드린 거지?”
박선우가 핏기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함장님… 혹시… 저 유물이… 씨앗이 아닐까요? 이 우주를 집어삼키려는… 악몽의 씨앗이…”
아레스 III호는 미지의 유물 앞에서, 그리고 이제는 우주선 내부에서 피어난 새로운 공포 앞에서 침묵했다. 그 침묵은 다가올 비극을 예고하는 전주곡과도 같았다.
